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면 우리말을 다시 배워야 한다.
지인은 부인과 사별 후 혼자 아들을 키웠다. 아들은 명문 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인정받는 사회인이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에게 결혼할 여자가 있다며 소개를 했다. 개인적 사정을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 결혼 허락 못한다. 그러니 나와 인연을 끊어도 좋으니 결혼 승낙 못해준다고 하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실제로 연이 끊겨버렸다. 홀로 직장생활을 하시며 가정과 아들을 키워온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
나는 아들과 친구처럼 지냈다. 일상을 나누고 어떤 일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아들이 독립한 후 여자친구와 연애를 하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자주 하던 전화는 끊겨버렸고 나의 문자에는 응답이 없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서운함이 나도 쌓여갔다. 어느 날 나의 이런 감정은 아들과의 대화 속에 스며들었고 아들은 대화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이 터져버렸다. 내가 그간의 서운함을 장문의 문자로 보낸 것이다. 아들과 짧은 통화를 끝낸 뒤 서운함이 터져버렸던 것이다. 아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뭔가를 결심한듯하면서도 불쾌함을 장문으로 표현했다.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안 그래도 힘든 자신에게 이런 글은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부모님이 뭐라 하던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않았다. 결코.
아들과 인연을 끊은 지인이 떠올랐다.
무엇이 문제일까?
결혼생활, 자녀를 키우는 것이 다 그렇듯
내 자존심을 지켜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
아이와 싸워 이기겠다. 바꾸겠다는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후 내 생각과 언어를 점검해 보았다. 왜 서운한가? 왜 전화를 그 아이가 받아야 하나? 이제 독립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 아이 인생이 나의 인생이 아니고 내 인생이 그 아이의 인생이 아닌데....
내가 과도하게 간섭하고 있었구나.
쓸데없이 반복적인 걱정을 쏟아냈구나.
조언이라며 내 생각을 말해서 기분을 상하게 했구나.
안 그래도 불안한 미래에 내가 걱정이랍시고 아이를 믿어주지 않았구나.
결론? 나와 통화하면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내 생각을 바꾸고 대화를 바꾸었다. 물론 전화나 문자, 카톡을 내가 먼저 보내지 않는다.
아들을 배제시키고 나의 바쁜 일상을 살아가니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언어법을 실천 중이다.
대화할 기회가 생기거나 카톡을 할 때면 격려와 신뢰를 보내려 한다.
"넌 잘 해낼 거야."
감사와 존중을 표현한다.
"엄마가 서툴러서 우리 아들한테 실수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잘 커서 생활 잘한다니 대단하다.
너는 잘 해낼 거다."
진심 담긴 관심, 순수하게 관심만 표현하려 한다.
"요즘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때? 힘들지는 않아?"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대화를 한다.
"엄마도 옛날에 너 나이 때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너는 엄마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가지니 아들은 서서히 달라졌다.
내가 전화를 하지 않아도 힘들 때 전화하며 편하게 대화를 한다.
아들을 다시 찾은 느낌이다. 인연이 끊어질 뻔하다 다시 이어진 기분이다.
아들 덕택에 나는 중년이 배워야 할 언어를 다시 공부 중이다.
내 자존심 지키려 미안하다는 말 안 하고 독점하려는 심뽀도 고치는 중이지만 이 공부에 끝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