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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Jun 16. 2022

소고 소리에서 시작된 드라마 주제가 소고

한국어문기자협회지 <말과 글>2022봄.나니아옷장속의 대중음악사 기고문

         지구촌 곳곳으로 우리 놀이가 퍼졌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즐긴다.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뽑기, 구슬치기, 줄다리기, ‘오징어’ 등을 말이다. 드라마의 힘이다. ‘기존 범위를 넘어선’(over the top, OTT) 기술의 힘이다. 우 윤여정씨가 영국의 한 일간지와 나눈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우리에겐 “늘 훌륭한 영화가 있었는데, 세계가 이제 겨우 주목하기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준 것이 바로 그 덕분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포스터. 출처: 구글 이미지>


         앞으로, 이야깃거리를 매력적으로 잘 담아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솜씨와 실력이 더욱더 널리 인정받을 일만 남았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를 사로잡은 작품 <오징어 게임>의 여러 성공 요소 가운데, 개인적으로 음악이 가장 먼저 머리에 와서 꽂혔다. 흑백 화면으로 ‘오징어’놀이를 설명하는 주인공의 목소리에 앞서 ‘둥둥둥’ 나오던 소리와 이어지던 멜로디가 무척이나 괴기스러웠다. “시시시 시시시 레#시시라솔라시 시시시 시시시 시라솔라솔미미”. 이 단순한 멜로디를, 어린 시절 누구나 학교에서 두드리고 불어봤을 소고와 리코더, 캐스터네츠 등으로 연주해 작품의 분위기를 소리로써 잘도 그려냈다.

https://youtu.be/Q0MFwvkq4SA

오징어 게임 ost 중 <way back then>MV. 출처 YOUTUBE


        영상과 어우러진 빼어난 음악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호소력을 갖춘 탄탄한 목소리의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드라마에 삽입되면 시청자의 감정은 그 소리와 함께 춤을 춘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상황에 꼭 들어맞는 음악은 훗날 소리만으로도 그 영상을 떠올리게도, 그 드라마를 보던 시기의 나를 소환하기도 한다.

       


        드라마 주제곡을 중심으로 대중가요사를 간략히 살펴본다.

‘방송’이란 것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1932년,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띤다.


음향의트리크

其六 대포소리, 바람소리

라디오 드라마, 영화, 레뷰가튼데 전쟁하는장면이비상히만히나옵니다. 대포,소총,긔관총,비행긔 가튼폭음을 쓰게됩니다. 대포는 큰북을두다리면서 철판을따려 서로반향을일으키게하고 또 소총과 긔관총도 두다리는 소리에 다른반향을 합치게하야 근사한 음향을 냅니다.

-이하생략-

동아일보.1932.6.15.5면


       라디오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쓰는 음향 효과와 관련해 사진과 함께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때가 1927년 2월이니, 불과 5년이 지난 시점 이미 라디오 드라마가 활성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계를 좀 더 빨리 돌려 1950년대로 와보자.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1955년을 고비로 가요계는 KBS전파매체를 본거로 연속방송극 붐을 탄 주제가 물결 속으로 들어가 애창 받는 노래를 잇달아 내놓았다.” 1958년 말에는 이러한 주제가에 대한 일침도 대중문화 칼럼내용에 포함된다. ‘효과음악의 레코드 의존’이란 제목의 칼럼 일부이다.


◇…연속방송극의주제가가성행하는요즈음방송계에一言-主題歌『붐』도 좋으나 이제는 「레코드」 依存으로부터 脫皮하여이왕이면 『드라마』에사용되는 音樂전체를 主題歌 작곡자에게 委任케하여 이의 演奏를 사용하심이 即借用된間接『이메지』가 아닌 『후랫슈』하고 直接的인 放送劇 『무드』와 분위기효과에 보다더 좋은成果를거두지않을까?

조선일보 1958.12.9. 4면


       드라마 주제가가 성행하고 있으나, 드라마를 위해 만들어진 곡보다는 기존에 취입된 곡들에 의존했나보다. 이에 단순히 차용된 곡의 간접 “이메지”가 아닌, “후랫슈”하고 “직접적인 무드와 분위기 효과”를 내기 위해서 드라마 주제가 전체를 전문 작곡자에게 “위임”하여 “연주”한 곡을 사용하자 한다. 이로부터 4년 후의 기사를 살펴본다.


최근 가수들의대부분은 방송국을통해서 「데뷰」 하게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라디오·드라마」의 주제가를불러서 「히트」 를하고나서는 여류가수가 많이있다. 영화주제가인 『슬픔은나에게만』 을불러 일약  「톱·싱거」 가된 金水燕 양이 이번에또다시 SA 「라디오·드라마」 인  『사랑아 별과같이』를 불러청취자를 매혹시키고있다.  -이하 생략-

조선일보 1962.9.4. 5면


      1960년대 이전부터 영화주제가를 부른 가수들의 활약상에 대한 언급이 많다. 이후 영화 뿐 아니라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를 부르며 인기를 얻게 되는 가수들이 많아진다. 우리 대중가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작곡가 손석우에 대한 1963년 당시의 한 기사를 보면, “삼백 여곡의 가요와 「라디오·드라마」 나 영화주제가 등 무수한 곡을 만들어” “우리가요의 「모던」화에 큰 전환을 가져오게 한 작곡가”라 말하고 있다. 당시 라디오 드라마 인기와 더불어 그 드라마에 쓰인 음악의 작곡자와 가수 모두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활발히 활동했음을 느끼게 한다.

        

많은 어른들의 기억 속에 있는, 1983년 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의 프롤로그 음악으로 쓰여 온 국민을 울렸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로 시작하던 노래 역시, 훨씬 이전인 1962년 KBS 라디오 연속극 ‘남과 북’의 주제가였다.

https://youtu.be/pNctXaItsSI

<1960년대 KBS라디오 드라마 '남과 북'의 주제곡이 1983년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의 프롤로그 음악으로 사용했다. 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금 불리었으나, 패티김의 목소리로 들어보자.> 출처; YOUTUBE

        

이후 TV가 대중들에게 많이 보급되고 방송사는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는다. TV뿐 아니라 라디오 연속극의 인기도 계속돼 1986년에도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가 인기를 끌어 화제를 낳기도 한다.


       1990년대 들어서는 드라마 주제곡을 담은, 이른바 드라마 OST에 열광하는 대중들이 생겨나고 많은 이들이 드라마 소비와 별개로 음반을 사들여 음악을 소유했다. 경제적으로 침체되어 그 전 해에 비해 음반판매량이 반 토막이 되었던 1997년에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음반이 70만장이나 팔려 당시 판매량 순위 10위권 안에 들기도 했다.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당시 포스터. 출처:구글 포스터>



모든 문화적 경험과 성취는 차곡차곡 축적되어 이뤄진다. 우리 드라마에 쓰인 음악과 노래 역시 그 축적 과정을 소고(小考)해보니 꽤나 두텁고 탄탄하다.

좁은 문을 나와 큰 문을 통해 우리 이야기를 전 세계에 던질 수 있는 시대, 우리가 쌓아온 경쟁력은 충분함을 또 다시 확인한다. 


흔히,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을 이끈다고도 한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속 주인공들은 방송사 드라마 PD들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해본다.  


“내가 드라마국에 와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연출의 기본은 ‘드라마는 갈등’이라는 것이다. 갈등 없는 드라마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최대한 갈등을 만들고 그 갈등을 어설프게 풀지 말고 점입가경이 되게 상승시킬 것, 그것이 드라마의 기본이다.

드라마국에 와서 내가 또 하나 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은 ‘드라마는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드라마와 인생은 확실한 차이점을 보인다.

현실과 달리 드라마 속에서 갈등을 만나면 감독은 신이 난다. 드라마의 갈등은 늘 준비된 화해의 결말이 있는 법이니까. 갈등만 만들 수 있다면 싸워도 두려울 게 없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준비된 화해의 결말은커녕 새로운 갈등만이 난무할 뿐이다.”


        2022년 봄, 우리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화해된 결말을 향해 가기에는 버거워 보이지만, 새로운 갈등만이 난무할 뿐일지 모르겠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새겨갈 대본과 그 위에 얹힐 주제가의 선율이 조금은 조화롭게 펼쳐지기를, “시시시 시시시”로  괴기스럽기보다 “라라라 라라라”로 편안한 음들이 함께 하기를, 그렇다고 갈등이 무서워 어설프게 풀어 위장된 평안을 찾기 보다는 점입가경이 될지라도 참된 평화를 위한 싸움을 두려워 말기를, 아무쪼록 그 결말이 새드엔딩으로는 향하지 않도록 온갖 참견과 평가가 건강하게 이뤄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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