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사람들은 인공 섬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심각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집과 목초지와 곡창지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150쪽
인류는 어느 날 수렵채집을 하는 방랑의 낭만을 중단하고, 땅에 선을 긋고 작물을 경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더 여유 있는 삶을 누리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한다. 사람이 식물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식물에게 사람이 길들여진 것이며, 심지어 수렵채집을 할 때보다 영양상태 마저 좋지 못한 생활패턴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오류를 범했다. 또한 방랑을 멈추었기에 저장창고에 몇 해 동안의 곡물을 가득 채우는 미래 계획을 시작했다. 그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파괴적 창조자’였다. 어느 날 문득,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인구 증가로 인해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
그때부터 인간은 열심히 노동하고, 죽을 때까지 노동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저기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하면서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했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일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컴퓨터, 스마트폰, 진공청소기, 세탁기 등 기계는 우리 삶에 자유를 허락했지만 느긋함과 여유도 함께 빼앗아갔다. 기계가 절약해준 시간 덕분에 우리는 인생을 더 빠르게 살아야 한다. 속도를 쫓아가기 위해 우리는 오히려 불안과 걱정에 갇혀버렸다.
요즘 청년들은 매우 부지런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대학생활에 대한 낭만이 아니라 취업전략이며, 남자들은 군 생활에서도 자기계발을 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영어성적과 인턴은 필수이기에 학과 공부를 하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병행하며, 그렇게 부지런히 삶을 살아도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 남는 것은 ‘불안과 걱정’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청년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이 있다. 땀 흘리며 자신의 삶을 열심히 경작하다 문득 뒤돌아보니 혜성같이 나타난 ‘정유라’ 같은 위인 덕분에 계산에 없던 피해를 입는다. 세상에 밝혀지지 않는 수많은 정유라가 득실거리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애써 부인한 채 청년들은 한숨을 삼키며 또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경작을 멈추고 방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이 만든 기준을 잘라내고 즐거움과 재미를 채집하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열심히 경작해서 취업에 성공해도 더 열심히 살라는 지령만이 있을 뿐이다. 그럴 바에야 마음이 허락하는 데로 최대한 게으르게 하루를 살아보자. 책도 읽고, 돈이 필요하면 일도 하고, 그러다 훌쩍 여행을 떠나버리고. 다시 삶으로 돌아와서 잠도 실컷 자고. 물론 이렇게 방랑을 시작하면 집도 차도 없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 땅을 살아가는데 잠시잠깐 필요한 사치품일 뿐이다.
‘사치품’에 내 인생을 걸겠는가, 내 ‘영혼’을 미소 짓게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