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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방이 Feb 22. 2022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책은 도끼다>를 읽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7, 8년 전입니다. 서재에 <책은 도끼다>라는 책이 꽂혀 있었습니다. 꽂아만 두고 읽지는 못했습니다.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매우 잘 팔렸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베스트셀러였을 겁니다. 저는 반골 기질이 있어서인지, 베스트셀러나 유행하는 책에는 거부감이 먼저 듭니다. 대중이 원하는 건 때때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만들어진 소비 욕망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지인이 빌려달라기에 그냥 선물로 주었습니다.

얼마 전 이원석 작가가 쓴 <서평 쓰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서 얼마 전부터 기록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왕 하는 거 체계적으로 잘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읽은 책입니다. <서평 쓰는 법>은 좋은 책입니다. 기교나 기술을 설명하기보다 원리와 근원에 더 치중합니다. 책을 대하는 작가의 올바른 철학도 엿볼 수 있어 좋습니다.

<책은 도끼다>는 바로 <서평 쓰는 법>에서 소개된 책입니다. 저 자신도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유명 서평가들은 서평을 어떻게 쓰는지. 그래서 <책은 도끼다>를 다시 샀습니다. 저자는 광고 회사 대표인 박웅현이라는 분입니다. '박웅현'을 검색 사이트에서 쳐봤습니다.


박웅현(60). 1987년 제일기획에 입사해 2004년 세계적 광고대행사인 TBWA 코리아로 자리를 옮긴 후 지금에 이르는 34년간 수많은 광고를 히트시킨 광고계의 거목이다.


대단한 분이시더군요. 그가 만든 광고 문구로는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등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번 쯤 들어본 광고 카피입니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주옥같은 카피가 무척 많습니다. 박웅현 작가는 영감을 책에서 얻는다고 합니다. 책은 얼어붙은 마음을 깨는 도끼라고 합니다. 1904년 카프카가 친구인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인데, 서문에서 소개합니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사실 저는 박웅현이라는 사람을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책을 통해 만난 박웅현. 그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생긴 거 하고 다르게 친절한데'였습니다. 여기서 '생긴 거 하고 다르게'란 사진 속 박웅현 님이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닌 분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안경 너머로 쳐다보는 모습이 사실 약간 무섭기도 했습니다. 분명 원칙과 소신이 확실해서 다가가기 힘든 사람 같았습니다.


박웅현


그런데 웬걸 이 분 완전 친절합니다. 잘난 척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인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겸손합니다. 그가 쓰는 단어나 문장은 얼마나 친근한지 모릅니다. 책을 쓴 계기를 들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이유인즉슨 딸아이의 논술 과외비가 터무니없이 비싸서 직접 딸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가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정말 아빠가 딸에게 가르치듯, 아니 가르친다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다감하게 대화하는 듯합니다.

<책은 도끼다>는 저자가 감명받은 책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제가 읽어봤는데 너무 재밌고 유익해서 당신께 꼭 소개해 주고 싶어요' 하는 식입니다. 100% 성공한 책입니다. <책은 도끼다>를 읽으면,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집니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따로 정리했는데 A4 한 페이지를 가득 메웠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책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 읽었던 책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박웅현 작가님처럼 다른 분들께 멋지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 다소 설레기도 했습니다.

저는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나도 서평을 잘 써 보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잘 쓰고 싶은 이유야 많았겠지만, 글을 잘 써서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지식을 자랑하려는 마음도 있고, 잘난 척하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결핍이 크니 욕심도 엉뚱한 쪽으로 자랐습니다.


책에서 박웅현 작가님은 이철수 작가님과 아이들의 시를 소개합니다. 이철수 작가님과 아이들의 공통점은 어려운 문장과 소위 있어 보이는 전문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일상을 소개하되, 그 통찰이 기발합니다. 정곡을 찌르고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글을 읽고 본질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책 보다 '나' 자신을 앞세웠습니다. 서평을 쓰는 건 무릇 '내가 읽은 책을 독자에게 정성 들여 소개하는 일'인데 내가 쓴 글이 멋지기만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언어가 아닌 자꾸 다른 사람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기분이었습니다. 답은 일상 속에 있다는 박웅현 작가님의 말씀에 100번 공감합니다. 일상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의 일상입니다. 포장된 언어가 아닌, 전문가의 언어도 아닌, 바로 나의 언어로 나의 일상으로 글을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책은 도끼다>  일곱 개의 챕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챕터 속에 책들을 정말이지 정성스럽게 소개합니다. 마치 숨겨둔 보석을 자랑하듯 애지중지하는   느껴질 정도입니다. 김훈, 알랭  보통, 니코스 카잔차키스, 밀란 쿤데라, 그리고 톨스토이까지, 거장들의 문장을 하나하나  닦아 독자들에게 선보입니다. 책을 덮고,  유명 작가들이 어찌나 친근하게 느껴지던지, 당장 책을 먹어치고 싶은 기분마저 듭니다.


지금은 해체한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그룹의 1집에 수록된 <느리게 걷자>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가 자꾸 '느리게 걷자'고 합니다.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예쁜 고양이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음을 안타까워합니다. '점심때쯤에는 슬슬 일어나 가벼운 키스로 하루를 시작하고 양말을 빨아 잘 널어놓고 햇빛 창가에서 차를 마셔보자'라고 합니다. 정말이지 여유가 느껴지는 가사입니다.


박웅현 작가님의 독서가 이와 비슷합니다. '깊게 보고 자세히 보자'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너무 빠릅니다. KTX를 타고 갈 때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들판의 작은 꽃들, 살랑거리는 바람, 그리고 마을의 냄새. 어린왕자와 장미꽃처럼 자세히 보는 것은 소중해지는 것이며, 소중함이 많을수록 행복한 삶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현재를 즐기라고 합니다. 알랭 드 보통을 소개하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대로 현재를 즐기며 살라고 합니다.

박웅현 작가님이 소개한 책 중에는 제가 이미 읽은 책도 꽤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지 못한 걸 박웅현 작가는 보았습니다. 저는 놓치고 지나쳤지만, 박웅현 작가는 멈춰 서서 자세히 보고 사랑하고, 심지어 이렇게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감동까지 주고 있습니다. 박웅현을 거쳐간 모든 것이 무척 소중해 보일 정도입니다. 내 곁에 있을 땐 하찮아 보이거나 별로 관심이 안 갔는데 말이죠. 박웅현 작가님은 스스로 삶이 풍성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저렇게 자세히 보고 사랑하니 소중하고 행복할 수밖에요.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풍요이지요.


<책은 도끼다>를 읽고 있으면 책이 읽고 싶어 집니다. 문득 류시화 님의 시가 떠오릅니다. 책 보다 책에 대한 태도, 아니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 주는 책, <책은 도끼다>는 정말 좋은 책입니다. 아니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 모든 분께 추천합니다. 정말 좋습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바람처럼 내 깊은 속에 흘러서
은밀히 내 꿈과 만마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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