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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Oct 12. 2024

물, 별, 그리고 알함브라 1/4

그라나다에 오면 기대가 있었다.  스페인 출신 타레가가 작곡하고 어마무시한 사람들이 연주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연주곡이 이곳에 오면 발걸음 닿는 골목마다 들릴 줄 알았다..  한국에서 잠시 적을 두었던 대학에서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 있었는데 선배들이 후배들 기를 죽이기 위해서 필살기로 연주하던 곡이었다. 그 때부터 이 곡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그라나다를 향해 날라오는 밤 비행기 안에서 무한반복으로 이 연주곡을 듣고 왔는데..  기대가 컸던 탓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주일을 꼬박 알함브라 궁전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고, 조그만 그라나다 구석구석 안돌아 다닌 골목이 없으나, 그 기타음악은 들리지 않았다. 수많은 카페 어디에서도. 티켓 사서 들어간 아주 작은 지하실에서 열린 기타 연주회에서도 이 곡은 나오지 않았다. 젊은 연주자가 자신있게 비틀즈의 노래는 장황히 설명하며 기타 연주를 하나 정작 ‘알함브라의 추억’은 나오지 않았다. 유명한 곡이고, 바로 이 곳이 배경이면, 내 기대는 무리는 아닐 것 같은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유명한 곡 아니었나?  서울 거리에서 아리랑 듣기를 기대한 것이었을까? 


그래서 .. 그래서… 내가 그 음악을 틀었다. 묵었던 숙소 발코니에 나가 해가 지고, 9월 노을이 급속히 사라지면, 짙은 파란색 하늘 뒤로 별과 달이 나오기 시작할 때, 가지고 간  블루투스 스피커로 ‘알함브라의 추억'을 틀었다. 밑에 집에서 스패니쉬로 열심히 떠드는 아줌마들 수다를 덮기 시작한다. 그리곤 고즈넉한 스페인 기와집 지붕들 위로 기타소리가 어둠과 함께 퍼진다. 사방이 조용하다. 가까이서 들리는 교회당 종소리가 추임새를 더한다.  알함브라 궁전 밑에서 듣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제서야 포만감이 느껴진다.


급하게 정했지만 숙소의 위치는 그야말로 백반불짜리 였다. Airbnb의 장점을 최대화한 숙소였다. 편안함과 럭셔리를 조금만 양보하면.. 이 곳처럼 350년된 작은 건물 3층 꼭대기에 방을 얻을 수 있다. 짐을 가지고 오를려면 숨이 턱에 차지만, 눈이 호강하는 작은 발코니가 있었다. 밤이 되면 그 곳에 나아가 앉아 있었다. 낡은 스페인 기와들이 손에 닿을듯 눈앞에 빼곡하고, 밤이 되면 노란불이 미로처럼 이어진 작은 골목들을 위에서 내려본다. 시간마다 딸랑거리는 교회 종소리가 청량하다. 오래된 집에서 풍기는 소똥냄새 같은 은은하고 구수한 냄새가 환상이다. 그리고 조금만 고개를 들면 그 음악의 주인공인 알함브라 궁전이 바로 눈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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