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꽂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이저 Aug 13. 2020

김지은입니다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형태의 글을 읽으면 회의감과 무력감과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그렇다고 읽지 않으면 외면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탐사보도형 신문기사도 나는 종종 처음엔 외면하다 두 번째 마주했을 때엔 죄책감을 '해치워버리자'는 마음으로 읽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친구 집 책꽂이에서 발견하고 친구에게 겉표지만 봐도 화가 나서 읽기 싫다고 했었다. 그리고 오늘 잠시 머리를 식히러 들어간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하릴없이 집어 들어 서점 구석에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딱 요만큼의 알량한 양심을 갖고 있다.


 비참한 현실과 부조리한 사회구조,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꽤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썼음에도 밀려드는 환멸감은 어쩔 수 없었다. 중반까지 책장을 쉬이 넘길 수 없어 읽다 쉬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의를 넘겨짚었던 것임을 이내 깨달았다.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고통스러웠는지 기술하는 것보다 저자는 자신과 연대해 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인류애와 연대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의 글에서 묻어 나오는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는 나를 다시 한번 부끄럽게 했다. 나 또한 '피해자 다움'의 프레임에 갇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자를 보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매우 쇠약해진 채로, 분노에 휩싸여 현실을 고발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글일 것이라 넘겨짚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왜 '김지은입니다'인 지도 그제야 깨달았다. 신변이 모두 공개되고,  2차 피해의 고통 속에 자신의 이름 석자가 적힌 약봉지 조차 무서웠다던 그가 이제는 당당하게 '김지은입니다'라고 세상에 대해 외치는 글이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