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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호빵맨 Jul 15. 2021

영화 [킬링 디어]





“아가멤논 총사령관께서 쏘아 죽이신 수사슴 때문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노했으니, 여신에게 처녀 한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여신의 노여움이 풀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처녀는 죄지은 사람의 딸이어야 합니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


 흉부외과는 꿈 많고 열정 많은 의학도라면 한 번쯤은 꿈꾸는 전문 과목이다. 두 손으로 사람의 심장을 움켜쥐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가장 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 중에 신의 일에 가장 근접한 권능을 부여받았기에, 노동강도도 그에 상응하게 초인간적이다. 보통의 인간들은 철이 들어가면서 순수하게 꾸었던 꿈을 접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남겨지거나 선택받은 사람들은 직업적 자부심과 카리스마가 매우 강하다. 주인공 스티븐은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성인 심장 흉부외과 의사다. 그는 대개의 외과의사들이 그러하듯이 취향이 편협하고, 독선적이며,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밖에서 찾는 편이다. 아내 안나는 개업한 안과의사인데, 이런 남편에게 순종적인 편이고, 딸 킴과 아들 밥과 함께 대저택에서 유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스티븐은 마틴이라는 10대 소년을 만나서 가끔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하고, 선물과 용돈을 주기도 한다. 마틴은 스티븐을 둘러싼 환경과는 어울리는 않는 외모를 가진 소년으로 눈빛은 불안하고, 행동은 부자연스럽다. 절친한 사이도 아니고 오래된 사이도 아닌 것 같은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일까? 스티븐은 마틴을 집으로 초대하여 자신의 가족들과 식사를 같이 한 후에, 안나에게는 잘 아는 환자의 아들이라고 설명한다. 환자는 자기가 수술을 한 적이 있었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여서 안타까운 마음에 때때로 돌봐주고 있다고 말한다. 안나는 스티븐이 그렇게 한가하고 착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마틴은 하나를 받으면 꼭 하나를 돌려주는 성격을 가진 소년이다. 스티븐에게 비싼 시계 선물을 받고 그냥 넘기지 않았고, 저녁 대접을 받고는 어머니가 있는 자신의 집에 스티븐을 초대하게 된다. 두 모자가 살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평범한 단독 주택이었지만, 스티븐 가족이 사는 대저택에 비하면 초라해 보인다. 저녁을 먹고 자리를 피해 준 마틴의 속셈은 황당하게도 스티븐과 자신의 외로운 어머니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스티븐은 눈치를 채고 자리를 피하고 일어난다. 마틴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결핍을 스티븐으로 채우고 싶었고, 그것을 실현 가능하고 ‘균형’을 맞추는 교환 행위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무언의 협상의 결렬에서 이 두 가족 간의 파국이 시작된다. 


”걔 아빠 수술할 때 술 마셨어?” 

”조금 마셨지만, 결과와는 상관없어.  외과의사는 환자를 죽이지 않아.”


 사실 마틴 아버지의 죽음에는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마틴의 아버지가 스티븐의 환자였던 것도 맞고, 심장 수술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망원인은 교통사고가 아니라 수술 중 부정맥이었다. 즉 스티븐이 집도를 하고 있었던 수술대 위에서 마틴의 아버지가 사망한 것이었다.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하는 일은 환자와 가족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일이면서, 집도의에게도 씻을 수 없이 처참한 일이다. 당시 사망한 환자의 나이도 46세에 불과했다. 스티븐이 마틴에게 느꼈던 감정은 환자의 아들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 과거 사고에 대한 죄의식이었다. 이 사망 ‘사고’에 의료 ‘과실’ 여부가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수술 직전에 스티븐이 음주를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스티븐은 알코올 사용 장애(알코올 중독)로 낮시간에도 상습적인 음주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미국 외과학회는 학회 회원을 상대로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설문 조사에 의하면 설문 응답자 7197명 중 1112명(15.4%)이 알코올 사용 장애에 부합한다고 보고하였다. 이 비율은 남자보다 여자가 높아 25.6%였고, 최근 3개월 이내의 의료과실, 번아웃, 우울증 등과 유의하게 연관되는 결과를 보여주어 심각한 의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음주율, 사회적 과음자율, 더 나아가 알콜 중독자율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관대한 K-음주문화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환영회라는 이름으로 폭음을 하고, 그다음에는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과음이 적극 장려된다. 국민건강 실태조사에서도 가장 유병률이 높은 정신과적 질환은 단연 알코올 의존증이다. 


중요한 것은, 알코올 중독은 치료될 수 있고, 치료를 해야 하는 질환이다.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치료할수록 더 빨리 완쾌되고, 회복되는 병이다. 특히나 남의 병을 돌봐야 하는 의료진이라면 이런 문제는 직업윤리와도 충돌한다. 스티븐은 늦었지만, 과거의 악몽에서 깨어나 다행히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완전히 금주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스티븐은 참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피해자인 마틴의 입장은 돈과 선물 같은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인적 균형을 원하고 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스티븐으로 채워지지 못한다면, 스티븐 가족의 훼손을 통한 파괴적인 균형 맞추기를 예고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에서 마틴은 완력을 쓰는 비열한 행태를 보이기보다는, 그리스 신화나 비극에 등장하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마치 신탁을 내리는 듯한 신비한 모습을 보여준다. 


“제 가족을 죽였으니 선생님 가족도 죽여야 균형이 맞겠죠?  누굴 죽일지는 직접 결정하시는데, 안 죽이면 전부 앓다가 죽어요. 하나, 다리 마비, 둘, 거식증, 셋, 안구출혈, 넷, 사망, 총 4 단계예요.”



 이 황당하고 섬뜩한 저주의 말들에 분노한 스티븐은 마틴을 쫓아내지만, 그의 저주는 현실이 된다. 자녀들인 밥과 킴은 갑자기 다리를 못쓰게 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는데, 온갖 첨단 검사를 다하지만 아무런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거식증까지 생겨서 튜브를 통해 경관 영양공급을 하기에 이른다. 마틴은 도대체 어떤 능력으로 이런 주술을 부린 것인지 친절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적 상징이라면, 초반에 스티븐이 마틴에게 시계를 선물하는 장면이 있는데, 흉부외과 의사가 신성에 가까운 존재라고 보면, 그 신성이 시계라는 상징 매개를 통해 마틴에게 전이됐다는 해석도 있다. 스티븐 가족의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다가, 가족 중 하나의 눈에서 출혈이 생기는 3단계 증상이 발현한다. 눈에서 피가 나는데, 안과의사인 안나는 무력하기만 하다. 마틴의 예언에 의하면 이제 곧 가족 모두가 죽을 것이므로, 더 늦기 전에 스티븐은 가족 3명 중 한 명을 직접 죽여야 나머지 가족을 구할 수 있다. 


이 영화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그리스 출신으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극 중 딸인 킴이 이 고전과 관련한 작문을 훌륭하게 잘 썼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이피게네이아는 아가멤논의 딸로 트로이 전쟁을 위해 출항을 준비하던 아울리스 항구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제물로 바쳐진다. 아가멤논이 사냥 놀이를 하다가 수사슴(sacred deer)을 쐈는데, 공교롭게도 아르테미스 여신의 것이어서 신을 노하게 하여 출항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신의 조건은 ‘죄지은 사람의 딸’을 제물로 받는 것이었는데, 이피게네이아는 아버지의 죄를 대신 갚는 어이없는 희생을 치르게 된다. 여신이 보기에도 인간들의 탐욕과 맹목이 지나치다고 봤는지, 제사장의 칼이 이피게네이아의 목을 치는 순간 암사슴으로 바꿔치기를 하였고, 이피게네이아는 신전의 여사제로 영전을 시켜주었다. 


인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드래건 스톤의 영주 스타니스 바라테온도 불의 무녀 멜리산드레의 예언에 넘어가 그의 딸 시린 바라테온을 제물로 바친답시고 불태워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멜리산드레는 를로르에게 왕의 혈통을 제물로 바치면 이길 수 있다며 스타니스를 현혹했다. 를로르에게 시린을 바쳐 스타니스 군이 나아갈 길을 밝혀달라고 벌인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악역향만 끼쳤다. 스타니스의 부하들은 주군의 냉혹함 앞에서 충만하던 충성심을 잃게 되었고, 스타니스의 앞에는 패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에우리피데스의 말처럼, 예언자란 운이 좋으면 진실은 조금, 거짓말은 많이 말하고, 운이 나쁘면 아무짝에도 못 쓸 인간이 아니었던가..


과연 못난 아버지 스티븐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과연 마틴의 광기 어린 사적 복수의 끝에는 자비가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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