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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Jul 30. 2020

처음 만난 세상

부끄러움을 모르는 분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 왼쪽 가슴 한 구석에 그 배지를 하나 달아보고자 집안을 휘청이게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대부분 한 두 번은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이다. 정치라는 지극히 폐쇄적인 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잘 모르는 본인과 같은 사람에게도 쉽게 동감이 가는 이런 이야기를 접하니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을 [매우 비싼 구직 행위]라 말해도 큰 무리는 없겠다 싶다. 엄청난 자본이 투자되고 쉽사리 당락을 점치지 못함에도 여전히 이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그간의 투자 실패(?)는 완벽히 복구가 되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그리고 이런 높은 자리가 자신의 몫이 되어버리면 그간의 총명함과 정의감 따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이 자리의 놀라운 능력이 아닐까 짐작해보는 요즘이다.


말도 많고 탈은 더 많은 시국이다. 엄청나게 발달한 인터넷과 소설 커뮤니티 덕에 성인이 되어 투표의 권리를 행사한 이래 가장 많은 정치뉴스를 접하는 요즘, 정말이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고 자부하는 본인이 꼭 한마디만 하고 싶어 브런치를 빌어 글을 적는다. 한 사람이나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또는 비하할 생각은 없다. 그저 그들 모두에게 한 가지 부탁 같은 것을 하고 싶을 뿐이다. 저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분들께 말이다.


이번 21대 국회의원들의 평균 나이는 54.9세라고 한다. [논어]에서는 사람의 나이 '50'을 [지천명] 이라 했다. [하늘의 명을 안다]는 뜻이다. 불혹(40)의 본인이 여러 가지 유혹에 매시간 흔들리 듯 '50'을 넘기고 개중 '60'(이순)을 넘긴 분들이 하늘의 명을 모르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객관적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 못 본척하는 것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은 본인과 같은 그저 그런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지 않나. 제발 나이에 어울리는,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해주시기 바란다. 입조심 말조심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가끔은 침묵이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동감하시기를 바란다.


"서울이 천박하다"는 발언에 적어도 본인은 일정 부분 동감한다. 일부 언론들의 질 떨어지는 논리처럼 서울 사람들을 싸잡아 깎아내릴 의도가 절대 아니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비교 자체가 잘못되었다. 전후 완벽히 파괴된 서울과 고개를 돌리면 1700년대의 건물이 그득한 파리를 비교하다니 천부당만부당하다. 유람선을 타고 강변을 오르내리며 한강변의 아파트 가격을 논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화거리가 없다는 논리 역시 슬프지만 동감한다.(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센 강도 아닌 한강의 유람선을 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 그런데 아파트를 한강변에 짓도록 하고 그 가격을 이리 만든 것은 그대들이 아닌가. 정치인들이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몇 년 전 윤지오라는 여성분이 눈물로 죽은 자신의 동료의 억울함을 호소할 때 늘 그녀의 뒤에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한 의원님이 계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건은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조용히 잊혀졌고 그때 그녀를 위해서라면 지옥까지 가겠다 외쳤던 이 냥반 역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본인의 눈에는 그저 불한당 정도로만 보였던 이 키다리 아저씨는 어처구니없게도 이번 4월에도 엄청난 득표수로 자신의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한 여성의 간계에 넘어가 앞뒤를 분간 못한 아둔한 사람이지만 이미 전국구 스타가 되었기에 지역구민들은 다시 한번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이런 전투적인 스타일의 국회의원이 인기를 얻자 저마다 청문회를 빌어 전국구 스타가 되어보겠다고 검증이 되지도 않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자신의 정책과 행적을 통해 지역구민의 선택을 받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인기를 얻는 것이 자신의 구직활동에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기 경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참으로 우습지만 말이다. 북한 출신의 사람이 민주주의 남한의 사람에게 "체제전향을 했냐?"는 말을 하는 코미디도 구경했다. 일종의 닥공 스타일이 인사검증방법의 주류가 되어버리니 질문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제는 대답을 해야 하는 "일개" 장관은 자신의 아들에 관한 공격을 받고는 "소설을 쓴다"며 질문을 던진 이에게 비아냥댄다. 정말이지 태어나 처음 보는 추한 광경이다. 천박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이라는 책을 접했다. "품위"라는 단어를 올바르게 정의할 답은 너무나 많겠지만 책에서는 품위를 "다른 사람과 기본적인 연대의식을 느끼는 것"이라 표현했다. 서울이란 도시를 천박하다 표현하기 전에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품위 있는 사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의 말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갈지를 예측했어여야 한다. 그런 각오와 신중함이 없다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아무리 수준 낮은 질문이 와도 대답을 하는 것이 장관이라는 자의 의무라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한심한 사람이라고 나와는 질이 다른 사람이라며 비아냥대며 무시하는 것은 너무나 품위가 없다


본인이 이 글을 읽으며 가장 크게 웃으며 동감했던 부분을 남기며 짧은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책에서는 "품위 있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을 닫아걸고 자신 안에만 매몰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며 [어리석은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과연 누구를 어리석다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이어지는 질문에 단순하고 유쾌하게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어리석다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은 "살면서 얼굴을 붉힌 적이 극히 드문 사람을 일컫는다"라고 말이다]. 


서울이 천박하다 말하고 바로 얼굴을 붉힐 수 있으면 좋겠다. 장관의 청문회에 '아님 말고' 식의 저질 공격을 퍼부으며 가슴 한 구석에서 창피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소설을 쓴다"며 비아냥대지 말고 그저 그런 내용은 없다고 간결히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신의 말의 무게를 인지하고 자신의 위치가 가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 모든 말과 행동에 조심하시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자신의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되면 즉각 얼굴을 붉히며 창피함을 느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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