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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26. 2019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공통적인 법칙은 존재한다.

뉴스에서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 속에 인생에서의 길을 잃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말을 보았다. 청년들은 꿈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해 포기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꿈은 이룰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떤 꿈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꿈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닌 현실에서 실행이 가능한 범위 내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 현실의 벽은 청년들에게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 청년들에게 필요한 조언은 오직 현실에서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조언들이 가장 좋은 조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추상적인 조언은 사실 조언이라고 할 수도 없다. 현실에서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 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추상적인 말만 떠드는 것보다 수십 배로 어려운 일이다. 


인생 자체를 바꿀 수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완전한 조언 같은 건 없다. 아무리 현명한 조언을 들어도 사회 별로 개인 별로 나타날 수 있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생과 세상사에 정답은 없다. 

없는 정답을  찾으려고 해봤자 나올 리가 없다. 다만 현실에 맞춰서 하나 하나 풀어가다 보면 그 개인의 현실 속의 문제들은 사회 구조적인 부분이나 거대 자본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최선책이든 차선책이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그 방법 또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때로는 방법이 되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해결할 방법은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찾아내는 건 사람들 몫이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다른 이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토의 등을 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방법은 많다.


현재의 세상이 약자들이 살기 어렵다고 백날 한탄만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아는 사실이다. 동정심이나 배려심을 가지며 서로 돕는 것은 필요하지만 한탄만 해서는 안된다. 수백 년 전의 사람들은 더 살기 힘들었다.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급격한 기술의 발달로 현재의 청년 세대들은 단군 이래 최대의 복지를 누리고 있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된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다만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해 개인 별로 누리는 복지의 격차도 커졌고,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부에 대한 정보 등이 쉽게 공유되는 세상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역시 커진 것이 문제다. 평균적인 지적 수준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당함 역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인생사는 결국 개개인의 선택이 곧 각자의 길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던지, 사기를 친다던지, 약자에 대한 갑질, 잘못된 증오 등으로 이어지면 안된다. 이 시대에서 그런 부분들을 길이라 할 수는 없다. 물론 시대가 규정한 것이지만 말이다. 인권이 무시되고 식민지 약탈이 횡횡하던 때에는 그러한 말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들의 삶은 기득권 층을 제외하면 예나 지금이나 힘들었다. 그리고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기득권층도 그들 나름의 고충들이 많았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삶은 사회적 문제든 개인의 문제든 현실에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열심히 하나 하나 해결하다 보면 개인의 인생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한 변화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때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역사는 발전되어 왔다. 그리고 그것은 개개인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의 선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결과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소확행이니 뭐니 하는 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확행이 자주 쓰인다는 거 자체가 현실의 큰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하기보다 회피하는 것이 좋다는 사회분위기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뭐 문제 자체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자기만족이라도 해서 소소한 행복이라도 누리는 것이 잘못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명백히 눈앞에 있다면 소확행을 누리더라도 잠깐씩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일을 하다 쉴 때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사실 행복이란 추상적 개념에 소소함의 여부를 판가름 할 만한 기준이 애매하지만 어쨌든 짧은 시간 동안의 행복들은 열심히 누리고 있다. 그러나 맨날 소소한 행복을 누리려다가는 당면한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앞으로 크게 나아갈 수 있는 이들은 소확행에 몰두하는 이가 아닌 현실의 문제들을 열심히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의 고통을 참아내느냐의 문제도 개인의 선택이다. 문제의 고통 또한 강도를 조절할 수 있기에 적당히 열심히 살고 적당히 즐기며 살 수도 있다. 


어쨌든 현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 깊게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자신의 길은 자신이 정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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