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에서 시작하는 프롤로그
루이스의 책을 읽기가 힘든 이유 중의 하나가 뭐냐면, 그가 자주 인용하는 고대 영문학 문헌이 영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인데. 마치 뭐와 같은냐면.. 서양인을 붙잡고 옛날 중국에 노자와 장자 사이에 '열자'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분의 유명한 '지네' 이야기를 상통한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그 표정이 어떻까? 그런 것이다. 루이스가 예로 드는 영문학의 고문 때문에 본문의 흐름을 놓치기가 쉽다. 그런 것들은 적당히 무시하고 흐름을 이어나가는 곳에 밑줄을 그어 나가면 이해가 수월해진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읽기 시작하면 그의 사색에 접근하게 되고, 그 심오함에 감탄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루이스의 매력이다. 시간을 두고 그의 매력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네 가지 사랑 중 가장 하이라이트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한국어 번역본에는 '자비'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유는 루이스가 'Agape'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Charity'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다. 영어성경에도 번역본에 따라 이 두 가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신학적인 논쟁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것은 접어두고. 다만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특별하게 구분하기 위해 '아가페'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선 나도 불만이다. 루이스도 그런지 하나님의 사랑을 자비로 표현한다. 단어 표현은 여기까지 하고.
하나님의 사랑, '자비'를 설명하기 위해 이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질문이 책의 본문 끝 부분 즈음에 나온다).
루이스는 이 질문에 대해 명쾌히 대답을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과연 자연스러운 사랑만으로 그 대상과 시간을 보내었는지, 아니 그 자연스러운 사랑에 묻어 있는 신의 속성에 가까운 사랑을 함께 구별하여 사랑을 했는지에 대한 고찰을 이야기한다. 한 사랑 안에 두 가지 속성이 함께 들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이야기하려면 과연 자연스러운 사랑이 무엇인지, 또 그 사랑의 근본 속성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아야 위의 질문에 대한 루이스의 설명을 이야할 수 가 있다.
루이스는 사랑의 성격에 따라 우리가 사랑이라 느끼는 세 가지 기본적인 감정을 '애정(Affection)', '우정(Friendship)', '에로스(Eros)'로 나누고 거기엔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한다. 이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정독을 하게 되면 왜 이렇게 복잡한 사랑의 속성에 대해 설명하는지 그 이유를 놓치기 쉬운데, 결론에서부터 시작을 한다면 왜 이 세 가지 사랑 설명에 그렇게 공을 들이는지가 이해가 되고 책의 결론이 어설프게나마 상상이 되고, 기대도 커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지난달이 나의 어머니 첫 기일이 있었다.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가 시간이 점 점 더 지나가면 돌아가신 어머니/할머니에 대한 기억 중에 정말 따뜻하고 좋은 것만 머리에 남고, 우리가 힘들어했던 어머니/할머니와의 기억은 점 점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어머니/할머니하고 나누었던 정말 순수한 사랑은 남고, 거기에 억지와 집착이 섞여 있었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 순수한 사랑을 한 순간들은 우리가 하늘나라를 가서라도 다 기억을 할 것이다. 그 사랑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왔고 거기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랑은 하늘나라에서는 볼 수 가 없기에 우리는 기억 못할 것이다.그러니 남아 있는 우리들이 그 교훈을 기억해 정말 순수한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 그 순수한 사랑은 신에게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정말로 순수한 사랑과 억지와 집착이 섞여 있는 사랑을 구분할 수 있을까? 루이스의 책, '네 가지 사랑'을 읽다 보면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부터 루이스가 이야기하는 그 첫 번째 사랑, '애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