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은 이케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본격적인 결혼 생활의 시작은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서였다. 신혼의 밝은 에너지도 체리색 방문과 촌스러운 패턴의 벽지는 용납하지 못했다. '왜 오래된 아파트의 기본 인테리어는 체리색일까?'같은 생각을 하며 보통 세 들어 사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몰딩과 문틀까지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퇴근 후 시간을 모두 인테리어로 보내는 날들이 계속됐지만 언젠가 끝나고 나면 흰색 몰딩과 아이보리색 문을 가진 멋진 신혼집을 갖게 될 거라는 기대로 '젯소 한 번 페인트 두 번'의 주문을 외워갔다.
더위와 함께 시작된 인테리어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설 때 쯤 바깥 바람은 이미 선선해진 가을이 되었다. 퇴근 후에는 늦은 시간이라 조용한 작업을 하고, 주말이 되어서야 소음이 있는 공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렸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집을 보면서 방문 경첩에도 애정이 생길 때 쯤 여러 이유로 이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네 집도 아닌데 뭘 하냐'던 아버지의 말처럼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여러 이유로 비워줘야 하는 '내 집'은 아니었던 것이다.
두 번의 이사를 통해 나름 신경 쓴 인테리어도 이사를 가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집 구조에 맞춘 가구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이사할 때 신경 써서 준비한 드레스룸의 붙박이 가구는 두 번의 이사 끝에 일부분은 해체되어 버려지고, 간신히 살아남은 부분과 부속들은 처음 구매했을 때의 운송료 정도에 판매되어 사라졌다. 거실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던 페브릭 소파는 고양이의 캣타워로 몇 년을 버텼지만(?) 더 이상 손상되기 전에 필요한 이웃 주민에게 분리수거 비용 정도로 보내졌고, 이사한 집에 어울리지 않아 이름처럼 떠다니던 아일랜드 식탁도 젊은 신혼부부의 이삿짐과 함께 떠나갔다.
이제 수가 너무 많아 어찌할 수 없는 책들이 꽂힌 책장과 점점 삐걱거리는 소리가 커져 잠을 설치게 하는 침대 그리고 당장 앉을 곳이 필요해 남아있는 작업실 의자 정도가 수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기존 가구의 빈자리는 이제 이케아의 가구들이 채워가고 있다. 이케아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1년이 안됐다. (2014년 12월 18일에 오픈) 그전부터 도매로 가져와 이윤을 붙여 판매하던 중간 업체가 있어서 필요한 소품들은 종종 구매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케아가 정식으로 판매를 하고 있으니 큰 가구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어졌다.
가장 처음 구매한 이케아 제품은 나무로 된 계단형 스툴(BEKVÄM)이다. 국민 스툴이라 불릴 만큼 여기저기 많이 보이고, 심지어는 카피 제품도 많이 판매되어서 계단형 스툴로 검색하면 가장 먼저 보인다. 조립도 간단하고 만들어 두면 집안 여기저기 쓰임이 많다.
구매한 가구 중 가장 큰 것은 옷장(PAX)이다. 색상과 문짝 디자인, 손잡이까지 조합을 다양하게 할 수 있어서 기성품이지만 취향을 반영할 수 있고 생각보다 품질도 좋다. 다만 그 크기가 혼자서 조립하기 버겁고 가구 조립에 손재주가 없다면 완성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조립 대행도 있다니 상관없겠지만… )
옷장과 의자 여러 개, 국민 카트(RÅSKOG), 최근 구입한 세면대까지 많은 가구들을 이케아로 바꾸면서 느낀 것은 이케아의 성장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스칸디나비아식 디자인, 가격 대비 괜찮은 품질 등 첫인상도 있겠지만 작은 제품의 조립에서도 느껴지는 정교함과 시스템, 생산자와 사용자를 배려하는 부분이 담겨있어 '이케아'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비슷한 가격대의 타 브랜드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힘들어서 단번에 비교가 된다.
이케아가 내세우는 이미지들은 솔직하기보다는 상업적으로 잘 포장된 것이고, 조립이 쉽다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달가운 일은 아니다. 저렴한 가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립하는 시간과 노력이 비하면 그리 싼 가격도 아니다. 친환경이라고 하지만 가격이 싼 만큼 교체 주기가 짧아 과연 환경에 이로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케아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케아가 갖는 장점은 명확하다. 그들이 내세우는 슬로건 "데모크라틱 디자인(모두를 위한 디자인 - 좋은 홈퍼니싱 제품은 모두를 위한 것)"처럼 낮은 가격으로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삶의 질은 이케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케아는 단지 그 노력(조립하는?)만큼 제품 가격을 낮춰 파는 것일 뿐이니 말이다.
TIP: 이케아 가구를 좀 더 튼튼하게 오래 쓰는 법.
1. 조립할 때 이케아에서 제공하는 기본 공구는 쓰지 말고 전문 공구를 사용하자. 기본으로 제공하는 육각렌치는 크기가 작아 힘을 주기 어렵고, 무딘 재질이라 쉽게 망가진다.
2. 목공용 본드를 사용하자. 연결 부위에 약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가구의 튼튼함이 몇 배가 된다. 목심(나무못)으로 연결하는 부분에도 사용한다. 단, 재조립이 필요하거나 움직이는 칸막이 등은 사용하면 안 된다.
3. 목공용 클램프(집게)로 접합 부분을 잡아가며 조립한다. 클램프가 없으면 고무밴드, 노끈 등으로 묶어두는 방법도 있다. 본드가 마르는 동안 잡아주면 튼튼해진다.
4. 나사 조임 부분은 조립 후 한동안 사용하다가 다시 조여준다. 가구 자체의 무게, 사용할 때의 움직임 등으로 처음 조립했을 때와 다르게 유격이 발생하는 부분을 한번 더 조여주면 오래 쓸 수 있다.
5. 설치 시 수직/수평을 맞춘다. 수평계가 있으면 좋다.
쓰고 나니 이케아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가구 관리법이다.
-스웨덴이 사랑한 이케아 그 얼굴 속 비밀을 풀다
안그라픽스, 2015
11p. 이케아는 단순히 디자인을 파는 곳이 아니다. 스웨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칸디나비아를 파는 곳이다. … 파란색과 노란색이 섞인 이케아 로고는 스웨덴 국기를 연상시키고 제품 이름은 스웨덴 혹은 스칸디나비아식이다. 또한 이케아 음식점에서는 '스웨덴의 맛'이라는 주제 아래 스웨덴 요리를 판매한다.
17p.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소비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공동체 의식과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역사 내러티브들을 사용한다.
18p. 여러 지점을 보유한 이케아가 승승장구하는 원인을 뛰어난 물류 시스템과 튼튼한 기업문화, 캄프라드의 독특한 리더십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조립식 가구이고 가격이 저렴한 덕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여러 내러티브가 이케아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39p. 캄프라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전망, 정신은 아홉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_ 제품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2_ 이케아 정신. 강인함과 현실성.
3_ 이윤은 목적 달성에 필요한 자원이 된다.
4_ 적은 자원으로 좋은 결과를 낸다.
5_ 단순함은 미덕이다.
6_ 우리만의 방식으로 한다.
7_ 집중은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8_ 책임을 진다는 것은 특권이다.
9_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의 미래는 밝다!
102p. 이케아 로고는 스웨덴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된 로고는 빨간색과 흰색이던 기존 로고를 1984년부터 대체했다. … 제품명 선정을 위한 시스템도 마련했다. 소파와 커피 탁자에는 스웨덴 지명을, 섬유 제품에는 덴마크 지명이나 여자 이름을 붙인다. 램프에는 바다나 호수 이름을, 침대에는 노르웨이 지명을, 양탄자에는 덴마크 이름을, 의자에는 남자 이름이나 핀란드 이름을 붙이고, 야외용 가구에는 스칸디나비아 섬 이름을 붙인다. 아동용 제품에는 형용사나 동물 이름을 붙인다.
182p. 이케아가 실제로 모든 사람이 누리는 일상의 수준을 향상시켰는지, 원가를 절감시키려는 노력이 착취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185p. 21세기에 들어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적 책임은 공적인 의무와 홍보라는 두 가지 영역과 관련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려 노력하는 이유는 이윤 극대화에만 매진하지 않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미지 향상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기업이 제품의 가격이나 품질만으로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 사회에 헌식하는 모습을 통해 진실하고 호감 가는 이미지를 구축하면 마케팅에도 도움이 된다.
151p. 스웨덴 대외 홍보처는 이케아가 국가 브랜드에 중요하다고 굳게 믿는다. "이케아를 방문하는 일은 스웨덴을 방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케아는 스웨덴이라는 국가의 공식적인 브랜드 플랫폼에 딱 맞는 기업이다. 이케아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하청업체들의 근무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주시한다. 이케아를 설명할 때 쓰는 용어는 스웨덴의 플랫폼을 설명할 때 쓰는 용어와 동일하다."
170p. 스톡홀름에 있는 NK백화점에서 판매한 '트리바뷔그'시스템은 고객이 설명서를 참고해 드라이버를 들고 직접 가구를 만들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171p. 트리바뷔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에리크 뵈르트스는 1958년 이케아에 입사해 조립식 가구 개발을 계속했다. 이케아가 발표한 공식 이야기와 달리 잉바르 캄프라드는 이케아가 조립식 가구 콘셉트를 처음으로 생각해내지 않았으며 어딘가에서 차용했다고 인정했다.
172p. 이케아를 연상시키는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된 쇼핑가방들을 매장 입구에 쌓아두는 전략도 타인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발전시킨 예이다. 이 아이디어는 체인점 카르푸에서 빌렸다. … 이처럼 현재 이케아를 대표하는 여러 아이디어와 판매 전략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타인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이를 내러티브에 반영해 이케아를 혁신적인 조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낸 능력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자: 사라 크리스토페르손 Sara Kristoffersson
문화비평가이자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콘스트팍예술대학(Konstfack University College of Arts, Crafts and Design) 디자인이론사학과 객원교수이다. 예테보리대학(University of Gothenburg)에서 예술사와 시각문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자인과 예술, 건축, 패션에 관한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있으며, 프랑스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 스웨덴왕립미술원(Royal Swedish Academy of Arts)와 왕립미술연구소(Royal Institute of Art) 등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역자: 윤제원
서울대학교에서 지리교육과 미학을 전공하고 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한 뒤 바른번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학 시절 접한 공연예술과 미술, 영상 분야에 큰 관심을 두고 공연제, 영화제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오랜 영상 번역 경험을 살려 자연스러운 번역을 추구하며 교육과 요리, 철학, 예술, 외국어 등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타인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에 애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전진의 법칙]이 있다.
by THANKSBOOKS
땡스북스 금주의 책 2015년 8월 7일 ~ 8월 13일
주1. [by THANKSBOOKS]에 게재되는 글은 홍대앞 동네서점 땡스북스에 올렸던 에세이/리뷰를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필요에 따라 처음 게재되었던 글과 다르게 편집/각색되거나 내용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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