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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Luna Jan 25. 2022

70대 부모님의 핀란드 한 달 살기

아버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자주 오실 거라 하셨다.

코로나 상황이 수시로 바뀌다 보니 올해 봄부터 진즉 겨울에 딸들과 가려고 벼르고 있던 한국행은 날짜가 다가올수록 심란한 숙제처럼 무겁게 느껴지기만 했다. 10월 중순경 확인했던 핀란드 사립병원의 PCR test 비용은 인당 300유로, 즉 우리 셋이 다 받는다면 어른 비행기표 한 사람 값이 나오는 비용이었고, 막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라 백신 접종 전이었어서 대사관에서 인증을 받아 들어가더라도 자가격리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INFP 기질을 발휘하여 어느 순간 즉흥적으로 그냥 엄마 아빠 보고 오라 할까 생각이 들었는데, 엄마한테 슬쩍 떠보니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같이 한국에서 보기로 했던 에든버러에 있는 오빠 부부에게도 변경된 계획을 이야기해 보았더니 오히려 변경을 반기는 모습이다. 이후 일사천리로 엄마 아빠 비행기표 구매를 도와 드리고 오빠네도 짧지만 연초에 1주일을 오는 걸로 결정, 우리 가족의 핀란드에서의 랑데부 계획이 시작되었다.         

(꽁꽁 얼은 호수. 그리고 그 위를 가로진 사슴의 발자국)


70대 부모님과 함께 한 달 살기

다섯 식구 각각 쓰는 방 말고는 소위 게스트 룸이 따로 없는지라 TV가 있는 비교적 큰 공간에 문을 달고, 큰 소파를 옮겨 소파베드를 준비했다. 중형 개(허스키)와 실내에서 함께 털 날리며 살고 있는 게 불편하시지는 않으실지, 다리가 불편한 아빠는 2층에 있는 부엌에 잘 올라다닐 수 있으실지, 낮이 길지 않아 심심해 하시진 않을지 염려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너무 크게 앞서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 커리어 인생에 첨으로 3주 연속 휴가를 내고 나도 핀란드인들처럼 진정으로 언플러그드, 디스커넥티드, 디지털 디톡스 해본다는 각오로, 그리고 서울로 대학 가면서 인생의 반 이상을 떨어져 살았던 엄마 아빠와 다시 같이 사는 기분을 만끽해 본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12월 15일 부모님이 공항에 짠~ 하고 나타났고, 해가 바뀐 1월 15일 PCR test 결과와 백신증명서를 손에 꼭 쥔 부모님과 공항에서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부모님 눈에 좋아 보였던 것 들 


1. 간단한 아침식사 

이건 핀란드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난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18년 동안 한국에서든 핀란드에서든 아침은 꼭 시리얼을 먹어왔다(아.. 해장하기 위한 라면은 제외). 이곳에서 부모님은 우유도 고소하고, 계란도 담백하고, 사과, 귤, 바나나 어쩜 다 이렇게 맛있냐면서 감탄을 종종 하셨는데, 기분 탓일 수는 있겠지만 뭐 자연방사 계란이나 스페인 햇볕을 듬뿍 받고 자란 과일들이 맛이 나쁘진 않으니깐... 무엇보다 엄마는 매일 삼시세끼 밥 차리는 게 너무 번거롭다며 아빠에게 계속 아침에 이렇게 간단하게 먹으니 좋다는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한국에 돌아가기 며칠 전 아빠는 이제 우리도 한국에 가면 아침은 시리얼로 간단하게 먹을 거라는 선언을 하셨고, 엄마는 평생의 굴레에서 해방~되신 양 기쁘게 반응하셨다. 

2. Nature Trail 그리고 바비큐

한국도 올레길을 시작으로 "무슨무슨 길"들이 참 많은데, 핀란드에는 Luontopolku(루온또뽈꾸)라는 트레킹 코스들이 정말 많다. 여기도 숲, 저기도 숲, 여기도 호수, 저기도 호수 자연 자연하는 나라인지라, 같은 숲의 네이처 트레일도 거리 별로 짧은 코스부터 긴 코스까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코스별로 색깔을 달리하는 표시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를 나무에 쭉 붙여 놓아 그 표시만 보고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에스포에서 관리하는 Luuki라는 곳에 소시지를 좀 사고 코코아와 차를 준비해서 바비큐를 하러 갔다. 앞팀이 이미 장작을 태우고 있어 운 좋게 처음부터 불을 지피지 않고, 아이들을 시켜 다음 사람들을 위해 장작을 좀 갖고 오라고 시키고는 가져간 소시지를 아주 맛나게 구워 먹었다. 이곳 소시지는 백 퍼센트 고기로 만들어진다. 물론 화학성분이 안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밀가루가 아니고 고기 함량 백프로라 이런 가공식품을 즐겨하지 않으시는 아빠도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바비큐 하는 공간에 장작들을 쌓아 놓은 곳이 있으니 가져다 쓰고 다음 사람을 위해 바비큐 근처에 놓거나, 사용한 만큼 장작을 쪼개 놓거나 하면 된다.         


3. 뮤지엄 카드  

뮤지엄 카드는 74유로인데, 1년간 핀란드 내 300여 개의 뮤지엄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뮤지엄의 인기도나 전시에 따라 입장료가 25유로씩 하는 경우도 있으니 3번~5번 이상 뮤지엄을 갈 계획이라면 무조건 뮤지엄 카드는 필수다. 엄마 아빠를 위해 크리스마스 할인행사 시에 할인된 가격으로 뮤지엄 카드를 두 개 구입해 두었다. 카드는 반드시 본인 이름이 맞게 들어가 있어야 하니 신분증의 이름과 철자가 맞게 신청해야 한다. 부모님과 1주일에 3번씩은 뮤지엄에 갔으니 충분히 뽕을 뽑으셨는데, 엄마는 12개월간 쓸 수 있다는 말에 다음에 오셔서 또 써야겠다며 잘 챙겨두시겠다고 하셨다. 

(사진은 헬싱키의 유명한 도서관 Oodi. 한국사람들은 "어디가? 응 오디가"라는 실없는 농담을 즐겨한다.)


4. 도서관의 공공서비스

핀란드는 인구에 비해 도서관이 정말 많다. 핀란드 교육과 국민 복지의 핵심 사업이었던 만큼 도서관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참 많은데, 거리적 여건으로 도서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지역이나, 사용을 더 권장하기 위해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가 있는 동네에는 도서관 버스가 다닌다. 오디에는 레이저 프린터, 3D 프린터, 악기 연습 스튜디오, 미싱기, 플레이스테이션 룸, 그룹 토의 및 스터디 룸, 취미활동 룸 등이 구비되어 있어 예약 후 사용할 수 있고, 보드게임, CD 등도 대여가 가능하다. Gender Neutral 한 남녀가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을 먼저 들러 손을 씻고 3층 카페에서 부모님과 까페라떼와 빵을 사 먹고 천천히 도서관 탐방을 했다.   

 

5. 어마어마한 눈 그리고 빠른 제설작업

부모님이 계셨던 한 달간 눈은 많이 내리고 하늘은 파란 운 좋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눈이 엄청 내리고, 날은 빨리 저무는데도 사람들이 조깅도 하고, 산책도 하고 끊임없이 일상이 지속되는 것이 신기하셨나 보다. 아침 8시 캄캄한 길을 뚫고 스스로 걸어서 동네 학교에 가는 딸들이 신기한지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시는가 하면 3시 좀 넘어서부터 캄캄해져 가는 날에 적응이 안돼서 자꾸 저녁 먹을 시간 되었으니 집에 돌아가야 하지 않냐고 물어보시고ㅋㅋ (추우니까 컴컴하니까 집안에만 있어야 하면 이곳에서는 6개월은 못 나간다며 과장을 섞어 내가 말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씨가 많다 보니 제설작업은 정말 빠르다. 예보에 따라 배치를 하는 것인지 눈이 좀 왔다 싶으면 눈을 밀어내는 차로 싹 밀고, 작은 돌들을 구석구석 한 층 깔아준다. 

6. 통행료 없는 고속도로, 비싸지 않은 슈퍼 먹거리 가격 

주말에는 고속도로를 타고 뽀르보라는 작은 마을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고속도로를 타고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통행료가 없다면서 신기해하셨다. 난 이곳에 살면서도 평소 탔던 길이 고속도로라고 생각을 안 해서 그랬는지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애들 셋 대학 등록금과 고속도로 톨비를 열심히 낸(그리고 낼) 피 같은 세금으로 퉁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핀란드에서는 외식이나 인건비가 퀄리티와 상관없이 비싼 편이라 주로 외식은 뷔페(초밥이나 피자 뷔페)를 이용하고 대부분은 집에서 해 먹었는데, 우유, 과일, 고기, 치즈 등이 한국에 비해 많이 싼 편이라 부모님이 부러워하셨다. (통 크게 밥도 사주시고, 장도 봐주시고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산타의 나라에서 핀란드식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고, 사우나 용품들 구경한 게 제일 마음에 드셨을 것 같은 생각이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 건 다음 이야기에서 풀어봐야겠다. 


부모님이 바리바리 싸오신 먹을거리들을 거의 다 먹어 해치울 즈음 한국에서든 핀란드에서든 다시 만날 날이 오길 바라본다. 한 동안 꿈을 꾸고 난 것 같은 날들이 계속될 것만 같다. 아이들이 커가고 나이가 들 수록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일분일초, 하루 이틀이 모두 소중하다. 그 시간들이 유한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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