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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복자의 썰 Jul 19. 2021

치과와 농구

Longing for Art

얼마전에 실로 오랜만에 내 이력서를 써야 하는 일이 있었다. 치대를 졸업하지 벌써 2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여백을 채울 내용이 별로 없다. 한 곳에서 20년 넘게 한 오피스에서 일을 한 경험이면 충분하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한 줄이면 충분했다. 결국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했고, 그래서 써 내려나간 내 Biography의 시작은 이랬다.

If I had not become a dentist, I would have become an artist like my father. However, I believes artistic talent has played a key role in my dental career and that excellent dentistry itself is an art. 내가 치과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내 아버지처럼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적 재능이 내 치과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최고의 치과치료는 바로 예술 그 자체인 것이다.

내 아버지는 평생 서예가로 살아오셨고, 난 그 곁에서 늘 먹 냄새를 맡으며 나도 그림과 예술에 대한 꿈을 키우며 살았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장래 대학 진학을 미대로 적어 내었다가 담임선생님한테 불려 가 강제로 고쳐쓰기도 했었다. (그 당시에는 그랬었더.) 미국으로 이민을 온 뒤에 처음 들어간 대학교에서 영어가 안 되는 내가 유일하게 A를 너무도 쉽게 따낸 과목도 ‘Drawing’이었다. 하지만 그 꿈을 계속 이어가기에는 너무도 배고픈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정신없는 학교생활을 보내면서 치과로 정착하게 되었지만 내 그림에 대한 꿈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치의학이라는 학문에 그림이 너무 도움이 되는 것을 뜻하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10 여전 전부터 모든 차트가 디지털화가 되어 이젠 오피스에서 종이기록은 사라졌다. 하지만 종이로 모든 기록을 남기던 그때 환자들의 차트는 내 스케치북이 되곤 했다. 치료를 끝낸 후 Clinical Note를 써야 할 때, 내 차트에는 글자만큼 그림도 많았다. 쉬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내 그림에 대한 열망은 드디어 그 갈증을 해소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환자들을 치료하는 Chair에서도 내 그림들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 병원 가운 주머니에는 항상 굵은 사인펜들이 꽂혀 있었고, 환자분들이 대화로 치료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 보이기 시작하면 스태프들은 치과도구가 올라와 있는 테이블을 치우고 종이를 펼쳐준다. 스켓치북인 셈이었다. ’Art 101’을 외치며 내가 그리는 그림을 같이 흥미롭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가끔 설명을 다 이해한 환자분들이 그 종이를 갖고 싶어 부탁을 하기도 했다. 농담 반으로 서명까지 해 달라고 했다.그렇게 시작한 내 그림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어 지금 내 병원에는 내가 그린 그림, 내가 환자들과 직원들을 찍은 사진이 벽에서 벽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제는 쓸모가 없겠구나 하고 아쉬워 했던 미술적 재능이 이제는 매일의 일터에서 떨어질 수 없는 소중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번 가을부터 치대학원을 시작하는 우리 아들은 아무래도 미술 쪽으로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약간 우려가 되기도 한다. 물론 미술적 재능이 치과치료의 근본이 될 수는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무시한 채, 무수히 반복하는 연습과 훈련만이 최고의 수준에 다 달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조금씩 허용된 자기만의 ‘개성’을 찾고 다듬어서 우리의 치과치료 현장에서 잘 활용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면 좀 더 맛깔나고 나만의 흔적이 오래가는 작품을 만드는 자부심은 키워볼 만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죽어라 농구만을 좋아한 아들이 나중에 치과치료를 하며 아들이 사랑에 빠진 농구가 어떤 식으로 매일의 치료 현장에서 환자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