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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브스 Apr 03. 2019

프랑스에서 온 액션

리오에서 온 사나이, L' Homme De Rio, 1964

케케묵은 옛 영화는 신나는 삼바리듬으로 시작된다. 가볍다고 하기엔 방정맞아 보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군인 아드리안은 8일간의 휴가를 명 받는다. 곧장 여자 친구인 아녜스를 만나러 갔다가 졸지에 리우 데 자네이루행 비행기를 타게 된 그는 대서양을 건너 예정에 없던 리우 데 자네이루-브라질리아-열대 정글을 차례로 헤매고 다니게 된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해변과 아직 건설이 채 다 끝나지 않았지만 세련된 외관의 빌딩들이 올라가고 있는 계획도시 브라질리아의 초기 모습, 이 나라 어딘가의 아직 고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정글 숲, 그리고 순박하지만 흥이 넘치는 브라질 사람들을 담은 <리오에서 온 사나이>는 액션 어드벤처 영화의 큰 선배 격인 영화다. 대단한 후배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가 이 <리오에서 온 사나이>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미 밝혔으니 말이다.

리우 데 자네이루 -멀리 브라질 예수상이 보인다
계획도시 브라질리아의 초기 모습

사실 모든 사단은 조그마한 목상(木像) 하나로 비롯되었다. 박물관에서 잠자는 평범한 전시물인 줄 알았던 말텍족의 유물은 비밀을 알게 된 한 사람의 욕심으로 탈취당한다. 그리고 나머지 목상을 모두 모으려는 괴한들은 아녜스를 납치해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돌아가신 부친이 숨겨둔 목상의 위치를 알고 있는 아녜스는 결국 보물을 빼앗기지만 다시 되찾기 위해 아드리앙과 함께 괴한들을 추격한다. 추격전은 확실히 <리오에서 온 사나이> 발표 즈음의 <닥터 노>, <위기일발> 등의 007 영화와 닮아있다. 특히 카 체이싱 장면은 희대의 발명품인 만큼 <리오에서 온 사나이>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007 같은 첩보 영화는 아니지만 <리오에서 온 사나이>는 추격, 잠입, 반전 등 액션 오락영화로서 담고 있어야 할 덕목을 골고루 갖춘다.

세 주연 배우 - 장 폴 벨몽도, 프랑소와 돌리악, 장 세르바이

아드리앙 역의 복서 출신 배우 장 폴 벨몽도는 탄탄한 육체를 바탕으로 다양한 액션을 이루어낸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사에 오래 남을 오토바이 액션을 보여준 <대탈주 (The Great Escape, 1963)>의 스티브 맥퀸에 뒤지지 않게 열연을 펼친다. 뛰어내리고 달리는 것은 기본이고 오토바이-자동차 액션, 고층빌딩 스턴트, 맨주먹 격투신 등을 거의 대부분 대역 없이 직접 해낸다. 액션도 액션이지만 벨몽도는 여러 얼굴을 품고 있어서 비슷한 액션의 영화라도 분위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표현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는 배우다. 그는 <리오에서 온 사나이> 이외에도 많은 액션 작품에 참여했지만 특히 <프로페셔널 (Le Professionnel, 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 1981)>에서는 비장미 가득한 얼굴로 4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자동차 액션을 마다하지 않았다. 코믹과 멜로까지 넘나드는 연기 폭 또한 그가 오랫동안 영화배우로 장수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리오에서 온 사나이>에서 앞뒤 가리지 않는 액션을 펼치는 아드리앙이 군인이라는 설정은 충분히 그럴듯하며, 제 멋대로 행동하는 캐릭터는 이미 예전 출연작에서 보여준 바가 있기 때문에 연기도 자연스럽다.

아드리앙 역을 맡은 벨몽도의 다양한 액션 연기
에펠탑이 나오는 벨몽도의 두 영화 <리오에서 온 사나이>, <프로페셔널>

아녜스 역의 프랑소와 돌레악이 배우보다는 카트린느 드뉘브의 언니로 더 유명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가 채 역량을 꽃피우기도 전인 25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배우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매는 연기자 생활을 했는데 프랑소와는 이제 막 떠오르는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둘은 프랑소와의 유작과 다름없는 코믹 뮤지컬 영화 <로슈포르의 숙녀들 (Les Demoiselles de Rochefort, 1967)>에 함께 출연하며 춤과 노래에 재능을 보였다. <리오에서 온 사나이>에서도 프랑소와가 브라질 꼬마와 난데없이 해변에서 삼바를 즐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뜬금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 장면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상징하는 대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비중이 점차 줄어들기는 하지만 왈가닥인 그녀는 이 모든 모험의 조타수 같은 역할을 하며 다혈질의 아드리앙과 조화로운 화학 작용을 보인다. 프랑소와 사후에 동생 카트린느는 트뤼포 감독의 <미시시피의 인어 (La Sirene Du Mississippi, 1969)>에서 벨몽도와 공연하며 두 자매가 그와 색다른 인연을 맺게 된다.

아녜스 역의 프랑소와 돌리악

카탈랑 교수 역을 맡은 장 세르바이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줄스 다신 감독의 <리피피 (Rififi, 1955)>다. 이 영화에서 그는 금고털이 일당의 두목 격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현실과 양심 그리고 동료애 사이에서 흔들리는 심리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낸다. 벨기에 출신인 그는 어릴 적부터 정통 연기 수업을 받은 엘리트 연기자로 많은 작품에서 베테랑의 커리어를 쌓아왔다. <리피피>에서 자신은 죽어가지만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이를 태우고 운전할 수밖에 없었던 명장면을 만들어냈던 그는 <리오에서 온 사나이>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유로 차를 몰게 되지만 아쉽게도 그의 연기력이 제대로 발휘되지는 못했다. 액션을 맡기에는 고령인 데다 이미지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지하세계에서 돈놀이하는 대모로 잠깐 출연한 시몽 레나가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카탈랑 교수 역의 장 세르바이
시몽 레나와 <리피피>에서의 장 세르바이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에게 영감을 주었던 <리오에서 온 사나이>도 사실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기는 어렵다. 프랑스의 유명 만화인 <탱탱의 모험 (Les Aventures de Tintin)>의 에피소드 중 ‘부러진 귀 (L ‘Oreille cassee, 1937)’에서 이야기를 따왔기 때문이다. ‘부러진 귀’ 역시 탈취당한 목상을 찾기 위한 탱탱의 여정을 그린다. 박물관에서 목상이 도난당한다는 도입부나 열대 밀림을 탐험하는 내용은 <리오에서 온 사나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리오에서 온 사나이>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인 <탱탱의 모험> 보다는 스케일, 유머, 액션 등 모든 면에서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와 더 많이 닮아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인디애나 존스>의 조상 격인 <탱탱의 모험>을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었는지 스티븐 스필버그는 2011년에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TinTin: The Secret of the Unicorn)>을 연출하며 결국 ‘탱탱’을 자신의 주인공 대열에 합류시켰다.

<리오에서 온 사나이>(좌) 와 <틴틴의 모험 : 부러진 귀>(우)
틴틴을 품은 스티븐 스필버그

오락 영화로서 <리오에서 온 사나이>는 55년 전의 영화로 보기 어려울 만큼 어색하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프랑스에서 당해 흥행 탑 5에 랭크됐으며 아카데미에서도 각본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인정도 받았다. 무엇보다 <리오에서 온 사나이>는 오락 영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소박하게, 어드벤처 장르의 선구자적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거시적으로 인정받아야 할 작품이다. 분자요리 같은 영화들이 유행하는 시기에 아무렇게나 대충 썰어 접시에 툭 올려놓은 섞박지 같은 예전 영화가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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