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노블레스 2023년 3월호 기고
2023년 1월 1일, 미국의 유서 깊은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200명’ 명단을 발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전 세계 음악 팬들은 자신이 꼽은 음악계 ‘GOAT(Greatest of All Time)’ 리스트와 <롤링 스톤>의 리스트를 비교하느라 새해 벽두부터 바빴다.
명단의 정상을 차지한 가수는 솔(soul)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다. <롤링 스톤>은 그를 1위로 선정하며 “가수들의 가수이자 여왕들의 여왕”이라고 치켜세웠다. 2위 에는 “R&B 보컬의 표준”이라고 설명한 휘트니 휴스턴이, 3위에는 불멸의 걸작 ‘A Change Is Gonna Come’(1964)을 부른 솔 가수 샘 쿡이 올랐다. 그 밖에 빌리 홀리데이, 머라이어 캐리,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 비욘세 등이 10위 안에 들었다. 누구 하나 부정할 수 없는 이름이다.
<롤링 스톤>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의 리스트는 ‘위대한 목소리’를 나열한 목록이 아니다. 독창성과 영향력, 음악의 깊이, 음악적 유산의 너비를 두루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일반적 기준에서 명창이라고 볼 수 없는 밥 딜런(15위), 리아나 (68위) 등이 포함된 건 그 때문이다. ‘남미의 목소리’라 불린 아르헨티나의 전설적 포크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160위), ‘이집트의 네 번째 피라 미드’라고 불릴 만큼 이집트의 자부심으로 통하 는 가수 움 쿨숨(61위) 역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국 가수도 200위 안에 두 명이 이름을 올렸다. 아이유(135위)와 방탄소년단 정국(191위)이다. 영미 가수가 아니면 해당 국가의 전설적 베테랑 뮤지션을 주로 선정한 것과는 결이 다른 파격적 결정이다. 아이유에게는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한국의 대표적 보컬리스트이자 여성 가수 최초로 서울의 올림픽 주경기장 티켓을 매진시켰다”는 설명이, 정국에겐 “방탄소년단의 다재다능한 막내로서 탁월한 보컬을 들려준 다”는 코멘트가 붙었다.
리스트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우선 해외에선 빠진 가수가 많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명단에 들지 못한 셀린 디온의 팬들은 <롤링 스톤> 본사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일 만큼 거세게 항의했다. 국내에선 아이유와 정국의 순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았다. 우리 가수가 명단에 든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정말 아이유가 U2의 보노(140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147위)보다 뛰어난 가수라고할 수 있을까?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200위 안에 들지 못했는데, 정국이 191위라고?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롤링 스톤>의 리스트일 뿐, 절대적 순위는 아니다. 기사 하나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141위)와 아이유의 국제적 위상이 뒤바뀌진 않는다. 다만 의아한 것이다. 가우 코스타(브라질, 90위), 너스라트 파테 알리 칸(파키스탄, 91위) 등 순위권 내 다른 해외 가수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이들의 선정 기준 결과 면면을 따지면 한국에서도 김민기, 양희은, 조용필, 서태지 같은 선구자가 대표로 들어 가는 게 어울려 보인다. 영미를 중심으로 명단을 짜면서 굳이 젊은 한국 가수 두 사람을 포함한 이유가 뭘까.
<롤링 스톤>의 지난 10년은 위기 돌파를 위한 나날이었다. 오보로 인한 소송전과 심각한 매출 하락, 급기야 기업 매각을 겪으면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쳤다. 이때 이들이 발견한 동아줄 중 하나가 K-팝이었다. <빌보드>가 2018년에 방탄 소년단을 커버에 등장시키고 박스 세트까지 내는 걸 본 이들은 3년 뒤 정확히 같은 전략으로 높은 수익을 거뒀다. <롤링 스톤>에서 박스 에디션이 나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작년에는 블랙 핑크의 박스 세트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 편집부를 기쁘게 했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각종 명단에서 K-팝 가수의 비중이 늘어난 것도 비슷한 시기부터다.
비단 <롤링 스톤>만의 일은 아니다. 영국의 음악 잡지 <NME>는 최근 몇 년 동안 K-팝 앨범마다 4점, 5점을 남발하고 있다. 호평하면 기사가 실린 웹페이지 방문자가 늘어서 좋고, 국내 기획사들은 이를 보도 자료로 쓸 수 있어 좋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태다. 과거 그들이 얼마나 콧대 높은 잡지였는지 기억하는 입장에선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우리의 K-팝이 그만큼 관심과 흥행을 보증하는 콘텐츠가 되었다는 방증이니 기뻐해야 할지, 시대를 선도하던 음악 잡지들이 K-팝 인기에 편승하려는 모습을 씁쓸하게 여겨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