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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킴 Apr 12. 2021

[미래시나리오] 1.고요함을찾는 사람들

감각공해. 기술로 피로해진 감각만큼, 그 반대의 기술은 고요함을 찾는다.



2032년 4월 27일.

내 친구 카오스가 고요함 클리닉 개업하는 날! 

이미지출처: 구글검색 - https://www.etoland.co.kr/plugin/mobile/board.php?bo_table=animal01&wr_id=14953


드디어. 내 중딩 친구 카오스가 고요함 마스터가 되었다. 귀가 엄청 밝고 또 어떨 때는 무척이나 예민해서 '우와 얘 어쩌냐' 싶었던 애다. 교실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 윗집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 맨날 신고한다 해서 주변에서 고생하곤 했지. 그러다 심신안정 찾겠다며 유튜브에서 ASMR 찾아 듣더니, 어느 날부터인가는 본인이 만들겠다며 잘 놀고 있는 나를 불러다가 종이를 찢어라, 컵을 손톱으로 두드려라 하길래. 군말 없이 하긴 했지만, 이걸로 얘가 유명해질 줄이야! '카오스님 덕에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카오스님, 고려시대 대나무 숲에서 책 읽는 소리 해주세요.' 등 댓글 보면서 나도 사실 으쓱하면서, 그럼 카오스는 특수 음향 전문가 같은 거 되는 건가. 그럼 전공은 뭘로 하는 거지. 생각했는데, 대학은 무슨! 혼자서 작업실 빌려서 사람들이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 주는 일을 하더라. 내가 보기엔 정신과 전문의나 소리 전문가에게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아! 카오스가 전문가구나! 각자 상황에 맞는 소리를 요리하듯 뚝딱 한 그릇 내오다니. 그 당시엔 몰랐는데, 어느 날 지쳐 돌아오는 길에 카오스가 전해 준 소리를 듣고 알게 되었다. 아, 사람들은 어떤 소리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안 듣고 싶고, 피곤하다는 것. 음악도, 노래도, 말소리도 다 지겹고 피로해서, 그냥 아무런 자극조차 없는 고요함을 원했다는 것을 말이다. 


단절되어서 오히려 편안한 기분. 머물고 싶은 고요함. 


경험하고서야 알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기로 했다. 피부 관리실 다니듯, 일주일에 한 번 가서 청력과 스트레스 상태 진단받고, 그에 따른 케어를 받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클리닉 운영하려면, 고요함 마스터가 되어야 하던데, 그게 소리 배합 잘하는 것만큼, 청각과 심리 관련 지식도 필수여서, 카오스 보니깐 막판에 의대생처럼 공부하더라. 매일 오고는 싶은데 그만큼 예산이 없는 나를 위해 집에서 홈케어 하라고 귀 보호 제품이랑 고요함 셀프케어 키트도 선물 받았다. 이걸로 데일리 관리하고, 카오스네 클리닉 가서는 고요한 방이랑 각 종소리 믹싱 되는 공간에서 잠깐 눈도 감고, 그때그때 내게 맞는 소리도 처방받아서 들려준다. 아, 미친 듯 소리를 질러도 된다. 어쨌든! 드디어 카오스가 클리닉 개업도 했으니 주기적으로 다니고 멘털 케어 좀 해줘야겠다. 관심 있다고? 그럼 내가 체험권 알아봐 줄까? 




1. 감각공해. 도시의 삶은 어쩔 수 없이 피곤하고 피로하다. 

코로나 시대. 재택근무가 높아지면서 의외로 늘어난 민원 중 하나가 바로 층간소음 민원이다. 이건 갑작스러운 재택에 예상치 못한 각종 소음이 발생하는 것도 있지만, 낮에는 집에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 밤낮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인데, 사실 이런 스트레스는 계속 있었다. 아침에는 스모그가 가득하고 미세먼지 때문에 운동장엔 잘 나가지도 못하고, 길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그득하고, 날만 조금 더워지면 갑자기 하수구 냄새가 올라오기도 한다. 집에 가면 위층에서 쿵쿵거리고 옆집에서는 무슨 영화를 그렇게 극장처럼 보시는지. 내 방 옆에는 맨날 창고세일 중이라 네온사인과 각종 불빛으로 너무 눈이 아프다. 미세먼지나 수질오염 같은 거는 공해이다. 그런데 이런 공해와 달리 시각, 후각, 청각 등 사람의 감각을 자극해 삶의 질에 악영향을 미치는 빛공해, 소음공해, 악취공해 등은 감각공해라고 부른다. 


이런 감각공해는 계속 증가 중인데 그중 소음은 갈수록 심각해져 서울시 소음진동민원 현황을 보면, 2011년 2만 1745건에서 2017년 5만 5743건으로 점점 느는 추세라고 한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네온사인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고 길거리에서 음악소리를 높이던 시절에는 이런 감각공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유난스럽다 여겼다. 이미 빽빽한 도시 안에서 더 많은 거주지를 만들고, 더 화려한 번화가를 만들어야 돈을 버는 구조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은 고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의 질이 중요해짐에 따라 이제는 유난스러움이 아니라 당연히 고려되어야 하는 건강 문제로 떠올랐다. 우리 몸은 시끄럽고 위협적인 소리에 반응해 아드레날린과 코티솔, 그리고 다른 스트레스 호르몬들은 분출한다. 원래는 우리가 싸우거나 재빨리 도망칠 수 있도록 준비시켰던 이런 스트레스 호르몬은 도망갈 수 없는 오늘날 우리들의 뇌 속에서 재구성되어 종양이나 심장질환, 호흡기 장애 등의 많은 문제들이 발생시킨다. 한국 환경공단에 따르면 소음 강도 40㏈부터 수면을 방해하고 50㏈부터 혈압이 높아지는데, 일반적인 층간소음(43㏈), 휴대폰 벨소리(70㏈), 철로 주변(80㏈), 경적소리(100㏈) 등도 심혈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아직은 건강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해도, 소음 공해 때문에 삶의 질은 이미 떨어진 상태다”라고 30년 이상 소음에 대해 연구해온 환경심리학자 얼라인 L. 브론 자프트 박사는 말한다.


2.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고요함을 찾겠다. 

우리가 신나게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청각을 극단으로 많이들 활용하는 시대이다. 소음성 난청에 시달리는 청소년이 전체의 20% 가까이 되고, 국내 소음성 난청 환자는 2012년 6,600여 명에서 2016년 1만 1,000여 명으로 5년 새 71.4%나 늘어났다. 소음성 난청은 별 증상이 없다가 귀가 점점 멍멍해지고 TV나 스마트폰 볼륨을 계속 키우다가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2~3일 간 각종 소리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쉬어주는 게 좋지만, 하루 종일 시달렸던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오히려 본인이 좋아하는 소리를 듣거나 ASMR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을 들으며,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등의 감각적 경험을 찾고자 한다. ASMR 관련 백만 유투버 조차 여럿일 만큼, 잠들 수 있는 소리, 마음의 안정을 주는 소리, 짜릿한 소리.. 등 각종 소리들을 습관적으로 듣는다. 


특별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잡음이라는 뜻의 백색소음을 만드는 기계 역시 등장했다. 흔히 집중력, 기억력, 스트레스 감소 등등에 도움이 되는 소리로 알려져 있는 백색소음을 직접 믹스하여 편안해지는 사운드를 만들 수 있는 앱도 다운로드하고, 이런 소리를 제대로 출력해 줄 수 있는 오디오나 헤드셋을 찾기도 한다. 아예 주변 소리를 완전히 차단하고 싶기에 노이스 마스킹이 되는 고가의 귀마개도 있다. 미국의 음향기기 및 음향장비 전문 제조 및 판매 회사인 보스(Bose)는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특정 소음은 차단하고 잠들기에 효과적인 소리만 들려주는 정말 잠자기만을 위한, 무선 이어폰 기능은 없는, 슬립 버드라는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2018년, 배터리 문제로 리콜되기는 했지만, 휴식과 숙면을 원하는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2021년 슬립 버드 2가 출시되었다.) 고요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소리는 개인 차원뿐 아니라,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수련 공간이나 독서실처럼 공부하는 집중력이 필요한 곳, 기업이나 조직의 웰빙 측면에서 고요함을 제공해 주어야 하는 곳 등에서 외부 소리 차단을 넘어 그 공간에 맞는 소리에 대한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3. 소음규제 정책과 소리를 디자인하는 기술

소리는 내가 안 듣겠다고 안들을 수 없고, 내가 소리를 안 내겠다고 또 안 낼 수도 없는 모두의 문제인 만큼 각종 규제와 인증이 논의 중이다. 2012년에 처음 선보인 ‘고요함 마크(Quiet Mark)’는 영국의 소음저감협회에서 인증하는 국제적인 표시로 일렉트로룩스, 다이슨, 삼성 등 70개 이상의 브랜드들과 협업해 소음을 줄인 제품을 만들고 있다. 제품의 성능에 차이가 없는 경우,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더 조용한 제품을 택한다. 


단순히 소음을 줄이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자동차는 지금까지 얼마나 엔진 소리가 조용한지가 성능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엔진이 없는 전기 자동차는 오히려 너무 조용한 나머지 보행자나 운전자 모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에 일부러 소음을 일으키는 가상 안전음을 만들어야 한다. 가상 안전음은 자동차 브랜드의 또 다른 시그니처로 자리 잡는 중에 있다. 소리는 적절한 수준일 때는 자연스러운 환경음이 되지만 균형을 깨는 순간 소음이 된다. 그 기준 역시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국가에서는 이를 관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계, 기구, 시설 등 사용이나 공동주택 등 장소에서 사람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강한 소리인 소음과 강한 흔들림인 진동을 합쳐 소음진동법으로 함께 관리하고 있다. 소음이나 진동으로 피해를 받게 될 경우, 행정소송, 그 밖에 민사소송이나 환경분쟁조정제도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데, 환경정책 기본법, 주택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 연결된 내용이다. 미국의 소음규제는 주로 주법이나 자치단체 조례 등에 의하여 규율되는데,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소음뿐 만 아니라, 시위나 집회 시의 소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의 소음을 방지하려는 조항과 미국 큰 헌법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 사이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게 된다. 





+ 미래를 생각하는 논의 

1. 소리를 낼 권리와 조용함을 추구할 권리 소음을 규제하기 위해 어디까지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을까. 

2. 완전한 고요함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기술 발전에서 적정 수준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3. 고요함과 조용함, 나만의 소리를 만드는 시대. 소리와 관련해서 미래에는 어떤 일들이 있을지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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