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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Apr 04. 2022

나는 오늘도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산다

220330 국방일보 조명탄 기고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연일 50만 명을 넘나들던 어느 날. 불행히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럴 수가.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어디서 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출처를 밝혀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본의 아니게 최다 확진자 수 기록 경신에 한몫을 보탠 것 같아 면목 없는 마음으로 며칠 사이 접촉한 이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위로 속에 자가 격리 7일이 시작됐다.


다행히 증상은 심하지 않았다. 목이 따끔거리고 기침과 코 막힘이 조금 있는 정도였다. 후각과 미각도 멀쩡했다. 단지 밖에 나가지 못할 뿐, 일상생활에는 거의 지장이 없었다. 그래도 엄연히 코로나19 환자 아닌가. 스스로 환자라는 사실이 체감되진 않았지만, 격리하는 7일 동안은 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모처럼 마음 편히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고 그동안 밀린 영화,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를 해치우며 하루 이틀을 보냈다. 그러던 중 문득 쌓여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나는 책을 꽤 사는 편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며 구미가 당기는 책을 장바구니에 쓱쓱 담아뒀다가 한 번씩 몰아서 사는 게 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다. 어릴 적 읽고 싶은 책과 듣고 싶은 앨범을 원하는 만큼 사는 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살다 보니 그런 어른이 엇비슷하게 됐다. 물론 들여온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 구매 후 목차만 훑어본 뒤 꽂아두는 책이 더 많다.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몇 배쯤 더 빠르다.


그렇게 쌓여있는 책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선 죄책감이 피어났다. 괜한 욕심에 다 읽지도 못할 책을 무더기로 산 건 아닌가. 자괴감에 빠져 있던 내게 위로가 된 건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의 생전 인터뷰였다. 그는 책을 정복하려 들면 안 된다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책을 편히 읽으면 된다고 했다. 안 읽고 쌓인 책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이 방을 열어도 책, 저 방을 열어도 다 책이야. 깔린 책이 몇만 권이에요. 이걸 어떻게 다 읽어?”


선생은 소가 풀을 뜯듯 자유롭게 읽으라고 했다. 책은 재미로 읽지 의무로 읽는 게 아니니까 재미없으면 덮고, 느끼면 밑줄 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책에서 기막힌 문장을 만나면 그게 환희요, 그게 독서라고 했다. 아차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책은 공부를 위해 읽었지, 재미로 읽은 게 언제였던가. 그사이 독서 근육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책을 섭렵한 선생과 감히 비교할 순 없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내 현실이 부끄러워졌다.


그의 말을 떠올리며 몇 달 전 사둔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사실 이 또한 어느 글로벌 OTT 서비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예습을 위해 사뒀던 책이었다. 원래의 목적은 지워버리고 순전히 재미를 위해 책을 펼쳤다. 오랜만에 읽는 소설은 가슴이 콩닥거릴 만큼 흥미진진했다. 페이지가 어찌나 술술 넘어가던지, 꼭 도서관에 붙어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재미를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리하는 동안 책 읽는 기쁨을 되찾았다. 그것도 수개월 전 사놓고 제대로 펼치지도 않았던 책에서 말이다. 책은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서 읽는 거라더니. 김영하 작가의 그 유명한 말이 그제야 마음에 와닿았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조금은 불편을 겪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느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그렇게 오늘도 나는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산다. 언젠가 쌓여있는 책 사이에서 운명처럼 만날 빛나는 문장을 기다리며. 참, 앞서 말한 소설은 이민진 작가의 베스트셀러 <파친코>다.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20330/1/BBSMSTR_000000100134/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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