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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Jul 12. 2023

개발하다 철학하기

책 [5분 뚝딱 철학] - "최초의 환원주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접할 때가 많다. 정치, 경제, 시사부터 시작해서 과학, 철학, 종교까지.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오히려 너무 모르다 보니 모른다는 인지를 거의 못하고 산다.


그나마 전문성을 조금 가지고 있는 영역은 좀 낫다. 아무래도 내가 개발자라 개발을 하다 보면 새로운 형식의 코드, 잘 짜인 라이브러리, 체계적인 프레임워크 등을 접할 일이 종종 있다. 내가 개발한 코드가 아니니 당연히 잘 모르는 영역이다.


이렇게 잘 모르는 영역을 접했을 때, 나의 반응은 보통 이렇게 갈린다.
- 아, 이런 게 있구나. (끝)
-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잘 쓸 수 있을까. (써먹을 궁리)
- 이건 의도가 뭘까. 왜 이렇게 동작할까. (대상에 대한 궁금증)


당연하겠지만 처음 접한 코드에 대해 궁금해하며 개발 의도부터 시작해서 그동안의 히스토리, 이런 동작 방식을 개발한 이유 등을 탐구할 때 가장 많은 것을 얻는다. 그렇긴 한데 사실 "이런 게 있었어?" 하면서 가져다 쓰고, "어떻게 써먹지" 궁리하다가 역시 그대로 가져다 쓰기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개된 소스나 라이브러리, 프레임워크는 그대로 가져다 쓰라고 공개된 것이긴 하다.)


문제는 그렇게 가져다 쓴 코드, 라이브러리, 프레임워크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다. 코드가 짧으면 어찌어찌하겠는데 규모가 큰 라이브러리나 프레임워크의 문제라면 그때부터 머리가 아프다. 나는 그저 가져다 썼을 뿐인데 재앙이 닥쳤다고 생각한다. 라이브러리나 프레임워크의 문제라면 (심지어 운영체제, 개발 언어의 문제라면)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고대의 그리스 사람들도 그랬다.



책 [5분 뚝딱 철학, 저자 김필영] - "최초의 환원주의"



당연하겠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그런가 보다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신화를 만들어 신의 힘으로 자연 현상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로마 신화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초자연적인 신화로 이해했죠.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은 제우스신이 노했기 때문이고, 바다에 풍랑이 몰아치는 건 포세이돈이 화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대 그리스 문명뿐 아니라 대부분의 고대 문명이 비슷했어요. 이러한 신화를 그리스어로 미토스mythos라고 해요.


신의 분노는 인간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재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나톨리아 반도의 도시인 밀레투스에 살던 탈레스는 달랐다. 탈레스는 자연현상을 신의 분노로 보지 않고, 그저 현상으로 보았다. 또한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지만 탈레스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물이 있어야 씨앗이 발아하고, 그 씨앗을 통해 풀이 자라나고, 그 풀을 먹고 동물이... 여하튼 중요한 것은 탈레스는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현상을 그 자체로 바라보며 분석했다는 것이다.


탈레스는 최초로 환원주의적인 생각, 철학적 사유를 시작한 것입니다. 환원주의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자연도 근본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로 구성되어 있다고 여깁니다. 탈레스의 생각과 주장은 이성적 사유의 시작, 즉 최초의 철학인 셈이지요.


탈레스를 시작으로 밀레투스에서는 밀레투스학파가 등장한다. 이들은 자연적인 현상을 이성적으로 탐구하며 그들이 '아르케'라고 부르는 만물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고민하였다. (만물의 근원은 공기다, 만물의 근원은 불이다, 만물의 근원은 아페이론이다)


자연철학자들은 자연현상을 사유의 힘으로, 즉 이성적인 생각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리스어로 이성적 사유를 로고스logos라고 해요


서양 철학에서는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라고 한다. 탈레스를 시작으로 밀레투스학파가 형성되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주류로 자리 잡는다.


철학의 시작은 결국 미토스에서 로고스로 넘어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자연 철학자들을 통해 드디어 철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공개된 소스, 라이브러리, 프레임워크, 심지어 운영체제나 개발언어라 하더라도 결국은 나와 같은 (나보다 훨씬 똑똑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사람이 짠 코드이다. 개발 의도, 히스토리, 동작 방식 등을 확인해 보면 얼추 문제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문제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면 내가 직접 코드를 수정하든, 워크어라운드를 고안해 내든, 아니면 고쳐달라고 원작자에게 요청을 하든 결국 방법은 있다.

이렇게 개발을 하면서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 개발뿐 아니라 일상에서 나 자신에 대해, 내 인생에 대해,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 내 머릿속 다양한 생각들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철학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어렵지만, 철학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철학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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