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셋 중에 한 곳은 되겠지,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졌더랬다. 기대와 달리 집근처 국공립유치원 세 곳 가운데 단 한곳에도 당첨되지 않았고 대기 순위도 아득한 뒷 순위다. 아뿔싸! 정말 멘붕이다. 지난해 연말 사립유치원 비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기에 사립유치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은 내게 유치원 알아보셨냐? 얼른 알아봐야 한다, 이러다 원하는 곳에 못 갈수도 있다고 걱정하셨다. 나는 주변에 아는 엄마들이 그리 많지 않기에 ‘정보’라는 게 없었다. 어느 유치원이 나은지, 그냥 어린이집에 가도 되는 건지, 문제가 있어도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게 나은 건지 도무지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수소문 끝에 엄마들에 평판이 그나마 좋다는 몇몇 유치원에 전화를 해봤더니 이미 모집이 끝났단다. 또 다시 멘붕이다.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동네 어린이집에 상담을 받고 입소 신청을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내게 잘 돌볼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내 아이 친구는 국립유치원에 다니고 내 아이는 그냥 어린이집을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내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국공립 유치원은 왜 이리 부족한 것인지, 사립유치원 문제는 왜 그리 해결하기 어려운 것인지… 이런저런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다가도 엄마인 내가 무지하고 게을러서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건가 싶어 괴롭기도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남편에게 이사를 가자고 했다. 마침 살던 집 계약 기간도 끝나가기에 잘 됐다 싶었다. 유치원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고 이곳저곳 집을 보러 다녔다. 지금 살던 집보다는 전세가가 높기에 남편은 부담스러워했지만 내 뜻을 존중해줬다. 다행히 좋은 집을 얻고 유치원도 입학이 결정돼 한시름 덜었다.
지난 몇 주간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는 여러 마음들을 다스리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아무도 모를 게다. 나의 이런 복잡한 마음들은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면서 더 들여다보게 됐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 나오는 여러 엄마들에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엄마가 될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서울대 의대만 가면 그만이라는 식에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예서 엄마 한서진의 마음도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공부 못하면, 출세를 하지 못하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세상 아니던가.
대한민국의 이런 현실을 고발한 책이 있다.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이다. 장강명 작가는 한겨레 문학상 공모전에서 <표백>이라는 소설로 당선됐고, 이후에도 여러 공모전과 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나름 공모전을 통해 성공적인 데뷔를 하고 잘나가는 장강명 작가는 왜 공모전 시스템에 주목했을까. 작가는 서문을 통해서 문학공모전의 선발 매커니즘과 영향력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자신도 몇 년 전까지 간절히 원했지만 알 수 없었던 그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단다. 장강명은 문학공모전에 관계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으고 설문지를 돌려가며 문학공모전 시스템을 취재했다. 작가들이 왜 그리 등단에 집착하는지, 문단권력의 실체는 무엇인지 등 실질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책에는 문학공모전 만이 아니라 로스쿨이나 학생부종합전형,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신입사원 공채 실태도 나와 있다. 장 작가는 한국사회가 이처럼 공채 제도를 통해서 획득한 ‘간판’에 집작하게 되는 건 실제로 간판에 힘이 있기 때문에, 좋은 간판을 믿고 선택하는 것이 각자에게 최선의 선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간판 외에 달리 더 좋은 선택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 작가는 간판의 중요성이 낮아지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지지 않겠냐고 말한다. 간판의 힘은 정보 부족에서 나온다고도 진단한다. 그래서 이런 책을 썼나보다. 장강명 작가는 한국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려면 정보 확대가 적은 비용으로 파급력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며 여러 사람이 모여 정보를 쌓고 의미 있게 엮고 공유하고 활용하는 일이 하나의 공동체 운동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감은 하는데 쉽지않을 듯 싶다. 갈수록 격차는 심해지고 그들만의 리그는 더 강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장강명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상속, 혼인, 시험과 같은 이벤트가 아니면 신분 상승 기회가 없어지는 계급사회를 살고 있다. 가진 자들이, 부모 잘 만난 아이들만 성공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누구나 제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막연한 바람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으면서도 무엇부터 해야 하나 싶으니 막막하다.
정말 아이가 생기니 모든 사회 문제가 다 내 문제로 절실하게 다가온다. 아이가 커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할 그 순간순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까?! 사교육에 몰두하고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들 탓만 할 게 아니라 간판 사회를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엄마들은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