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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 Jul 25. 2016

베란다 화단 제거

돈을 아끼기 위해 시간을 쓰지 말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돈을 써라. 

아이가 성장하며 생긴 숙원사업이었던 "튜브 수영장 설치를 위한 베란다 화단 제거"를 이번 주말 동안 실행했다. 말은 간단하지만 대대적인 공사였기에 기록을 남겨본다.


1. 베란다의 1/3은 물을 쓸 수 있도록 바닥에 타일이 깔린 공간이다. 이 공간의 1/4 가량을 붉은 벽돌로 담을 쌓아 만든 화단이 쓰임도 없고 불편하기 때문에 제거한 뒤 베란다 전체 타일을 교체하고자 했다. 넓어진 공간에 올여름 아이가 놀 수 있도록 튜브 수영장을 설치하는 것 까지가 최종 목표다.


2. 처음에는 업체에 맡기려고 했다. 화단 하나 부수고 타일 까는 게 뭐 얼마나 하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업체는 원래 100만 원인데 화단이 작으니까 80만 원이고 타일이 준비되어 있으면 60에 해준다고 했다. 두 번째 업체는 처음부터 120만 원을 부르고 시작했다. '이 사람들 요즘 일이 많구먼' 속으로 생각하며 견적 내보기를 중단했다.  


3. 공사는 어떻게 하던지 우선 마음에 드는 타일부터 구하기 위해 을지로에 들렸다. 타일 가게가 워낙 많아 어디부터 갈지를 정하는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쇼윈도에 나와있는 것 중 셀렉을 잘해둔 가게부터 둘러본다. 대부분 공장에서 물건을 가져다 팔기 때문에 가게 자체는 크지 않고 여러 가게를 돌아봐도 대부분 같은 모양의 타일이다. 방산시장에서 시트지도 살려고 했기 때문에 을지로 4가를 향해 걷던 중 전시장 분위기가 개방적인 타일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타일을 찾았다. 가격은 베란다 공간보다 약간 여유 있게 구입해서 7만 8천 원.


4. 업체를 포기하고 직접 하기 위해 필요한 공구를 구입했다. 집에 이미 망치가 있긴 했지만 목공용 망치였고 이것으로 벽돌을 깨기란 젓가락으로 종을 치는 격이다. 아버지가 예전에 하신 말씀을 따라 이왕 사는 것 전문가용 해머를 구입했다. 3.4kg 정도 무게의 손 해머, 튀어나온 부분을 다듬는 끌, 몇 가지 공구를 같이 구입해서 배송비 포함 6만 원. 

아버지가 예전에 하신 말씀
"한 번 쓰더라도 도구는 좋은 것(상황에 맞는 것)을 써라. 맞지 않는 도구는 일을 힘들게 하고 품질을 낮춘다. 무엇보다 일은 끝나더라도 좋은 도구는 늘 남아있다."


5. 토요일 그러니까 공사의 첫날은 화단 부수기다. 망치로 제일 만만해 보이는 벽돌을 내리치니 조금 움찔하는 것 같다. 이때 내가 직접 하는 것을 포기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직 시작단계라 힘이 좀 있었나 보다. 여러 번 더 내려쳐서 벽돌 한 개를 빼냈더니 이후부터는 속도가 붙는다. 어느 견고한 집단도 작은 부분 하나가 부서지면 다른 부위도 결국 그 틈 때문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협동/단합/결속 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망치질을 하면서 머릿속은 회사 운영을 고민하고 있다.


6. 화단을 부수는 것은 시끄러움과 먼지 날림만 참으면 쉬운 일이었다. 망치로 쾅쾅... 그런데 망치가 점점 무거워진다. 나중에 튀어나온 부분을 다듬기 위해 끌을 대고 망치로 칠 때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그냥 100만 원 쓸걸..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부셨으니 폐기물이 나오고 이것은 분리수거봉투에 버릴 양과 무게가 아니다.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마트에서 가정용 폐기물 봉투를 따로 사 왔다. 50리터짜리 개당 5,000원x5개. 잘 담아서 묶는 것까진 성공했는데 ... 혹시 벽돌과 시멘트 폐기물 50리터 들어보셨는지 ... 혼자서 번쩍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때마침 장바구니 수레도 고장(타일 나르다가;;;; ) 어쩔 수 없이 예전에 만들어두고 쓸모가 없어 아이 장난감 탈것으로 쓰던 짐수레를 다시 장난감에서 분리해왔다. 크기가 작아 조금만 균형을 잃으면 실었던 50리터 폐기물이 바닥에 굴렀다. 이 짓(?)을 다섯 번 해냈다. 아침에 시작한 일이 저녁이 돼서야 정리가 됐다.


7. 전쟁의 서막.. 아니 타일의 서막에 불과한 화단 부수기를 끝내고 일요일이 되었다. 어제저녁 고르지 못한 바닥을 시멘트로 메꿨는데 새벽에 비가 와서인지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타일본드가 다행히도 젖은 시멘트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시멘트+타일본드 14,000원. 

생각은 간단했다. 본드 바르고 타일 부착 끝!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란... 하수구 부분을 맞춰 타일을 잘라야 한다! 타일 자르기란 유리병을 깨트리지 않고 입구만 잘라 컵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이론적으로는 금을 긋고 균일하게 힘을 가하면 금을 따라 쪼개져야 한다. 하지만 실행해보면 자기 멋대로 갈라지거나 그릇 깨지듯 깨져버리고 만다. 타일 두 장을 산산조각 내본 후에야 필요한 크기에 맞게 하나를 건졌다. 필요한 건 세 조각.


8. 타일이 크기에 맞춰 준비되면 나머지는 순조롭다. 준비가 잘 안돼서 이미 모든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한 것이 문제다. 어쨌든 타일 부착까지 완료. 타일 본드가 마르고 나면 흰색 줄눈 시멘트를 타일 사이사이에 넣어 마무리하면 된다. 부족한 타일본드 추가 구입+줄눈 시멘트 14,000원. 줄눈 시멘트 작업은 어쩔 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의 작업을 끝냈다.


9. 총 재료 181,000원+교통비 및 기타 잡비를 더하면 약 20만 원 정도를 썼다. 이틀 일했으니 일당 15만 원 + 기술료(?)를 더한다면 아마 최초 견적과 비슷하려나. 물론 약값 제외.


10. 100만 원 들 것을 20만 원에 어쨌든 해결했으니 돈 벌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평소 같으면 주말 동안 아이와 놀아줬을 시간을 일하느라 소비했고 그렇게 흘러간 시간은 다시 살 수 없는 시간이다. 이 정도 비용쯤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게 되면 삶이 좀 더 행복해질까? 여유 시간이 많아지면 그만큼 아이에게 시간을 썼을까? 처음에는 큰 비용이 드는 것에 놀래서 시작했지만 하나하나 단계를 끝내면서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해졌다. 돈을 아끼기 위해 시간을 사용했지만 그것이 꼭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업체에 맡길지 고민할 일이 다시 생긴다면 내가 직접 하는 것을 선택할 것 같다. 다만 앞으로 시간을 쓰는 것은 좀 더 신중해야겠지만. 그리고 매일매일 조금씩 아이에게 시간을 내자. 그것이 그 어떤 절약보다 값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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