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수필 2
금호강을 앞에 끼고 그 사이에 7만 평 규모의 체육공원을 앞마당처럼 두고 있는 우리 아파트는 주변에서는 물론이고 여타 도회지에서는 보기 드문 친환경 아파트이다. 아파트와 인접해 있는 체육공원 안에는 박주영 축구장을 비롯하여 둘레 800미터의 맨발 산책길을 끼고 있는 광활한 잔디 광장과 8면의 테니스 코트, 물고기들이 노니는 연못 생태 산책길, 분수 광장, 갈대밭 등이 있어 그야말로 산책과 힐링의 명소가 아닌가 한다. 십여 년 전 처음 입주할 무렵에 심겨진 나지막한 나무들이 이제는 상당한 숲을 이룰 정도로 우거졌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거실에까지 들릴 정도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파트 내에는 아스콘 포장도로가 한 군데도 없고 아파트 내 도로는 모두 블록으로 조성되었고, 특히 인도 보도 블록은 모두 구운 벽돌로 되어 있어 차별을 보인다. 무엇보다 아파트 조경 대상을 받을 정도로 잘 조성된 조경 규모는 인근의 역세권 아파트와 비교하면 거의 열 배 이상이나 수종도 많고 잘 가꾸어져 있다. 전원생활과 주택에 대한 미련이 아직은 조금 남아 있지만 그나마 상당히 친환경적인 아파트 생활이라 만족하고 있는 편이다.
자연인으로 돌아오자 남는 건 시간이라 낮 시간에는 주로 식멍과 물멍으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예전에도 늘 실내에 화분 몇 개는 키우고 있었지만 백수가 되다 보니 주섬주섬 모은 화분이 거의 60개나 된다. 거실과 베란다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화초들을 보는 식물 멍 때리기가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주로 퇴임하면서 가져온 난초 화분이 좀 있고 그 외에도 멜라닌/벵갈/떡갈나무잎 고무나무와 안스리움, 산세베리아, 호접란, 보석금전수, 돈나무, 스투키, 선인장 등의 공기 정화 식물이 많으며 일부 다육 식물과 풍란도 몇 개 있으니 제법 어우러진다. 특히 베란다에서 키우는 커피나무는 빨간 열매가 제법 열리고 제주에서 가져다 키우는 귤나무는 한 해 열매를 맺어 귤을 따 먹기도 했는데 요즘은 통 열매를 맺지 않아 그냥 관상목으로 키우고 있다. 덩굴식물인 호야와 트리안 외에도 동백나무, 장미허브, 게발선인장, 단풍나무, 수국 등 작은 식물원이라 해도 될 정도이니 식멍에 제격이다. 화초마다 습성이 달라 주기적으로 물 주는 일과 가끔 분갈이도 하며 식물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지루함을 없애는 명약임에는 틀림이 없다.
퇴임 전에 구피 두 마리를 얻어 키우면서 물멍에도 입문했다. 암수 두 마리에서 번식이 잘 되어 한때 서른 마리로 불어나 조금 큰 수족관을 장만하여 옮겨 놓았다. 그러다가 너무 드래건 구피 한 종류로만 키우는 것보다 색깔이 다른 구피들을 넣어보자는 생각에 이마트에서 레드, 옐로, 블랙, 네온 구피 암컷 각각 한 마리씩 네 마리를 사서 수족관에 집어넣은 게 엄청난 실책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두 마리씩 용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새로 사 온 구피를 제외한 모든 구피들이 전멸하고 말았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어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결국은 이마트 어항에 있던 물이 화근이었다. 곱게 자란 드래건 구피들이 새 구피들과 함께 딸려 온 물속 기생충에 아주 취약했던 것이다. 측면 여과기와 기포 발생기를 작동시켜 보아도 속수무책으로 예전 구피들을 다 보내고 나니 수족관이 너무 허전해서 다시 몇몇 종류의 구피들을 영입했다. 이번에는 새로 가져온 구피들을 따로 작은 어항에 담아 충분히 놀게 한 후 구피들만 건져서 큰 수족관에 넣었다. 풀블랙 구피와 퍼플블랙 구피 암수 다섯 마리를 넣어 총 여덟 마리가 넓은 수족관 속에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물멍에 입문하면서 무늬와 색깔, 꼬리 모양에 따라 구피의 종류가 수십 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에 놀라며 조그마한 열대어 몇 마리가 삶의 활력을 주는 또 다른 명약이 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자라는 수많은 식물과 물고기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도 직접 가서 보거나 살피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비록 제한된 공간에서 자라는 화초들과 물고기들이 일견 측은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반려 식물이니 반려 물고기니 하는 말도 생기고 식물 보며 멍 때리기와 물고기를 관찰하며 멍 때리는 게 낯설지 않아 아파트에서의 전원생활이 날로 윤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