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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Luna Jul 08. 2021

여름에 올인하는 사람들

여름휴가를안 간다고?그래도 괜찮겠니?

6월 초에 아이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으니 집에서 온 가족이 부대끼며 삼시 세 끼를 먹은 게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핀란드에서 아이들 여름 방학은 6월부터 8월 중순까지 두 달 반. 숙제도 없고, 학원도 없는 완전한 휴식시간이다.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6월은 1-2주짜리 여름 캠프들도 있고, 어린이집은 필요에 따라 축소 운영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7월부터 8월 초까지는 온 나라가 여름휴가 모드이다. 


한국에서도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쭉 해 왔던지라 항상 여름만 되면 한 달씩 휴가 가버리는 유럽 및 호주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들은 저렇게 즐기며 살고, 우리는 1-2주 휴가 가는 것도 눈치 보며 가나 싶었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온 나라가 "휴식의 중요성"을 거의 종교처럼 믿고 철저하게 따르니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방학 일주일 전부터 슬슬 교과서를 학교에 반납하고 영화도 보고 놀러도 다니면서 방학 모드에 들어간다. 첫째 공부가 좀 뒤처지는 것 같아서 방학 때 시간도 많은데 교과서라도 한 번 보면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건 왠 걸, 행여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온전한 휴식을 위해 학교에서 알아서 교과서들을 걷어간다. 개학하고 또 일주일은 그동안 노느라 두고 온 멘탈을 잘 챙기기 위해 본격적인 수업은 시작하지 않고 적응하는 데 사용한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어차피 고객들도 다 휴가 가고 없고, 공무원들도 휴가 가고 여름 인턴들만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이없는 실수들도 좀 있단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회계연도가 7월 1일에 시작되니 6월/7월이 엄청 바쁜 시기인데, 조직 변경에 따른 불가피한 구조조정이 발생하면 이곳의 노동법에 따라 직원대표와 적어도 8주(6주+사려 기간 2주) 동안 Consultation을 진행하여야 해서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이다. 그런데 심지어 consultation을 하는 와중에도 노측 대표, 사측 대표 모두 휴가를 간다. 물론 사안이 중요한 만큼 Summer Cabin(여름 별장?)에서, 트레일러에서 온라인 미팅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서로의 휴가 기간을 확인한 뒤 이땐 좀 쉬자는 동의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조조정이 될 수 있는 consultation의 대상이 된 직원들도 휴가를 간다 (퇴사 시에 잔여휴가는 돈으로 보상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언제 해고될지는 몰라고 일단 계획했던 가족들과의 여행은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곳도 근속기간에 맞춰 휴가가 쌓이는 제도이다 보니 입사한 첫 해(정확히는 다음 휴가 캘린더가 시작되는 4월 1일)에는 매월 2일의 휴가가 발생하는데, 그렇다 보니 이직을 하거나 첫 근무를 시작한 직원들의 경우에는 사용할 휴가가 별로 없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입사할 때 네고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급으로 2주 휴가를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이것도 가능하다.  

오늘 미팅에서 휴가 계획을 이야기하다가 나는 겨울에 한국에 다녀올 생각이라 올여름에는 잠깐 2-3일만 쉴 거라 이야기했더니 동료들이 아주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래도 정말 괜찮냐며 물어본다. 완전히 업무에서 벗어나 2주는 반드시 쉬어야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좋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갖고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 만큼 휴가 관련된 법령(그렇다 무려 Holiday Act라는 게 따로 있다.)에서도 여름휴가는 반드시 이어서 2주 이상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기에 겨울에도 최소 1주 휴가를 가는 게 국룰. 


그렇다고 핀란드의 휴가 일수가 한국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다. 이곳은 일단 입사해서 새로운 휴가 캘린더가 시작이 되고 나면 (입사하고 처음으로 4월 1일이 지나면) 월 2.5일의 휴가를 주는데, 일 년 30일의 휴가 안에는 5일의 토요일이 포함되어 있다. 즉 한국식으로 해석하자면 휴가는 25일인 것이다. 5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똑같다. 첫 해를 제외하고는 근속연수에 따라 증가하지는 않는다. 공휴일도 어찌나 짠 지 참 쉬는 날 없다 싶다. 점심시간도 보통 30분,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일찍 시작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건지, 일찍 시작하는 학교 시간 때문인지 8시에 근무를 시작해 4시에 퇴근하는 걸 선호하다. 물론 뼛속까지 미국 회사인 우리 회사 사람들은 넘쳐나는 일복으로 주 37.5 시간을 맞춰서 일하는 사람은 적다. 그래도 일하는 근무시간 동안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올리며 집중해서 일하고 대부분 빨리 일을 마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6월 초엔가 이곳 화웨이 보안 최고책임자(Chief Security Officer)가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주 80시간씩 일하며 여름휴가도 4년 동안 못 갔다며 미국이나 중국을 보라, 핀란드가 놀기만 해서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온 국민의 조롱을 받고 결국 CEO가 사과하는 일까지 발생한 일이 있었다. 재미있는 반응은 왜 우리가 중국이(혹은 미국이) 되고 싶냐 라는 것이었는데, 일초라도 화웨이 CSO의 코멘트에 공감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엄연한 꼰대 세대이다 보니 '노오력'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한다. 네가 잘되고 싶으면 열심히 해야지, 어떻게 즐길 거 다 즐기면서 잘 되길 바라냐 라는 개인 책임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이제는 좀 더 넓혀서 어떻게 하면 사회구조가, 커뮤니티가, 그리고 개인들이 행복에 대한 기준을 다양화하고 모두가 잘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방향으로 좀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고 싶다. 내년 여름엔 나도 3-4주 길게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해 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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