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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고생 Aug 21. 2019

#10. 조국 딸 1 저자 논란을 보는 대학원생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조국 없는 조국 청문회를 하고 있어서 그렇다. 논란의 중심은 고등학교 2학년의 SCIE급 논문이다. 이름이 SCIE급이지 IF(Impact Factor : 학술지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표)도 높지 않았고 최근엔 SCIE급에서 조차 탈락된 학술지다. 어떤 학술지든 고등학교 2학년이 1 저자인 논문이 등재되었으니 놀랄만한 일이고 충분히 의심 가능하다. 특히 이번 법무부 장관 하실 분 따님이니 딱 물고 씹고 맛보고 하기 좋은 개껌이다. 정치는 높으신 분들이나 하시는 거고 난 비루한 대학원생이니 이 논란을 정치색 쏙 빼고 같이 이름이 올라가 있는 박사급 대학원생의 시선으로 상상해보려 한다.


대학원생 A : (타 다다닥)아 실험해야 하는데 이놈의 과제 보고서 때문에 뭘 하지를 못하겠네. 아 대학원생 좀 더 뽑지 귀찮아 죽겠네. 구시렁구시렁

교수 : (문을 벌컥 열며) 어 A 있니? 잠깐 내 방으로 건너오너라.

대학원생 A : 뭐지?? 왜 부르시지? 1 과제 기한이 언제 까지였지? 논문 레터 보낸 건 진행되고 있나? 나 드디어 졸업시켜주시나??

교수 : A야 여기 와서 앉아봐.

A : 네 교수님. 근데 이 분은 누구시죠?

교수 : 아 이번에 어디 외고에서 고등학생들 인턴쉽 프로그램으로 방학 때 우리 실험실로 오기로 했다. 인사하거라. B다.

B : 안녕하세요, 지금 어디 어디 외고 다니고 있는 B라고 합니다.

A : 아 예예. 안녕하세요 하하. (하.. 바빠 죽겠는데 뭘 또 이런 것도 하신대)

교수 : A가 이래 보여도 우리 실험실에 5년이나 있었어. 잘하는 건 없지만 착하니까 많이 배우도록 해 B야.

A : (부글부글) ㅎㅎㅎ... 가자


실험실에서

A : (아 바빠 죽겠는데 뭘 시켜야 하나. 에이 귀찮으니까 우리 학부생들한테 하는 프로그램 그대로 진행해야겠다.) 자 B야. 우리 실험실에서 하는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저러쿵. 그중에서 예전에 진행했던 것 중에 허혈성 저산소 뇌병증(HIE)에서 보이는 혈관내피 유전자가 있는데 걔네가 얼마나 다양한가를 보는 실험을 했거든. 일단 이거 관련 논문들이니까 먼저 읽어봐.

A : 실험도 하고 보고서도 쓰고 교수님 호출에 왔다 갔다 하고 밑에 애들 관리하고 몸이 열개라도 안 남아나는 중.


다음날

A :  다 읽었어? 유전자의 다양성을 알아보는 실험들에서는 주로 PCR이랑 전기영동하거든. C야 일루 와바.

C : 네 형 왜요?

A : 이번에 고등학생 인턴쉽으로 우리 실험실로 온 친구야. 그냥 학부생들 우리 실험실 소개할 때 하는 걸로 실험하고 하자.

C : ....네?

A : 너가 옆에서 잘 알려줘~ 아! 나 산학협력단 갔다 와야 하네 아이구 너무 바쁘다. 나 간다 ㅂㅂ

C : ..... ㅅㅂ 음.. 흠.. 자 B야 안녕. 일단 그럼 우리 PCR이란 것부터 해볼까? 

(PCR 알려주는 중)

교수 : A야~ A 어디 갔니?

C : 아 A형 산학협력단에 볼일 있다고 잠시 나갔습니다.

교수 :  아 그래? 아이고 우리 B 잘하고 있어? 허허 고등학생인데 참 기특하단 말이야. 집에서 이렇게 먼 곳까지 매일 오고 실험도 열심히 하구 말이야. 

C : (나도 매일 나오고 실험도 열심히 하는데...)

교수 : 아무튼 옆에서 잘 알려줘 C야. 요즘 실험실 바쁜 것도 없잖아?

C : (저 오늘 보고서 2개 있고 회의록 3개 써야 하는데요...) 네... ㅎㅎㅎ

교수 : 그래. 잘 알려주고 결과 나오는 거 나한테 알려줘

C : 예 교수님 들어가세요.  

(PCR하고 전기영동 하고 결과값 나온 거 설명해주고 웃음꽃이 피는 날의 지속)

A : 결과 값 나왔습니다. 교수님

교수 : 음 그래. 이 정도면 괜찮네. A야 이거 데이터도 아깝고 하니까 저 고등학생 친구 있을 때 학술지 낼 거 까지 해서 시켜보는 거 어때. 우리 실험실 템플릿도 있잖아. 그거 가지고 한번 케어해봐.

A : 아 교수님 저 저번 달부터 말씀드렸는데 저 다음 주부터 출장 잡혀 있습니다. 

교수 : 아 그랬나? 그랬지 참. 알겠어. 그럼 템플릿 주고 방법만 B한테 알려줘. 중요한 건 논리란 말이야. 논리. 쓰고 나한테 가지고 오라고 하고.

A : 아... 예...(아 내일부터 출장인데 오늘 그거 알려주면 난 언제 준비하고 언제 가란 말이야 아오)


며칠 뒤

B : 교수님, A 선배님이 다 쓰고 교수님 보여주면 된다고 해서 왔습니다.

교수 : 어 B 왔니? 요새 먼 데서 다닌다고 고생이 많지? 어디 한번 보자.

(페이퍼를 본 교수의 얼굴이 썩어가기 시작한다. 내가 읽고 있는 이게 무엇인가?)

오.. 허.. 아.. 그래 이 정도면 처음이면 잘 썼어. 고생했어 우리 B. 이제 고쳐볼까? 옆에 앉아 보렴.

(하나하나 고쳐나가기 시작하는 교수. 그냥 아예 재건축을 하고 있다.)(몇 시간 뒤)

자 논문은 이렇게 쓰는 거란다. 고생했어. 우리 실험실 생활이 B한테 도움이 많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다음 날

교수 : 어 A 왔니? A야 이거 몇 장 안 되는 페이퍼인데 이 정도면 SCIE급은 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좀 알아보고 넣어봐라. 나랑 뭐 다른 교수들 이름 넣고 B 열심히 했으니까 B 이름으로 내라.

A : (에휴 그래 뭐 하루 이틀인가. 별 데이터도 아니고 그냥 주지 뭐) 네 교수님. 그럼 며칠 내로 투고하겠습니다. 

교수가 나간 뒤

A : 그냥 유전자 분석한 건데 이거 해외 학술지는 못 낼 것 같은데. 에이 국내에 IF 낮은 SCIE에 내지 뭐. 대한 병리학회 투고 클릭.


내가 경험한 대학원생활로 상상을 해보면 이렇다. 전국에 많은 대학이 있고 그 대학마다 몇십 개의 실험실이 있으니 이런 곳 없으란 법 있나? 터질게 터졌다는 생각이다. 1 저자를 누구를 주는가에 대해 많은 말이 있다. 해외 학술지의 경우 투고 레터를 넣을 때부터 저자들이 얼마큼 기여했는지를 쓰게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최소한의 장치가 있다. 

고등학생의 제1 저자 사건이 터졌지만 나는 오히려 더 높으신 분들 생각이 난다. 많은 공무직에 계신 분들이 이름만 대학원에 올려놓고 학위를 따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분들 이름으로 된 학술지 논문도 많은데 그분들은 1 저자의 책임을 다 하였는가?

이번 사건이 여당이 야당 발목 잡으려고 만든 이슈가 아닌 대학원의 오랜 관행을 깨는 하나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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