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다정한 구원>
뭔가.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전투적인 자세로 살던 일상이라, 책을 읽어도 육아서나 자기계발서만 집어드는 요즘이었다. 책 제목만 봐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꽉 차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치열하다 정말.
그러던 와중,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가 나왔고 나는 그걸 바로 구입했지만 뭔가 그걸 읽을 상황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는 생각에 선뜻 들고 읽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련은 계속 남아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 얼마 전 꿀같은 아침 시간에 1/3정도 읽고, 애들 다 재운 오늘. 내 주말이 이렇게 끝나는게 아쉬워서 마저 들고 읽다가 두세시간이 어떻게 지난지도 모르게 푹 빠져서 다 읽었다.
그녀의 유년시절은 내 그것과 완전히 다르고, 그녀의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억하며 추억 여행을 하는 이번 여정은 나와 공통사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나는 리스본이라는 곳에 대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그 여정 속에 같이 마음을 나눠가며 함께 한 느낌이다. 담담하게 풀어놓는 그녀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과 소회들을 보며, 참 다른 성향의 내 부모지만 내 부모님과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가 흐뭇해지기도 했다가, 또 슬퍼지기도 했다.
전혀 생각해 본 적도, 그래서 가보고 싶다는 느낌조차 없었던 포르투갈, 리스본이라는 낯선 도시를 그녀가 묘사하는대로 쭉쭉 읽어나가다보니 괜한 감상에까지 젖어들다 나중엔 내가 그곳 어딘가에서 곳곳을 걸어보는 상상까지 하며 읽었다.
그러다 다시 맨처음 봤던, 그녀가 딸과 함께 리스본에 오자마자 찾았던 상 조르즈 성에서 본 일몰 광경의 사진을 다시 펼쳐보는데, 와. 제대로 감동이다.
초반에 이 사진을 보면서는 그냥 지나쳤는데, 책 한 권을 다 읽으며 리스본 곳곳의 풍경들에 녹여낸 그녀의 이야기들에 감정적으로 동요가 된 후에 다시 이 광경을 보니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아련한 기억 속에 언젠가 한번 다녀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리스본의 풍경 속에 녹아 있는 그녀의 유년시절을 보며 내 유년시절도 떠올려졌다. 그녀의 아버지처럼 해외를 돌며 공직을 수행하는게 아닌, 내 아버지는 도시와 시골을 돌며 공직을 수행하는 경찰관이었다.
해외생활은 아니었지만, 정기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야해서 전학을 다녀야 하는 것이나, 공직자의 아내로 빠듯한 월급에 세자녀를 공부시키고 양육해야하는 건 똑같았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내 유년시절 역시 시골에서 언니 동생과 함께 바다 수영을 하고 겨울이면 비료포대 한장씩 들고 눈 덮인 언덕을 내려오며 놀았던, 즐겁고 낭만적인 기억이 있었다.
다 잊고 살았는데.
앞만 바라보며 내 앞에 주어진 일들, 역할들만 생각하며 달리기만 하며 살다가, 이 책 한권으로 내 추억과 감성들이 다시 송글송글 깨어난 시간을 선물로 받은 느낌이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아이들이 좀 더 커서, 함께 엄마의 과거와 엄마의 이야기들에 대해 함께 나눌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같이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다행인건, 리스본 같은 돈이 많이 드는 여행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흐흐
#리스본같은곳은엄마혼자다녀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