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들어 실패를 상품처럼 파는 게 보인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기 부여 컨셉의 영상을 보자. 과거에는 '이미 성공한 사람의 특징 N가지', '성공을 위해 필요한 마인드'와 같이 성공을 많이 팔았다면 이제 '실패해야 성장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처럼 실패를 팔고 있다.
2.
스타트업에서도 한 때 시행착오가 유행했다. 많은 투자금을 얻어서 그 돈으로 실패를 감당하며 버티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기 불황이 닥치면서 이 방식은 냉정하게 버려졌다. 오히려 작은 성공을 계속 되풀이라는 사업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이 투자의 대상이 되었다.
3.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과연 실패로 배울 수 있는 게 클까?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실패란 목적이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를 의미한다. 실패 자체로 얻을 수 있는 건 실질적 손해와 패배감 뿐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건 없다. 다음에 더 잘하자는 투지로 바꾼다면 도움은 되겠지만.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려면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설정한 목적이나 목표치를 달성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다면 왜 실패했는지, 부족한 게 뭔지를 찾아서 보완해야 한다.
4.
사실 우리는 이미 이 두 가지 조건을 배웠다. 우리는 학창시절부터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을 익혔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공부한다. 틀렸으면 오답노트를 만들어 다시는 틀리지 않기 위해 보완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이처럼 공교육의 본질은 사회에 나가기 전에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 방식을 함양하는 것이자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실패를 두려워한다. 멸망, 패배, 실패, 실책, 실점, 실수, 시행착오. 어감의 강약 차이가 있을 뿐 전부 같은 실패의 맥락이다. 실패는 생존과 연관되어 있기에 실패를 인정하는 건 공동체에서 자신의 쓸모를 부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기 떄문이다.
6.
그래서인지 자신의 실패는 정신승리를 위해 최소화하고, 남의 실패는 의도적으로 부풀려 말하려는 본능이 있는 듯 하다. 예를 들어 누가 봐도 실패인데 체면을 지키기 위해 시행착오라고 손실의 범위를 줄여서 표현한다. 반대로 누가 봐도 실수인데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실패라고 규정한다.
7.
이렇기에 나는 시행착오나 실패를 굳이 장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마다 도전 의지와 실패에 대한 내성은 다 다르기에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수동적인 사람에게는 실패해도 배우는 게 있으니 도전하라는 조언이 일부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굳이 실패를 강조하거나 실패를 가볍게 이야기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실패로 잃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다.
8.
도전은 위대하지만 의무는 아니다. 도전하지 않는다고 야망이 없다, 의욕이 없다, 진취적이지 않다, 라는 평가를 받고 움츠러들 필요도 없다.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 이름이지 인생의 진리가 아니다.
9.
실패의 범주를 적확하게 설정하지 않고, 지나치게 가볍게 표현하고 도전만을 강조하는 조언을 주의하시길 바란다. 성공한 사람조차도 그 대부분은 운이니까. 성공팔이와 더불어 실패팔이도 많아진 요즘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