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당신은 여성 음악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왜 여성 음악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성 음악가들이 분명 존재했을 텐데 말이죠!
18~19세기에는 작곡, 즉 창작 분야에서 노골적으로 여성들은 제외되어 왔습니다.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창조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학자 서울대 민은기 교수는 논문 <지배와 차이의 음악사>을 통해 인간이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과 함께 여성들이 이에 부합하지 못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 조건은 여유입니다. 곡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예술에 몰두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의 의무에서 헤어 날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 사회적 특권으로 인해 육아를 위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모성을 극도로 이상화시켰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이 언제나 어머니로서의 ‘신성한’ 의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교육입니다.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교육받아야 창조성이 발휘되며, 단순히 작곡 기법뿐만 아니라 대담한 사고, 발명 발견을 위한 탐구심, 호기심, 상상력, 실험정신을 키우도록 교육받아야 하는데 당시의 여성들은 여성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러한 능력을 억압하는 쪽으로 길들여졌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적 승인입니다. 예술가에게는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무엘 브래드쇼는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작곡 과정을 조사하였는데, 작곡가의 작품에 대한 주변 반응이 작곡가의 자기 평가나 자의식을 좌우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18세기, 19세기 유럽의 사회적 상황을 봤을 때 여성 작곡가는 사회로부터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죠. 물론 사회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창작력을 기르는 데 성공하였다 한들, 자신의 예술을 표현할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힙니다. 남성은 전쟁, 투쟁, 영웅적 행위, 직업 등 남성적 가치가 있는 것을 통해 자신의 예술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반면, 여성은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으며, 더군다나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창작능력은 사회의 반향에 따라 발전되는 것인데, 많은 여성 작곡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들려줄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작곡이 여성에게 배타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 연주자에 대해서는 보다 관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연주 분야에서 여성의 활동이 남성보다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고, 작곡 분야보다는 연주 분야에서 여성이 덜 소외되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건 창작의 영역보다 연주의 영역이 조금 더 자유로웠지만, 그렇다고 여성이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성 연주자가 연주하는 것이 허용된 악기가 있는 반면, 연주되는 것이 금지되는 악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19세기 낭만주의 시대까지만 해도 여성은 주로 대중적인 연주회보다는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살롱 음악회에서 연주를 했으며, 콘서트 플레이어로 대성했다고 할지라도 여성 연주자는 대부분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또한 같은 연주라 해도 성악과 기악 분야에서 이들의 여건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수녀원의 예배에서만 노래가 가능했던 여성들은, 1580년 이태리 페라라 궁정에서 처음으로 여성 가수들이 급료를 받게 되면서 전문 음악가로 진출하게 됩니다. 비록 17세기 동안에는 높은 음역의 노래들은 카스트라토가 독차지했었지만, 18세기에 와서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오페라 부파가 카스트라토의 창법을 선호하던 오페라 세리아의 인기를 누르고 유행하면서, 특히 19세기 초 카스트라토 금지법이 생기면서 높은 음역의 노래들은 여성 성악가들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여성 성악가들의 활동은 교회와 대중음악회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고, 이러한 활발한 움직임은 독창뿐만 아니라 합창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합창에서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대비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었고, 실제로 1840년경 이후 교회 성가대에서 소년과 남성이 담당했던 소프라노와 엘토 파트를 여성이 맡게 됨으로써 근대적인 혼성합창 형태를 확립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여성 성악가들은 그들의 신체적 특성, 즉 목소리 때문에 비교적 연주활동이 자유로웠지만 여성 기악 연주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성악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악기 연주자들도 매우 자유롭게 활동을 하였지만, 다성 음악의 발전에 따른 악기 테크닉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극소수의 여성만이 여성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생기기 이전에는 대부분 음악가 아버지의 개인교습을 통해 연주를 위한 기술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겁고 큰 악기를 다루는 것이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악기 연주는 여성에게 권장되지 않았고, 특히 연주하는 모습이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1784년 음악 연감이라는 음악잡지는 여성이 관악기를 연주할 때 입술을 모으고 숨을 가쁘게 들이켜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음탕한 생각을 부추긴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리를 벌리고 연주하는 첼로는 어떨까요? 이러한 성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아닐지라도 ‘여성스럽지’ 않다거나, 우스꽝스럽다는 이유로 여성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비난받았다고 합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윗몸을 비틀고 부자연스럽게 목에 힘을 주는 모습이라든지, 연습을 많이 하면 생기는 턱밑의 흉터는 너무 흉하다던지 아니면 당시 유행하던 폭이 넓은 스커트를 입고 더블 베이스를 연주하거나 머리를 높게 올린 채 호른을 부는 여성의 모습 말이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18세기 말에는 호른, 첼로, 바순, 트럼펫과 같은 악기는 ‘전형적인 남성 악기’로 규정되어 여성이 연주하는 것을 금기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예외적으로 허용된 악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건반악기입니다.
건반악기는 다른 악기에 비해 연주하기 위해 필요한 얌전한 자세가 여성성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교회나 극장과 같은 공적인 장소가 아니라 주로 가정에 설치되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집에는 언제나 여성들이 있었으니까요. 특히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노동이나 가사노동에서 자유로웠던 부유한 여성들은 집에서 한가로운 시간들을 보냈고 이들의 감미로운 명상이나 자기도취적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건반악기였죠.
그래서 앞으로 소개될 여성 음악가들도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하는데요, 작곡가로서 활동을 하지만 동시에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연주여행을 다녔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글은 여러 상황 속에서도 창작활동을 포기하지 않은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