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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Dec 03. 2022

MERRY SPOOKY X-MAS

25년의 끝자락에 만나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앨범

MERRY SPOOKY X-MAS



‘즐겁고 으스스한 성탄절’. 쉽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붙었다. 크리스마스 앨범으로는 색다른 제목이다. 앨범 커버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검은 옷을 입은 세 멤버가 경직된 자세, 굳은 표정으로 숲의 한 가운데 섰다. 중앙에 선 김윤아의 손에는 산타클로스의 머리가 들려있다. 선물 꾸러미도, 다른 장식품도 아닌 산타의 머리를 들고 있는 크리스마스 앨범이라니. 하단에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80년 공포 영화 [샤이닝]에 나오는 문장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이렇게 스산하고 수상쩍은 시즌 앨범을 본 적 있나.


[MERRY SPOOKY X-MAS]는 자우림이 처음으로 내는 크리스마스 앨범이다. 제목과 커버에서 드러나듯, 흔한 캐럴 앨범은 아니다. 이들은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찬 성탄절 무드를 어둡고 서늘하게, 그러면서도 유쾌하게 비틀었다. 앨범에는 ‘세 명의 왕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는 실물 음반에 동봉된 이야기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김윤아가 쓴 이 단편에는 산타 행세를 하며 세상의 질서를 흔드는 악마 ‘마스터 크람푸스’와 그를 저지하려는 ‘명왕(冥王)’, ‘목마왕(木魔王)’, ‘흑마왕(黑魔王)’이 등장한다. 짧지만 강한 흡인력을 지닌 단편의 자세한 내용은 음반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여섯 곡이 담긴 앨범의 문을 여는 건 캐럴 고전 ‘Winter Wonderland’다. 수록곡 중 유일한 커버곡인 노래는 1934년 처음 발표된 이래 전 세계 수많은 아티스트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러왔다. 몇 년 전 겨울 공연에서 처음 선보였던 자우림의 버전은 그중에서도 남다르다. 흔히 소복하게 눈 내린 풍경을 설레고 아름답게 그렸던 것과 달리, 마이너 음계를 극적으로 넘나드는 이들의 재해석은 불안하고도 신비로운 미지의 겨울을 연상케 한다. 사실상 아예 다른 곡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휘몰아치는 강성 사운드의 ‘Spooky Xmas’는 앨범의 테마를 선명히 드러낸다. 가사를 유심히 보자.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있던 집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던 사람”, “나를 움켜쥐던 커다란 손/그건 아마 꿈이 아닐지 몰라”, “붉은 눈에 거친 숨을 뱉던 그 무서운 사람”. 상상도 하기 싫은 공포다. 음반의 ‘세 명의 왕 이야기’와 연결해 생각하면, 어쩌면 노래 속 이 ‘무서운 사람’은 ‘마스터 크람푸스’일 수도 있겠다. 크람푸스는 반은 염소, 반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로, 산타와는 반대로 성탄절에 나쁜 아이를 벌하고 괴롭히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Spooky Xmas’는 이처럼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편, 이들만의 카리스마로 마니아를 열광케 할 곡이다.


반면 두 타이틀곡은 밝고 경쾌한 음악으로 대중을 향한다. 간결하고 명랑한 록 트랙 ‘크리스마스에 눈이 온다면’은 누구나 쉽게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캐치한 멜로디와 중독성 강한 후렴, 희망찬 노랫말이 겨울의 ‘록 앤썸’으로 손색없다. 앨범 중 가장 성탄절 분위기를 내는 곡은 ‘미스터 클라우스’다. 짤랑대는 종소리를 비롯한 크리스마스 음악의 보편적인 문법을 자우림의 색깔로 절묘하게 풀어냈다. “정신 나간 세상 오늘만은 하얗게/해피 사일런트 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에 눈이 온다면), “눈 따위 오거나 말거나/당신만 온다면 그만이야”(미스터 클라우스) 등 특유의 차가운 듯 다정한 언어도 매력적이다.


아코디언을 활용한 ‘크리스마스의 개들’은 이색 재미를 선사한다. 마치 뮤지컬 넘버처럼 코러스 멤버들과 구절을 주고받는 노래는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새벽녘 풍경을 실감 나게 그렸다. 주인공은 비록 홀로 춤추는 가엾은 외톨이 신세지만, 때 되면 꽃이 피고, 꽃 피면 봄이 온다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그 메시지에 따라 속도와 볼륨을 높여 맹렬히 내달리는 후반 1분은 단연 이 곡의 하이라이트다. 마지막 곡 ‘Night Wishes’는 내내 들떠있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낮게 깔리는 일렉트릭 기타의 반주를 따라 이 땅 위의 모든 불빛들과 생명들, 영혼들의 조화와 안식을 기원한다. 군더더기 없는 마무리다.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하면서도 자우림답게 풀어낸 음악과 이야기이기에 더욱 반가운 작품이다. 여전히 왕성한 창작력과 탁월한 표현력으로 어디에도 없는 이들만의 캐럴을 완성했다. 사실 성탄절이라고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분명 어둡고 울적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낼 것이다. [MERRY SPOOKY X-MAS]는 ‘메리 크리스마스’에도, ‘스푸키 크리스마스’에도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다. 그 흔한 ‘시즌 송’ 하나 없이 달려온 25년의 끝자락에 선물 같은 앨범을 만난다.


자우림(Jaurim) - '미스터 클라우스+크리스마스에 눈이 온다면'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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