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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Apr 28. 2019

나이로비에서 한식당 찾아가기

한식 먹고 난 후의 가파른 기분변화

걷다.

케냐 나이로비를 걷다.     


 “언니. 저 화장실 커튼만 보면 더 우울해져.”

 나이로비 숙소에서 하연이가 화장실을 쳐다보며 매가리 없이 말했다. 방음이 될 리 없었고, 샤워 후엔 바닥 뚫린 커튼 사이로 물이 새어 나와 바닥이 흥건해졌다. 화장실 문 행세를 하고 있는 빨간 커튼은 가리개 역할만 충실히 할 뿐이었다. 명색에 호텔인데 화장실 문이 없다니, 커튼을 볼 때마다 난 킥킥대며 웃었고 하연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부터 시작된 하연이의 우울함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펑 터지고 말았다. 땅굴까지 파고들어간 하연이의 우울함에 비하면 내 우울함은 비교적 경미한 편에 속했다. 한숨의 빈도, 들숨 날숨의 깊이를 가늠하면 하연이의 기분이 몇 층에 서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연이의 감정은 지하 200층부터 지상 200층까지 매 시간마다 달라졌다. 그럴 때마다 하연이의 표정을 따라 하며 우울함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하연이의 기분은 어디까지 올라가고 내려갈 수 있는지 면밀히 관찰해야 했다.


 하연이의 우울함은 사파리 투어를 신청하러 여행사까지 걸어갔다 오고 나서부터 극에 달했다. 나이로비의 거친 분위기가 느꼈다. 가판 위에 어수선한 옷을 파는 장사꾼,  꿀렁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폭군처럼 내달리는 운전기사, “칭챙총 총칭칭” 눈을 찢으며 비웃고 지나가는 녀석들. 쭈글쭈글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숙소로 돌아오니 발은 흙탕물에 젖어 있었고, 거울 속 얼굴도 흙빛으로 물들여있었다. 현지인이 많은 곳에 가면 도시의 안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 있고, 싸한 기운이 도사리는 곳이 있는데 나이로비는 후자에 가까웠다.

*칭챙총 : 중국인들의 대화가 칭챙총으로 들린다며 아시아인을 놀리거나 비하할 때 쓰는 말.

 나이로비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면서 다녀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하지 말라는 것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 말했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통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낮에 여행사를 다녀오고 나서 조심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매 순간 각별한 주의 하며 신경을 잔뜩 곤두세워야겠다는 긴장감에 절여졌다. 낮밤을 불문하고 모든 외출을 자제했다. 덕분에 햇빛이 비추지 않은 눅눅한 골방에서 곧잘 우울해졌다. 나이로비의 삭막하고 거친 분위기는 우리를 점점 오그라들게 했다.


 이집트에서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에서 케냐까지 아프리카 여행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상태가 좋지 않은 숙소였고, 두 번째는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었다. 빠지지 않는 식재료는 고춧가루, 허브솔트, 대용량 라면수프 그리고 미역이다. 미역은 부피가 작고 가벼워서 빼놓지 않고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미역이 조금밖에 남지 않아 미역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나오면 꼭 사야지 마음먹었다. 아프리카 땅 어딘가에서 하연이 생일을 맞이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나이로비에는 한국음식을 파는 일본 식당이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맛과 인테리어는 물론 서비스까지 훌륭하지만 가격대가 조금 높다는 평이었다. 식당 근처에 한식을 파는 작은 슈퍼도 있다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쌓아왔던 한식에 대한 욕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숙소에 누워 메뉴판을 민첩하게 스캔하며 무엇을 먹을지 밀도 있게 고민했다. 하연이와 얼렁뚱땅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고 가장 치밀했던 순간은 환상의 메뉴를 고르는 일이었다.

케냐, 나이로비 숙소로 나와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식당까지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가득 찬 버스를 타기 무서웠다. 그리고 어디서 타는지 물어봐도 하는 말이 제각기라, 택시를 타기로 했다. 툭툭 같은 삼륜 택시부터 시작해 고급스러운 택시까지 흥정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높은 가격을 불렀고 슈퍼 사장님께 어디서  택시를 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건너편으로 가서 물어보라 했다. 건너가 많은 오토바이 앞에 서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식당까지 가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갈 수 있다며 따라오는 손짓을 하고, 질퍽이는 거리를 앞질러 나갔다. 그곳엔 헬멧을 쓰고 있는 젊은 남성과 오토바이 한 대가 있었다. 둘은 기밀한 이야기라도 하는 듯 속닥거리더니 우리에게 타라고 말했다. 레스토랑의 주소와 지도를 보여주며 요금을 물었고,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요금보다 낮은 금액을 불렀다.  만족하는 표정을 숨기고 오케이를 외쳤다. 안전 때문에 웬만하면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데, 돈이 두배 이상 차이가 나니 신념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사기꾼이면 어쩌지 걱정하며 그와 거리를 두고 걸어가고 있었다.

 “오토바이... 우리 괜찮겠지? 우리 살살 가달라고 하자.”

 “그래. 설마 죽기야 하겠어. 제발 천천히 가자고 하자.”

 한 오토바이에 세 명이 탔다. 오토바이가 출발함과 동시에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옆에 차들이 무더기로 다니는 곳에서의 적당한 속도가 아니었다.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갈 때도, 내리막을 내려갈 때도, 평지를 내달릴 때도 우린 쉴 새 없이 슬로우 플리즈를 외쳤다. 그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노 프라블럼을 외쳤다. 그 뒤로 슬로우와 노 프라블럼 돌림노래가 계속되었다. 큰 사거리가 나오고 신호가 걸려 대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기 싫었는지 차들을 옆으로 비껴가며 차 사이로 슬슬 지나갔다. 우리는 “댄저러스. 쏘 댄저러스.” 그는 온몸에 철갑 장비를 두르고 있는 장군처럼 한껏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이란 말이 나에겐 너무나도 빅 프라블럼이었다.


 옷깃을 너무 꽉 잡아서 손이 축축해지고 아릿해져 왔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 근처에서 식당 쪽으로 접어들수록 집들의 담장의 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잘 꾸며진 정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리막을 내려갈 때면 입으론 무섭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 상황이 재밌어서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내가 웃을 때마다 "굳굳?" 말하며 속도를 올려대는 바람에 그 후론 음소거 웃음으로 일관했다.


 멋스럽게 꾸민 집들과 담장 너머로 내려온 싱그러운 나뭇잎들을 보며 달렸다. 비를 흡수한 흙냄새가 콧구멍으로 들어와서 상쾌했다. 그가 식당에 도착한 것 같다면서 큰 대문 앞에 섰다. 돈을 지불하고 내 키보다 두 뼘이나 더 큰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식당 전체에 울려 퍼지는 여유로운 선율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식물들이 싱그러운 초록빛을 내뿜으며 우아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한국식 밑반찬과 따듯한 물수건이 서브됐을 때, 여기가 케냐가 맞나 잠시 착각하게 만들었다. 식당 곳곳에 신경을 쓴 티가 역력했다. 심지어 화장실의 입구엔 하얀색 조롱박 꽃이 화장실 표지판부터 화장실 입구까지 쭉 이어져 펴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한국음식점에 가봤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면 어썸~어메이징~을 외치고 싶은 고즈넉한 정원식 식당이었다. 메뉴 세 개를 시키고 연신 맛있다를 외쳐댔다.

 두둑해진 배를 퉁퉁 치며 슈퍼에 갔다. 그곳엔 내가 찾고 있던 미역과 참기름이 있었다. 미역을 보자마자 갓난아기를 안듯 내 품에 안아 위아래로 쓰담쓰담 만지작거렸다. 이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하연이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언니는 지독한 한식 병에 걸렸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너 생일날 끓여주려고 사는 거다. 이놈아.’를 마음속으로 외칠 뿐이었다.


 슈퍼에서 나왔는데, 비가 조금씩 떨어졌다. 설마 비가 오겠어 의심하며 챙긴 삼단 우산과 우비를 호기롭게 꺼내 썼다. 비 따위가 한껏 상기된 내 기분을 조금도 망가트릴 수 없었다. 내손엔 참기름과 미역이 있었으니까.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이름도 모르는 동네에서 미역과 참기름을 넣은 검은 봉지를 앞뒤로 휘두르며 큰 쇼핑몰로 향했다. 쇼핑몰에 도착해서 하연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나는 마트 구경하며 라면 두 봉지도 샀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던 하연이의 기분운 175층쯤에 머물러 있었다. 그날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처럼 넉넉하게 행복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봉투 속엔 쓰다듬은 미역과 참기름 그리고 새콤달콤이 들어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가야 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 주변은 밤이 되면 위험하다고 리셉션 직원이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와 몇 분의 신경전 끝에 원하는 가격에 택시를 탔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바깥을 한참을 쳐다보던 하연이가 말했다.

 

“언니. 매일의 하루가
오늘처럼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듣다.

Lenny Kravitz의 It ain't over 'til it's over를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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