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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23. 2019

어른 같아도 아직은 어린 아이들


수술을 시작하기전. ' 방 준비' 라 불리우는 여러 일들은, 보통 다른 병원들은 (숙련된) 간호사들이 한다. 그래서 매달 바뀌는 인턴이 있는 방들은 초반엔 준비가 늦다.




안그래도 연초에 월초라 정신없겠네.. 하고 도와주러 들어갔다.


침묵 속에 딱히 할 이야기도 없으니 언제나 무난한. " 무슨과 관심있어?"


내가 선호하는 질문은 좀 더 넓은 의미로...




- xx야. 나중엔 뭐하고 싶어?


- 저는 기초해야할 것 같습니다... 학생때도 제가 임상의사가 안맞는 것 같다는 생각은 했는데.. 다들... 부모님도.. 좀 더 경험은 해보고 결정하라고.. 인턴은 해보라고 하셔서 시작했는데.. (한숨....)


저는 정말..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임상이 저에겐 안맞나봐요..


- 지난달에 무슨과했는데?


- 써저리 했습니다.


- 수술장만 계속 돌아서 그럴꺼야..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마..




하고 방에서 나왔다.






치프때 마음이 쓰이던 인턴이 생각났다.




https://brunch.co.kr/@summer05/34








그때 일했던 3명의 인턴 중에, 이 아이만 아직도 이름까지 기억이 난다. 그렇게 속상했던 마음까지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다음날, 그 아이 수술과 수술사이, 환자가 없을때 찾아가서 방준비를 도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 어제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하며,


그냥 학생, 인턴때 내 이야기.


지금 그 아이가 일의 우선 순위를 잘 몰라서 어려운 것 같아 준비할 때 우선 순위는 무엇인지.. 등등.


그리고, 어른 같아도 아직 어리고, 경험한게 많지 않다고.. 걱정하지말고 결론내지말고 많이많이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본인이 그렇게 느끼듯, 일이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긴장을 늦추면 사고를 내는 것 같다며 수술 내내, 하루 종일 의자에 앉지도 않고 서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그 아이는 그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던 월초가 가고, 이제 거의 월말.


어제 같이 커피를 사러 가자며 불렀다.


- 한달 해보니 어때? 너무 힘들진 않았어?


- 너무너무 많이 배웠습니다. 선생님들이 뭐든지 이해할 수 있게 가르쳐주시고..




사실 인턴하기 전엔 인턴 같은거 왜 하나.. 학교 때 다 배웠는데.. 하고 생각했어요.


근데 인턴을 해보니  학생 때 배운 모든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웠고, 이런 것들을 모르면서 의사라고 할 수는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 임상 아니고 기초해도 괜찮아.. 우리 동기들이 기초 많이했는데, 지금 이렇게 저렇게 (.. 구체적 예시) 살고 있어. 근데, 무슨과를 하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고 전공은 너의 그 삶의 방법일뿐이니까, 너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뭔지를 더 생각하고 결정해. 그게 꼭 학문적인게 아닌 라이프 스타일일 수도 있고, 가치일수도 있고..




- 선생님은 지난번에도 느꼈는데, 저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제 지도 교수님 같고..










.. 지도교수님 누구냐고 여쭤보려다가 내가 너무 싫어하는 사람일까봐 참았다.












아이들과 나이 차이가 커진만큼, 7년전의 치프인 나보단 이해할 수 있고 더 귀엽고 안스럽게 볼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늘 그렇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 경지가 되지는 못했네. 그래서 다음에 화나는 일 있을 때 보려고 적어둔다. :)








그외 소소한 이야기들


1. 학생의 내공


심장 수술을 하루종일 해서 저녁에 끝났는데, 밤에 다시 들어오고, 새벽에 또 들어오고.. 아침까지 하고 있어서 당직팀이 녹초가 된날 아침. 의대 학생들이 실습을 왔다.






- 학생은 지난주에 뭐 봤어?


- 심장 수술 봤습니다.


- 어떤거?


- 전날 밸브 수술하신 분이.. 그 밸브가 찢어져서 급하게 들어오신..






너 때문이었어?!!!!!!!!








2. 귀여운 1년차


애들이 술기를 처음하니까 엄청 조심스럽게 천천히 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보고있으면 언제나 ^_____^  이렇게 웃고 있게 된다.


- 아.. 넌 정말 귀엽구나.. 이 귀여움을 잃지 않으면 좋겠어. (옆의 수술과 치프에게) 1년차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귀여울까?


- 1년차 끝날때까지 귀엽지 않습니까?


- 아니 5월까지가 끝이야






4,5월에 제일 귀엽고 6월부턴 대부분 잘 해서 이렇게까지 귀엽진 않다. 힝 4월이 다갔네.










3. 멋진 전공의


- 취미가 뭐야?


- 가끔 그림 그려요


- 어떤 그림?


- 그냥 샤프로 끄적끄적..






하며 전공의가 보여준 그림은..


왠지 너무 감동이 있어서 그날 저녁에도 생각나고 그다음날에도 생각이 났다.






- 이건 의대 졸업식 날.. 이제 의사가 되잖아요. 그 기념으로 그린 그림이에요.


이 사람은 처음으로 의사가 되는 사람이구요, 그래서 수술복, 가운을 입히고 청진기를 그려주었구요.


이 물은.. (씨익) 제가 천주교라서.. 성수에요. 생명을 상징하는.. 그리고 천사들이 축복해주는 거에요. 이제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을..




- 근데 거울보고 그렸어? 너랑 닮았다




- 그냥 그리다보면 자꾸 저를 닮아요.










너무 좋아서,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전공의가 스캔본을 출력해서 선물로 주었다


(편지도 써줌!!^^)












잃어버릴까봐 복사 100장 하고 싶다


우리 전공의가 샤프로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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