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게으름 _ 프롤로그
인생은 성격대로 흐르는 측면이 있다. 대학 시절 시험 기간이 되면 새벽 6시부터 도서관에 와서 공부한 뒤, 저녁 6시면 집에 가서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부지런한 내 친구는 졸업과 동시에 누구보다 빠르게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그다음 해 결혼을 하여 현재 부지런히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반면, 새벽 6시에 잠들면 잠들었지 일어날 리 없었으며 1교시 수업은 어김없이 지각하던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먼 나는 여러 차례의 낙방 끝에 누구보다 느리게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아직도 느리게, 그 누구보다 느리게 세상이 정해놓은 ‘이 나이면 이뤄놓았어야 할 과업’에 조금도 다가가지도 못한 채 그저 느리게 살아가고 있다.
“선생님은 참 여유가 있어.”
교직에 첫발을 내디디고 사회생활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천방지축 학교생활을 할 때 연세 지긋하신 한 선생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아! 역시 연륜 있는 선생님은 나의 진가를 알아보시는군!’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여유라는 말은 게으름의 다른 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 특유의 여유로움을 아직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을 가장한 게으름이 여행지에서 빛을 발해 내 발목을 붙잡을 때야 서야 비로소 ‘앞으로는 절대 게으름 피우지 않을 거야!’라는 다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저지른 다짐을 지킨다는 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여행은 항상 게으르고, 그 게으름 때문에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게을렀고, 여전히 게으르며, 앞으로도 게으를 것이다.
그런 게으른 나를 일요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게 만든 모임이 있었다. 작사가 지망생들이 한데 모여 습작을 하는 모임이었다.
“부지런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같은 작사가 지망생들과 불투명한 미래를 낙관하며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하지만 작사가 뒤에 붙는 ‘지망생’이라는 꼬리표는 ‘부지런히’ 하나만으로는 쉽게 떼어 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나의 게으름과 끈기의 부족도 한몫했지만.
그래도 게으른 내가 그나마 부지런하게 해온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SNS다. 어린 시절의 버디버디, 대학 시절의 싸이월드, 졸업 후의 페이스북과 블로그 그리고 지금의 인스타그램까지. 엄밀히 말하면 버디버디는 지금의 SNS와는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참 부지런하게도 해왔다. 그렇게 부지런히 남겨온 나의 흔적을 모아보니 뭐라도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SNS가 인생의 낭비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부지런한 낭비의 흔적을 모아 뭐라도 해 보려 한다. 나의 비루한 생각과 표현을 누군가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고 쑥스럽긴 하지만 누군가가 이 책을 통해 내가 느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여행의 즐거움을, 그리고 다양한 삶의 가치를 느끼며 잠시라도 웃음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
엄청나게 글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사진 찍는 기술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자랑할 만한 여행기도 아니고, 엄청나게 교훈적인 에세이도 아니다. 그저 일요일에 느지막이 일어나 중천에 뜬 햇살을 벗 삼아 혹은 월요일이 오지 않길 바라며 뒤척이는 일요일의 25시를 향해가는 시간 침대 껌딱지가 되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2019년 1월
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