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교적 코를 자유롭게 파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비염이 있어 코를 자주 풀었고, 게다가 자기 전에 늘 코를 파다가 잠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결벽증이 심해 집에 머리카락 하나만 있어도 야단이고, 수시로 털고 세탁하는 별난 사람이다. 심지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어린 나를 무릎에 눕혀 놓고 코에 코딱지가 있다며 면봉으로 파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으니 어떤 캐릭터인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유전자를 모두 물려 받은 나는 만성 비염과 결벽증을 함께 가지게 되었으니, 내가 늘 코를 파는 다소 추접한 행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평소에 휴지가 없이는 생활하기가 힘들다. 욕실 선반에 휴지가 점점 떨어져가는 게 보이면 불안하기까지하다. 늘 콧물이 맺혀 있고, 그걸 바로 바로 닦아내 건조한 상태로 유지시키지 않으면 몹시 불편하게 느껴진다. 사실 콧물이 줄줄 흐르거나 겉에서 보기에 코에 뭐가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의 이물감도 느끼기 싫은 결벽증적인 성격, 그리고 어릴 때부터 코를 파다 보니 점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금까지 파다가 습관이 되어 버린 부분도 있다.
코를 판다는 건 오래 묵혀 있던 피지를 짜내는 쾌감과도 비슷한 것이라서 한번 맛을 들이면 이 행위를 멈추기가 힘들다. 침대 머리맡 선반과 부엌의 바, 혹은 책장 귀퉁이에 한 장씩 떼어내 코를 판 휴지가 꼬깃꼬깃 뭉쳐져 있다. 우리집에는 그런 작은 휴지 뭉치들이 어디에나 있다. 다행히 같이 사는 동거인은 위생 관념이 그리 높은 사람이 아니어서 내가 코를 파고 아무렇게나 둔 휴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여태껏 한 번도 잔소리를 하거나 코를 판다고 핀잔을 준 적이 없다. 다만 나도 모르게 그 앞에서 코를 후비고 있으면 "참 아름다운 광경이야." 하고 한마디를 한 적은 있다.
고약한 습관이 오래되면 마침내 사람의 수치심마저도 망각하게 만드는 법이어서 나는 집에서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두루마리 휴지를 옆에 끼고 코를 파제끼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을 할 때에도 코를 판다. 아예 두루마리 휴지를 차에 가져다 놓았다. 프랑스에서 두루마리 휴지의 지위란 화장실에서 볼 일 볼 때에나 쓰고, 보통 코를 닦을 때에는 뽑아 쓰는 부드러운 휴지를 쓴다. 처음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내가 두루마리 휴지로 코도 닦고, 화장도 고치고, 후라이팬의 기름도 닦아내는 걸 보고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이닝 룸이나 부엌 어딘가에 두루마리 휴지가 놓여져 있는 걸 몹시 청결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사람은 습관이 오래되면 그것에 대한 판단 능력을 상실하므로 남편 또한 부엌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의 존재나 또 내가 코를 후비는 행위에 대해서도 무뎌진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