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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Luna Mar 24. 2022

술, 담배, 마약, 섹스

중1에게 듣는 어두운 이야기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5년 연속 1위 핀란드에도 무서운 중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그 무서운 중학생들 중 2명이 우리 집에도 있다. 오히려 좀 더 성숙한 고등학생들은 차라리 사고를 덜 일으키는데, 외모도 격변을 겪는 중에 자신의 한계를 매일같이 시험하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인 중학생들은 참 어려운 존재들이다. 나 역시 중학교 때 마음도 신체도 참 못난 시기를 겪었기에 한편으로 딸에게 듣는 매일같이 터지는 막장 드라마 이야기나 예쁜 얼굴에 늘어만 가는 울긋불긋 여드름들을 보며 그땐 원래 그런 거라고 속으로 나를 진정시키곤 한다.     

가끔 미국의 교포 가족들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한국에서 자란 부모 세대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 세대들의 문화/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나 부모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이 지금의 한국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보수적인 느낌이라 적잖이 놀랄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쿨한 엄마가 될 거라고, 언제나 친구처럼 기댈 수 있는 부모가 될 거라고 다짐을 하고는 했다. 


핀란드 교육이 한국에서 한참 회자되던 시기가 있었다. 나 역시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핀란드 교육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사서 읽으며 마치 핀란드식 교육이 한국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을 갖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핀란드에서 아이들을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에 보내면서 빼박 한국 엄마가 볼 때는 교육강국이라며 왜 이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에피소드들도 많이 듣게 되고, 기대가 컸기에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급기야 중 1 딸로부터 중학생들의 어두운 생활을 듣고 우리 아이들이 주위의 온갖 나쁜 유혹에도 중심을 잃지 않게 더 많이 사랑하고 지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주말 둘째 딸 중학교의 1학년 중 몇 명이 부모가 없는 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면서 술을 마신 모양인데 그중 H양이 만취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했단다. 그 엄마가 그 집에 도착해서 취해서 널브러져 있는 남녀 중1들을 보고는 딸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 각각의 부모에게 전화해서 이를 알렸다고 한다. 그런데 H양이 그 자리에 있었던 아이들 뿐 아니라 학교 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구체적으로 엄마에게 다 말했다고 하고, 그게 일파만파 학생들 사이에 퍼져 H양은 거의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다. H양은 그 사건 이후 아직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는데 코로나에 걸렸다는 이유로 나오지 않고 있으나 사실 아이들에게 당할까 봐 못 나오고 있는 것이라는 일부 추측도 있다. 둘째는 H양의 배신 행동에 부르르~ 열변을 토하며 자기는 같은 상황에서라면 굳이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까지는 절대 불지 않았을 거라 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친구들을 배신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많은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건 기본, 어떤 아이들은 각종 약을 섭렵 중이고 (그 와중에 둘째는 몇 가지 약물의 이름을 이야기했는데 감기약, 항우울증 약, ADHD 진정제 등등 인 것 같다. 난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는 ㅠㅠ), 스냅챗을 통해 술, 담배, 약물 등을 파는 브로커들의 연락처를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에 딸이 이야기해 주는 아이들의 섹스 관련 성지식은 마흔을 넘은 나보다 더 풍부했는데, 이제 중학생이 되니 이미 실천에 옮기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아.. 어지럽다..)      


소년심판의 소재나 일부 뉴스들을 보면 한국에서도 청소년들의 일탈, 사건사고, 범죄는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내가 미국 드라마의 교포 부모 같이 예전 호랑이 담배 피우던 나의 청소년 시기에 머물러 있어서 그런 건지,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중학생 자녀들부터 듣는 집-학원-집의 별일 없는 중학생 생활을 통해 형성된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자유시간이 엄청나게 많은 이곳의 일반 중학교 학생들의 일탈 행동들은 참 많이도 앞서(?) 있다. 우리 집 중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특별히 안 좋은 학교이거나 우범지역이 아님에도 그냥 일반 중학생들의 일상이 드라마틱하다. 화장하고 염색하고 귀/코 뚫고 배꼽티 입는 늘씬한 여자 중학생들을 보면 괜스레 시비 걸까 봐 길을 건너서 피하게 되는 한국 아줌마, 바로 나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법망을 피해 해외 어디에서든 마약을 주문해서 좌표를 찍어 배송받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에 접속 가능한 정보들은 어찌나 많은지. 둘째가 좋아하는 랩 가사들만 봐도 참 적나라한 폭력과 성적인 가사들로 가득하고 뮤직비디오들은 오글거려 끝까지 볼 수도 없다. 


핀란드는 중학교도 보통 1시~3시 사이면 일과가 끝나고 그다음은 모두 자유시간이므로 정말 공부가 취미인 아이들이 아니면 따로 시간 내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없다. 시험이 있으면 바로 전날 한 시간 정도 보는 게 고작이고, 보통은 운동 등 취미생활을 하거나 첫째 아이처럼 방에 틀어 박혀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행아웃~ 한다. 핀란드 고등학교는 인문계와 실업계가 나뉘어 있고 정말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자 하는 아이들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는 분위기라 일단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면 분위기가 중학교와는 사뭇 다르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입학 가능한 중학교 내신 평균 성적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매년 7개 학교까지 지원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상위권 고등학교들은 상당히 좋은 성적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데, 평균 8.7~9.3 점 (10점 만점)이다. (Alto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Otaniemi 고등학교는 2020년에 9.31 가 평균 점수였다고 하니 주요 과목에서 모두 10점이나 9점 이상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심심치 않게 고등학교 재수생들도 발생하는데 중학교 4학년 안식년을 가지면서 공부도 하고 인생도 설계하는 시기를 갖는다. 뭔가 멋지게 들리지만 현실은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   

초등학교 6학년 늦게 핀란드에 와서 사회, 역사, 핀란드어, 스웨덴어 등등 많은 과목에서 고전하는 첫째를 위해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최근 몇 달간 STEM 과목 대학생 과외를 일주일에 2시간씩 시키고 있다. (놀랍게도 핀란드에도 뒤쳐지는 아이들을 위해 이런 과외를 구할 수 있는 agency가 있다. 원래는 공부 목적의 과외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악기나 다른 취미활동 등 재능을 살 수 있는 모든 분야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능하다.) 부모 욕심 같아서는 뭐든지 복습도 좀 하고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역시나 분위기 자체가 공부는 수업시간에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보니 방과 후 집에서 복습을 시키는 건 꿈도 못 꾼다. 그래서 역으로 본인이 잘하고 관심 있어하는 분야의 과목은 수업에 더 재밌게 참여하고 집중해서 배우니 더 잘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바라건대 내가 했던 암기 위주의 일방적 공부가 아니라 이해하고 적용하는 공부가 되었으면 한다.)


최근 수도 지역 학교 공무원 노조에서 4월 중 파업을 할 수 있음을 예고했는데, 임금 인상이 주요 이슈다. 남편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한 번 장기 교사 파업이 있어서 학교에 안 갔던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데 이번 파업 예고도 1995년 이후 처음 있는 것이라 하니 오랫동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참아왔던 것 같다. 이 파업으로 학교를 쉬게 되면 생각지도 않던 방학에 아이들은 또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이 간다 (쉬게 되는 기간만큼 여름방학이 늦춰지는 건 생각 못하겠지?). 

열악한 급식, 열정적이지 않은 몇몇의 교사, 수업시간에 통제가 안 되는 아이들, 느린 진도 등 완벽과는 거리가 있는 핀란드의 교육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교육이 이루어지는 콘텐츠는 배울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사실이란 뭔가? 믿음이란 뭔가? 등등 뜬구름 잡는 질문부터 아이들의 주도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젝트식 교육, 선생님의 열정과 자질에 따라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교사의 재량권, 다양성에 대한 인식 교육 등은 지식을 욱여넣기에 바쁜 한국 교육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어쨌거나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모든 중학생 아이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큰 사고 없이 무탈하게 잘 보내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급마무리 너낌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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