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뀌면 결국엔 이래저래 뒤바뀌게 된다. 휘어져버리기도 하고, 부러져버리기도 한다. 살면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을 뿐 사람도 결국엔 변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저 계절이 바뀌듯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내 곁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며 흐르는 물처럼 존재한다. 물살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아봤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뿐이다. 손가락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보며 아쉬워 하지만, 나조차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데 어떡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짧은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꽃이 지고 해가 저무는 것을 보듯 말이다.
살아가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생과 사는 본디 한 몸으로 하늘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도교에서 그랬던가. 죽음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일 뿐이라면 두렵지 않아질까? 내 생각에 그건 아닐 것 같다. 죽음을 앞두고 그동안의 흔적들을 되돌아보면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간다니, 환생을 하게 된다니, 죽음을 초탈하게 받아들인다니 하는 얘기들이야 많지만 죽음을 코앞에 두고 그런 얘기들이 귀에나 들어올까. 나라면 내가 그동안 쌓아 올린 모래성을 끌어안고 이거 놔두고는 못 간다고 어린애처럼 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추한 것 같다. 그래서 죽어가는 동안, 사라져 가는 존재로 있는 동안 모래성을 좀 더 이쁘게 쌓아보려고... 그러면 돌아갈 때 이렇게 멋진 모래성을 쌓았으니 여한 없다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미련이 완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기념사진도 찍고 싶을 거고...
적어도 변하지 않는 것을 하나 정도는 찾았다. 우리는 결국 죽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이건 너무 비관적이게 느껴지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기에 나는 다른 것을 찾고 싶다. 언젠가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느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 내가 느껴본 적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판에 변하지 않는 것,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 하나쯤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하는 지금에 와서는 영혼의 존재를 믿고 싶다. 영혼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영혼을 믿지 않는다고 했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보이지 않아도 영혼은 있다고 말해주던 그에게 나도 이제는 영혼을 믿게 되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혼을 믿고 싶어 졌다고 전해주고 싶다.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시간 앞에서 영원할 수 있는 건 영혼뿐이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여담으로, 어릴 적 읽었던 위키드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주인공인 엘파바가 내게도 영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장면. 그 부분을 읽으며 나한테도 영혼이 있는 걸까? 영혼이 있다는 건 무슨 느낌이고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인데?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뮤지컬 위키드의 넘버 중 하나인 디파잉 그래비티를 들어 보면,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엘파바는 영혼이 충만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본인만 몰랐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