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독립이 힘들었던 이유
'차를 절벽으로 몰아서 떨어지면 아들이 전화하지 않을까?'
'암이라도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아들이 연락하고 달려오지 않을까?'
나는 아들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아들의 독립 이후, 내가 힘들었던 진짜 이유는 이것이었다.
나는 왜 이런 되지도 않는 멍청한 망상을 하나?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다.
서울에 가서 바빠도 일주일에 3번은 연락을 하던 아들이 여자친구가 생긴 그날 이후부터 연락두절이다.
에먼 날씨 앱만 확인을 했다.
카톡이 왔나? 문자가 왔나? 부재중 전화가 왔나? 확인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기다림에 지쳐 용기 내어 전화를 하면 나의 전번은 방해금지 모드 대상임을 알아챘다.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평소 감정소모를 싫어하고 일에 집중하는 사고형, 계획형 인간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루에도 여러 감정선을 오가며 미쳐가고 있는게 정상인가!
남편은 이런 나의 근황을 친정어머니께 전했다.
엄마는 전화를 걸어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아들 짝사랑 하지 마라. 너만 힘들다."
엄마도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짝사랑 했나보다. 엄마가 내게 오빠를 향한 속상한 마음을 전하긴 했지만 이렇게 짝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엄마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성숙한 어른인 내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지....
<짝사랑할 때 느끼는 감정의 어려움>
감정의 불확실성
상대방의 감정이나 반응이 명확하지 않아서 불안과 의심이 생긴다.
자신감 저하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알지 못하거나, 상대방의 관심을 얻지 못할까 봐 자신감이 낮아질 수 있다.
부족한 대화와 소통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거나 상대방과의 소통이 부족해 더욱 외로움을 느낀다.
기대와 현실의 차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로 인해 실망감이나 불안감을 느낀다.
감정의 고통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상대방과 가까워지지 못할 때 정서적 고통을 크게 느낀다.
나는 아들과 대화를 하고 싶었고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소식을 들을 수도 없고 전달할 수도 없어 불안하고 화가 났다. 그러다 실망감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이것은 분명 '짝사랑'의 감정이 맞았다.
아들은 추석 한 주전, 이번 명절에 집에 내려가지못한다는 말을 전했다.
또 한 번 감정의 폭발이 일어났다.
아들의 무심한 대답과 평소답지 않은 차가움에...
나는 화가 나는데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그런 착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부글대는 감정을 지닌 채 웃으며 통화하는 행동을 더 하다가는 질식해서 죽을 것 같았다. 솔직하고 싶었다.
"한 번은 내 진짜 감정을 전해보자. "
남편과 둘째 아들은 이런 나를 철저히 뜯어말렸다. 전화해서 꼭 확인하고 싶냐?
아들은 더 이상 내가 필요 없고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의 몫만 차지함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다. 내 성격으로는 확인이 필요했다. 유치하고 필요없는 과정이지만 내게는 꼭 있어야 할 절차였다.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을 꾹꾹 담아 쓴 내용이었다.
답장이 오지 않았다. 전화도 오지 않았다.
정말 진심을 다해 내 마음을 전했는데 말이다.
참지 못해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아침에도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건 뭐 스토커가 된 기분이었다.
답장 대신 근황 사진이 올라왔다.
정말 화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문자를 보내고 울고불고하던 그때, 아들은 여자친구와 미술관 데이트를 즐겼던 것이다.
추석 당일 연락이 닿았다. 그래, 엄마가 문자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서...
.....(아무 말이 없다.)
사실 문자 내용에 서운함과 감정이 섞여 있었다. 한 번 더 물었다.
아들은 그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한다.
"그래? 그럼 추석 당일인데 엄마 아빠한테 먼저 전화 한 번 하면 좋았을 텐데..."
"아까 했잖아요?"
"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영상통화 한 거?"
"그래, 그래도 엄마 아빠한테도 네 소식 전해주면 좋았을 텐데... " 더 이상 말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비로소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 미친 사람처럼 그러고 있었고 아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일과 연애, 그거 두 개뿐임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좋은 말로 어른이 되었다.
남편은 힘들어하는 내게 이런 말을 반복해서 전했다.
아들은 컸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생겼다. 그래서 달라졌다. 말도 서운하게 하고 행동도 예전과 다르다는 것 안다. 자신도 어쩔 때는 속상해서 "이 새끼 정신 차려.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하지만 그 아이는 아직 아이일 뿐임을 강조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움을 겪게 될 거다. 그때는 지금 보다는 성숙해지는 때가 올 것이다. 나나 당신을 생각해 봐라. 20대, 얼마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신감이 많을 때인가? 그리고 연애하는데 엄마, 아빠 생각이 안 난다. 지금은 좋지만 또 그 아이에게 어려움이 닥치거나 세상에 혼자라고 느끼고 좌절할 때 돌아올 곳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다. 지금 그 아이에게 우리는 필요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다리가 없어지면 안 된다. 당신이 화내고 아이에게 감정을 쏟아내면 그 아이는 나중에 돌아오기 힘들어진다.
우리에게 오는 다리를 폭파시키면 안 된다. 마음에 안 들더라도 격려하고 인정해 주고 지지해줘야 한다. 설령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도 말이다. "
나는 도저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들과 통화를 한 후에 나와 말이 통하던 그때의 아들이 아님을 인지하고 남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이 올린 여자 친구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에 하트를 눌렀다. 그리고 그들이 집중하는 일에도 응원의 글을 남기고 아들을 생각해 주는 말들을 올렸다.
아들은 즉각 반응을 했다.
"당연하죠. 엄마. 저는 열심히 할 겁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커다랗고 귀여운 이모티콘을 날려준다.
시아버님은 그간의 일들을 들으시며 두 마디 하셨다.
"그럴 때도 있어야 안 되겠냐?"
"그것도 과정이니 마음 상하지 마라."
오늘 아들이 올 수 있는 다리를 폭파시키지 않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