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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Jan 13. 2021

널 믿어 (feat. 엄마)

어떤 존재에게 엄마란 무엇일까. T는 열 다섯 때, 엄마와 형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내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 물적, 영적, 심적 토대가 엄마인지라 (게다가 금전적으로 어려울 때 급전을 땡길 수 있는, 내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삶을 살 수 있는 토대이기 때문에) 엄마 없는 성장기는 상상하기가 힘들다. 


일단, 나는 엄마가 한번도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니 화가 나신 것은 보았어도, 화로 인해 상처주는 말을 하거나 소리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정확한 표현은 엄마의 히스테리를 본 적이 없다.) 언젠가 엄마에게 엄마는 어떻게 화를 한 번도 안낼 수가 있어요?라고 물었는데, 엄마의 엄마, 할머니께서도 그러셨다고 한다. 나는 그에 비하면, 성질이 불같아 내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화를 내기”도 하니 안타깝지만, 나는 엄마의 품성을 물려받지 못했다. 


영어에 Hold someone accountable이란 표현이 있는데, 그 사람에 책임을 지운다는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사회의 통념이 부딪칠 때, 엄마가 이런 결정을 한 나를 (여전히) 자랑스러워 할까? 하는 질문은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게끔 하는 최후의 검열장치이다.


엄마는 내게, "너 정말 잘 생각해 보고 한 결정이니?"하는 질문은 했어도, 한 번도 내게, “하지마" 혹은 “안돼"라고 말하지 않으셨다. 꼬마 아이였을 때부터 엄마는 “네 결정을 믿어"라는 말로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했고, 그것은 오늘의 나를 있게하였다.


그러면 나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느냐? 전혀 그렇지는 않다. 중학교 때 귀를 뚫었을 때도, “나는 이 나이까지 귀걸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너는 벌써 귀도 뚫었네..” 라고 하셨고, 타투를 새긴 후 왔을 때도, “어디 한 번 보여줘”라고만 하셨다. 대학교 때 오토바이를 탔을 때도 엄마는 조심해서 타라고만 하셨고, 서른 살 때 미국에서 부모님에게 소개 없이 남자와 혼인신고를 했을 때도 “네가 잘 골라서 선택했겠지” 라고 하셨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혼을 했을 때이다. (아버지도 대단하신데! 아버지는 내 반응이 무서워(?) 묻지 않으셨다면,) 아무 말씀도 없으신게 이상해서, 어느날 내가 엄마에게 “내가 언제 이혼을 했는지, 왜 했는지도 궁금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는데, 그녀의 답변은 이랬다. “네가 말하고 싶을 때가 되면 하겠지. 네가 잘 고민해서 선택했을거라고 믿어.” 라고 하신 쿨한 엄마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다면 정말 쿨한가… 우리 엄마는 어느 각도로 보나 “바른 생활" 형이시다. 30년 넘게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셨고, 4남매 중 유일한 딸인 그녀는, 외조부께서 깡시골에서 딸인 그녀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그래서 지금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오늘날까지 감사하다고 하신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정말 와일드 한데, 때때로 나는 혹시 우리 엄마가 딸의 삶을 방임함으로써 딸의 렌즈를 통해 "와일드한 세상"을 경험하는 재미를 느끼고 계신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여하튼 이러한 엄마의 훈육 방식은 내 삶의 토대가 되었고, “믿어주기의 힘”을 깨우쳐주셨고, 그것이 내가 배운 전부이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매니저 혹은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때, 내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되었다. 


아침마당을 즐겨보시던 엄마가 어느날 농담 삼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큰 사람이 되서 저런데 엄마와 같이 나오면, 사회자가 “어떻게 어머님은 저렇게 훌륭한 딸을 두셨어요?”라고 하면, 나는 그렇게 말할거야.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냥 믿어주기만 했어요." 


변함없는 엄마의 믿음이 오늘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표를 제시해 준다. 삶이 던져주는 아무리 험난한 경험을 하게 된들, 내게 우리 엄마의 존재는 그 모든 것과 절대로 맞바꿀 수 없는 선물이고, 삶이 준 숙제들에 내가 감사할 수 있는 토대다. 내가 그 믿음에 부합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고 싶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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