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미신이었다.
내 고향은 파리, 거주지는 런던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허언증처럼 들리기도 하겠지만 진심 어린 <사랑 고백> 같은 것이었다.
나는 두 도시를 숭상하다 못해 집착했다.
영화도 스토리와 상관없이 두 곳에서 찍은 것이라면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현실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장인
끝이 나지 않는 일들에 시들어갔다.
2016년, 파리와 유럽에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비행기 티켓과 그곳의 숙소 가격은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 될 정도로 저렴했다.
두 곳은 여행 위험지역으로 선포되었고 가급적 방문을 삼가라는 방송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꿈을 이룰 기회로 들렸다.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다들 미쳤다고 했다.
맞다. 미친 거 맞다.
이후, 나는 두 도시를 3번 더 다녀왔다.
그중 한 번은 직장 관련으로 런던에서 30일간 머무르기도 했다.
에펠탑이나 시계탑이나 런던브리지, 센강 그 어느 장소가 멋지지 않겠는가?
시간이 갈수록 명소라는 게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 동네 로터리나 개선문 앞 로터리나, 파리 북역이나 우리 동네 기차역이나..
에펠탑이나 우리 시청 구조물이나....
"많이 가서 그렇겠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첫 여행부터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목숨 걸고 가야 할 만큼 간절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결혼 상대를 찾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젊은 남녀들이 자신을 선택해야 할 이유를 어필(appeal) 하는 시간이었다.
흰색 니트 원피스 사이로 몸매가 시원하게 드러나 보이는 섹시한 분위기가 있는 여성분이었다.
여자인 나의 시선이 그녀의 가슴골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녀는 짧게 한 문장만 남겼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판타지(fantasy) 제가 이뤄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많은 남성들은 소리까지 지르며 그녀에게 호감표시를 했다..
목숨 걸고 가야 할 만큼 간절했던 이유?
판타지였다.
그녀가 말한 FANTASY.
"그곳에 가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판타지"
하지만
런던 한 복판 템즈강을 눈앞에 두고 식사를 해도,
파리 호텔에서 눈을 떴을 때도,
나의 거대한 자아는 언제나 함께였다.
내가 어딜 가든, 얼마만큼 멀리 떠나왔든 삶에 찌든 나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멋진 광경과 맛있는 음식들, 멋있는 건축물 앞에서 요란스러운 리액션을 펼쳐 보였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루브르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다.
작품을 감상하다 지쳐 미술관 벤치에 털썩 앉았다.
건물 크기만 한 거대한 작품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한국에서와 하나도 다를게 없이 똑같이 지치고 시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도망치는 행위에 불과했던 그 시절의 여행
난, 이제 이곳에 머무른다. 나의 자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