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역사의 역사] -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키케로는 ‘이야기’를 중시했는데 헤로도토스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다. 랑케는 ‘사실의 기록’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투키디데스는 사실을 검증하고 해석하는 솜씨가 빛났다.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 승리를 주도한 공으로 그리스 세계의 맹주가 되었던 만큼, 시민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흥미진진한 마라톤 평원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헤로도토스가 그 이야기를 문자로 쓴 책이 바로 『역사』다. 그래서 『역사』에는 강연을 녹취한 듯한 구어체 문장이 많다. 하지만 헤로도토스가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려고 분투했기에 『역사』는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와 달리 시가(詩歌)가 아닌 사서(史書)로 인정받았다.
투키디데스는 도시국가들 사이의 정치적・경제적 갈등이 전쟁이라는 폭력 사태로 터져 나온 원인을 밝히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는 어떤 사건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는 미래를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달려 있으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바로 그런 사건이라고 보았다.
헤로도토스는 당대의 인간이 이룬 업적을 후세에 전하고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밝히겠다는 목적의식을 품고,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포함한 ‘세계’를 대상으로 설정했으며, 페르시아 전쟁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토대로 삼아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투키디데스는 그와는 다른 측면에 조명을 비추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에서 벌어진 내란 상황도 면밀하게 관찰한 것이다. 그는 특히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재현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일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분석하고 평가했다
20세기의 역사가 에드워드 H. 카(1892~ 1982)도 이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일했다. 역사는 역사가의 목적과 사실, 사실에 대한 해석과 역사가의 상상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복합적 피드백의 산물이라고 본 카는 매우 간결하고 우아한 문장으로 그 생각을 표현했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를 쓴 서구 역사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리스 고전에 통달했고,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책은 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널리 읽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