緣份, Behind the yellow line, 1984
* 곧 장국영의 16주기를 맞이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영화 몇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2016년은 장국영 탄생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중국에서는 이를 기념해서 그의 영화 한 편을 재상영하였는데 그 영화가 바로 <연분>이다. <연분>은 장국영, 장만옥, 매염방 주연의 로맨스 영화로 대박은 아니지만 중박 정도는 건진 영화로 이미 포스팅했던 <열화청춘>, <영몽가락>, <고수> 보다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다. 세 영화의 수익을 다 합쳐야 <연분>과 비슷하다. (HK $8,755,898.00 - HKMDB 참조) 남자 주연은 원래 최고의 인기스타 진백강이 맡기로 되어있었는데 당시 ‘모니카’라는 노래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장국영이 갑작스레 물망에 올랐고, 둘을 표결에 부쳤는데 압도적인 표 차이로 장국영이 캐스팅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후에 진백강은 장만옥과 꼭 공연을 해보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싱글 음반을 내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영화 출연을 접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어쨌든 장국영은 <연분>에서 어리바리한 순정남 역할을 200% 해낸다.
여자주인공 장만옥은 1983년 미스홍콩에 2등으로 입상하여 <연분>보다 6개월 먼저 개봉한 <청와왕자>로 스크린에 데뷔하였다. <청와왕자> 역시 <연분>과 마찬가지로 쇼브라더스에서 제작한 영화로 왕정 감독에 종초홍, 관지림 등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로 <연분>의 2배이상의 수입을 올린 영화다. 장만옥은 데뷔작에서 큰 흥행을 올렸으며 두 번째 영화 역시 괜찮은 성적을 올리며 영화 배우로 안착하게 된다. 매염방은 HK-TVB 신인가수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여 1982년에 1집 앨범을 낸 가수로 이전까지는 카메오나 조연 정도로 출연하였으나 <연분>을 시작으로 주연 롤을 맡게 된다. 매염방은 가수로서 터프하고 강한 이미지를 많이 발산하였는데 영화에서 맡은 배역도 하나같이 남들은 밀어주고 자신은 희생하는 큰 언니 같은 모습을 많이 남겨 홍콩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국영과 장만옥은 <연분>에서의 첫 호흡 이후에 <호문야연>, <가유희사>, <동성서취>, <아비정전>, <동사서독> 등의 영화에서 조우하게 된다. 모니카 역의 장만옥은 미스 홍콩으로 데뷔 전 영국에서 살다 와서 광동어가 썩 매끄럽지 않았다. 그런데 <연분> 촬영 시 잦은 대본 수정과 장국영의 대본과는 다른 대사로 인해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디온(dion)으로 명명된 이름으로 촬영을 마친 그녀는 영화사에서 장국영의 인기곡 ‘모니카’를 따서 본인의 배역이름을 모니카로 수정한 데에 큰 실망감을 표출했다고 한다. 장국영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영화 출연도 같이 많이 했고 장국영 사후에도 그의 죽음을 많이 안타까워했다. 아쉽지만 <연분>의 주연 세 명 중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장만옥 뿐이다.
첫 출근날 이상한 사람에게 택시를 빼앗긴 운이 없어 보이는 폴은 지하철 개찰구에서 모니카와 우연히 부딪혀 인연을 맺는 행운을 맞는다. 또 지하철 안에서 첫 만남에는 망신을 주지만 결국에는 그에게 도움을 주는 애니타를 만난다. 지하철 역 안에서 서로의 인연을 시험하는 폴과 모니카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사랑을 확인한다. 영화 속의 지하철 역은 사랑을 맺어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연분>의 영문 타이틀은 ‘Behind the yellow line’ – ‘안전선 밖으로’이다. <연분>은 지하철 공사의 후원을 받은 작품답게 영화 내내 지하철 역 안을 샅샅이 훑어준다. 영화의 배경이 된 파란 타일이 인상적인 금종 역(金鐘, admiralty)은 1982년 5월 개통된 췬완 선의 일부로 <연분>이 개봉된 지 1년 후에는 홍콩 섬을 관통하는 공도 선까지 개통된다. 지하철이 막 개통되는 당시에 스타들이 출연하는 사랑과 젊음의 영화는 홍보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의 모니카는 가정이 있었던 전 직장 상사와 구애하는 현 직장 상사 그리고 풋풋하지만 왠지 아직 주저하게 되는 폴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그 동안의 교통수단에서 지하철로 탈 것을 바꿀 것인가 말 것인가, 지하철을 환승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녀의 마음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폴과는 하룻밤을 같이 지냈지만 확신이 서질 않는다. 폴과 모니카가 함께 밤을 보낸 방은 당시 장국영이 실제로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정원이 딸린 화려한 외관의 집은 섭외한 곳이고 그 곳에서 촬영이 어려워지자 장국영이 그의 집을 제안했다고 한다. 결국 역들을 구석수석 돌면서 보여준 폴의 진실한 모습에 모니카는 마음의 문을 연다. <연분> 전에 장국영이 출연한<첫사랑(제일차, first time)>의 소영(옹정정)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고 하며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려는 인물이었다면 연기 변신 이전에 장만옥이 연기한 대부분의 인물은 모니카처럼 수동적이고 마음이 약한 캐릭터 들이다. (그녀의 다음 작품은 <폴리스스토리>이다)
옛 영화답게 이제는 다소 상투적으로 보이는 코미디와 로맨스의 진부한 내용이지만 구도나 인물 배치는 그간의 장국영 출연작과 달리 수평과 평면의 단순함에서 벗어나 입체적이다. 금종 역의 파란 타일, 폴과 모니카의 뒤를 비춰주는 빨간 네온사인 등 색감은 현재에 비길 정도로 대단히 감각적이나 그들의 패션과 화장은 옛날식이어서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여기에서 묘한 아련함이 생겨난다. 음악은 탑가수 두 명이 출연한 영화답게 화려하다. 장국영의 1984년 leslie 앨범에 수록된 <일잔소명등>, <전신도시애>가 삽입되었으며 매염방과 부른 주제곡 <연분>은 그녀의 콘서트에서 함께 부르기도 했다. 장국영과 매염방은 1986년작 <우연>에 함께 출연하나 <연분>과 똑같이 매염방의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1987년작 <연지구>에서는 연인으로 이어지긴 했으나 주변의 반대로 끝내 사랑을 계속 이어가진 못했다. 2003년에 떠난 두 스타의 인연은 하늘에서는 연분으로 이어졌을까.
- 줄거리 -
폴은 첫 출근날 지하철을 타려다 모니카라는 여인과 부딪히고 그녀에게 반한다. 그녀 역시 전 직장에서 유부남과 사귀다가 헤어지고 이를 피해 새 직장인 녹음실의 엔지니어로 출근을 하던 중이었다. 폴은 모니카와 같은 지하철 같은 칸에 타고 가다가 애니타라는 여인에게 망신을 당한다. 폴은 모니카를 집과 직장을 오가며 따라다니고 구애에 성공한다. 그러나 녹음실의 사장도 모니카에게 질척대는 상황이 되고 모니카는 세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모니카는 세 남자 모두와 절연하려고 하나 폴은 끈질기게 그녀에게 어필을 하고 모니카는 우리가 인연이라면 이 지하철 역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계단을 내려간다. 폴은 모니카를 찾기 위해 지하철 역 안을 헤매고 다니고 모니카는 역을 나와 녹음실 사장의 집까지 가게 되나 자신이 폴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애니타의 도움으로 폴과 모니카는 지하철 역에서 다시 만나고 뜨거운 키스를 나누며 사랑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