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보다 산이 좋아
난 내가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좋은 기억을 가진 여행은 대부분 산이었고, 여행지를 선택할 때면 산으로 향했는데도- 누가 산이 좋냐, 바다가 좋냐 물으면 바다를 더 좋아한다 답했다. 바다를 생각하면 탁 트인 바다와 파도 소리, 예쁜 노을이 생각나고 산을 생각하면 특별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어 그랬던 모양이다. 어쩐지 산은 심심하게 느껴졌고 바다가 더 여행답게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나를 모른다.
베트남에 살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역시 산마을 사파였다. 한국 가기 전에 꼭 가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사파 주말 날씨가 좋다는 소식에 월요일 휴가를 내고 사파로 향했다. 혼자 머리 끄덩이를 잡고 시간 계산을 하며 움직일 정도로 급하게 결정한 여행이었다.
새벽 6시. 밤새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자느라 피곤함이 쌓였는데도 사파를 보는 순간 또다시 마음이 뛰었다. 기분이 좋아 혼자 ‘흐-’하고 웃으며 산마을을 돌아다녔다. 내 첫 목적지인 깟깟마을을 구글 맵스에 검색해보니 ‘걸어서 44분’이 걸린다고 했다. 하노이였으면 걸어갈 상상도 못 할 거리였지만, 내 옆엔 오래된 집들과 산이 있었고, 강아지가 지나다녔고, 산이 높은 덕에 구름까지 옆으로 떠다녔다. 잘 닦인 길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을 보며 걷는 게 좋았다.
둘째 날 밤. 저녁을 먹고 느지막이 숙소에 들어왔다. 깊은 산속, 내 마음에 쏙 드는 포근한 숙소. 마지막 밤이니 숙소에서 마련해놓은 벤치에 앉아 별을 보고 싶었다. 차가운 바람에 담요를 들고 나와 벤치에 앉았고, 핫초코를 한 잔 주문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별을 보면서 노래를 듣는데 -
내가 산을 좋아한단 사실을 그때 알았다.
떠오르는 바다는 없는데 많은 산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산들의 기억은 모두 이 기분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공기 안에서 산을 오르는 것, 혹은 그냥 산속에 가만히 앉아 별을 보고 노래를 듣는 것.
어떤 바다가 내 마음을 바꿔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