2023년 7월 어느 날의 일기
얼마 전 지인의 글을 읽다가 ‘아름답다’의 어원을 알게 됐다. 15세기 문헌 석보상절(釋譜詳節)에 ‘美아다씨니’라는 말이 기록됐는데, 여기서 우리말 ‘아답다’가 생겨났다고 한다. 아답다의 ‘아’는 ‘자기 자신’을 뜻하는 한자 ‘사(私)’에서 비롯됐다고 하니, 아름답다의 본 뜻은 ’나다움’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지난 주말에는 퀴어 퍼레이드에 다녀왔다. 처음 참가한 퀴어 퍼레이드였다. 거기서 나는 아다운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니면 그저 그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아다움을 외치는 사람들은, 아름다웠다.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사람, 공주풍 드레스 차림에 화려한 화장을 한 남자, 팔뚝에 무지개색 하트 판박이를 붙이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열심히 찍어대던 여자. 모두가 아다웠다.
그들과 함께 서울 한복판을 행진했다. 자신의 아다움을 숨겨야 하거나 드러내기 곤란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1년 중 딱 하루. 우리는 우리를 갖은 방식으로 거부하는 도시를 향해 돌진했다.
애인과 손을 잡은 채 걸었다. 떨렸다. 누가 보면 어쩌나 싶어서. 그래도 꽉 잡았다. 맞닿은 두 개의 손바닥 사이에 땀이 고여도 놓지 않았다. 아답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행진하는 나와 애인과 아다운 사람들을 향해 피 토하듯 외치던 아저씨가 당황했다. 그의 구호를 우리가 따라 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예수천국!“ 하면 우리도 ”예수천국!“ 했고, 아저씨가 ”불신지옥!“ 하면 우리가 ”불신지옥!“ 했다. 그러고 나서 와하하 웃으니 아저씨가 할 말을 잃었다.
30초 정도 조용했던 아저씨는 구겨진 자존심을 펼치고 싶은지 다시 힘차게 구호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아저씨의 외침은 이미 귀여운 잔소리보다도 무력해진 뒤였다. 아다운 사람들이 하나되는 건, 생각보다 더 강력한 일이었다.
그날 서울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