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그저 정말 힘드시겠어요 하는 말을 꼬박꼬박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을 빛 속으로 끌어와 눈에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공감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답을 하게끔 질문하는 것이다. 공감은 자기 시야 너머로 끝없이 뻗어간 맥락의 지평선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 레슬리 제이미슨, 2019 『공감 연습』
미국의 촉망받는 에세이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그의 책의 서두에서 표준화 환자(SP, Standardized Patient)로 시간당 13.5 달러의 급여를 받던 시절을 회상한다. 표준화 환자는 주로 SP로 불리는데, 의과 대학 학생들의 실습 상대가 되어주는 일종의 모의 환자다. 특정한 질병의 표준 증상과 병력을 소화해서 연기하는 의료 배우를 뜻한다. SP가 숙지해야 하는 대본 분량은 10쪽 정도인데, 이를 토대로 통증의 부위는 물론이고, 출신지역, 가족력, 최근의 체중변화, 음주량 등 잘 짜인 허구의 인물을 상상하여 연기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치핵을 가진 환자라고 하면, 변기를 흥건하게 채울 정도의 혈변을 호소해야 하고, 음주한 다음날에는 악화되고 가끔은 항문 밖으로 빠진 치핵을 손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등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려면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러한 표준화 환자를 면담하고 신체 검진을 하고 진단을 내리고 상담하는 내용의 시험이 이 국가고시에 포함되어있다. 우리말로 임상 수행능력 평가(CPX, 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라고 불리는데, 미국에 사는 레슬리 제이미슨도 SP로 활동한 것을 보니 아마도 미국에서 먼저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 추정된다. 국가고시에 포함된 지 10년 정도 되었으므로, 당연히 필자는 ‘시험’으로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지금 학생들을 상대하면서는 ‘평가자’로 일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시험에 나오는 과목이므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내가 교육을 맡은 표준화 환자의 주증상은 역시 혈변이었다. 월요일 오전 외래에서 진짜 혈변 환자들을 만나고, 오후에는 가짜 혈변 환자와 이 가짜 혈변 환자를 대하는 예비 의사들 30명을 상대하는 하루가 끝나는 날이면 내 몸에서도 혈변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과 피로가 몰려왔다. 모의 환자는 중년의 아저씨들이었다. 표준화 환자들은 주로 연극배우가 한다는 말이 있던데, 이 분들은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실제 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만날 때마다 들었다. 얼마나 대본에 충실하게 메쏘드 연기를 하는지 학생들이 병력을 듣고 신체검진을 통해 암으로 추정된다는 진단을 너무 쉽게 말하면, ‘너무 놀래서 상심한다’는 연기를 했는데, 미숙한 학생들은 이에 도저히 대응할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절벽과도 같은 절망 상태의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학생들에게는 혈변이라는 증상을 통해 병을 진단해가는 과정 중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들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고득점의 비결이다. 필수적인 체크리스트를 머릿속에 넣고 구조화된 흐름에 따라 질문을 해야 한다. 혈변의 양상, 기저질환, 가족력, 약물 투약 등의 질문들을 이어가는데 주어진 시간이 대략 10분 정도다. 환자 혹은 모의 환자를 거의 처음 만나보는 시간이라 학생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어색해한다.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역설적으로 ‘근거리 인간’과의 소통에는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중요한 의학적 질문과 추정의 과정보다 우선 해야 하는 첫 번째 필수 체크리스트가 ‘환자에게 공감을 했느냐?’는 항목이다. ‘혈변을 보시느라 얼마나 놀래셨나요?’ 등의 ‘말로 표현된 공감’이 중요하다. 표현되지 않는 공감을 채점을 할 수가 없어서, 반드시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런 공감이 지나치다 보면 혈변이라는 현상에도 존칭이 붙고, 가끔은 변기 같은 사물에도 존칭이 붙는다.
그런데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 훈련을 통해서 갑자기 길러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좀 회의적이다. 공감하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이 어려우므로, 그보다는 공감하는 연기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교육 방식인 것 같다. 표준화된 환자에 대한 표준화된 공감 표현..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은 의과대학 교육의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에는 CPX에서 배운 것처럼 10분에 한 명씩 여유 있게 진료하는 의사는 없다. ‘3분 진료’에 최적화된 필자는, 이렇게 늘어지는 거북이 진료를 보다 보면 답답함이 끓어오른다. 학생들은 배운 데로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의 환자들은 의사들의 질문에 한 번에 유효한 답을 거의 하지 못한다. ‘언제부터 혈변이 나왔나요?’라는 질문에는 ‘좀 된 것 같습니다’라는 계량이 불가능한 답을 얻는다. 바른 답을 얻기 위해서는 바른 질문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마음을 고쳐먹고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을 해보기도 한다. ‘그럼 며칠 전부터 혈변이 나왔나요?’라는 질문에는 ‘한 며칠 된 것 같은데요’라는 영원회귀스러운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철저히 개별적으로 아픈 환자들은 비슷비슷하지만 저마다 다른 사연을 말하고, 의학적으로 중요한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해주기보다는 자신의 증상의 고유성에 더 집중해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증상처럼 아픈 사람이 있는지를 묻고 그런 환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CPX에 고득점을 위해서는 적절한 질문을 하고 끝없이 들어야 한다면, 실제 임상 진료 행위에서는 환자의 진술 중에서 현재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정보를 우선 획득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잘 유도하고 불필요한 진술에는 효과적으로 잘 끊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나는 CPX에서 가르친 대로 내 증상에 공감하며, 끝없이 경청하는 의사가 많아지는 환경이 되기를 소망한다. 누구나 그런 대우를 받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과는 이미 다르고, 바람과도 다르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