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태 서울 퀴어퍼레이드를 두 번 가봤다. 한 번은 20대 초반에, 그리고 두 번째로 간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충 2년 전이다. 예전에 퀴어퍼레이드에 함께 갔던 일행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퀴퍼에 가면 전남친들을 몇 명이나 보게 될지 몰라." 얼마나 아무나 만나고 다녔으면 그래요? 라는 말은 그 당시 다행히 내뱉지 않았다. 그 일행이 진짜로 전 남자친구 무리를 만나서 쩔쩔매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고. 조금 아쉬웠다.
처음으로 가 본 서울 퀴어퍼레이드. 퀴어퍼레이드니까 깨벗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고 물론 실제로도 있긴 했다. 사람들이 불건전하다고 호들갑 떤 만큼 선정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워낙 그 때나 지금이나 모럴이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예수로 분장한 사람도 있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에 거하신다고 하니까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한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외 부스에선 에이즈 조심하자는 캠페인 같은 걸 하거나... 스티커나 부채 같은 걸 나눠줬다. 선정적인 걸 싫어하는 퀴어들이나 퀴어퍼레이드가 열린다고만 하면 눈에 불을 켜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얘기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슴슴한 축제였다. 그런 슴슴한 축제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혐오세력이었다.
펜스 밖, 단아한 한복들을 단체로 차려입고 하늘하늘한 부채를 양손에 쥔 그들은 동성애 결사반대를 외치며 부채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의 춤사위에 맞춰 웅장한 북소리가 들려왔고 퀴어퍼레이드의 어딘가 부족한 2%가 채워진 느낌이었다. 퀴어퍼레이드는 보통 한창 더울 여름에 열리는데 더운 날 그 긴 한복들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그들의 노고에 나는 감탄했다. 일말의 관심도 없다면 이런 노력을 들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 비록 혐오세력이라고는 하나 우리에게 참 관심 많은 분들이다.
두 번째로 간 퀴어퍼레이드에서 목격한 피켓
그렇게 처음 퀴어퍼레이드에 갔을 때 본 화려한 부채춤을 떠올리며 다시 찾아간 퀴어퍼레이드에는 부채춤은커녕 대충 써갈긴 문구가 적힌 박스 쪼가리를 든 혐오세력 밖에 없었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열린 퀴어퍼레이드라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걸까. 다소 실망스러웠다. 엄마를 울리지 말아요! 맞는 말이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럼 이전에는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동성애 혐오를 하면 남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알게 되는 초능력이라도 생기는 모양이다.
우리는 혐오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대놓고 혐오의 시대이지 않은가? 자기네들이 내뱉은 혐오의 대상자가 자기 옆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하는 세대다. 아니면 신경도 안 쓰고 있거나.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동성애 혐오 등등. 다 묶어서 그냥 약자 혐오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공공연하다. 흔히들 말하는 남초 사이트에서는 혐오가 일종의 놀이이자 검문이다. 그들과 같은 혐오를 공유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배제당한다. 그들에게 혐오는 일종의 남성성의 표출이기도 하다. 누가 누가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이게 말하는지에 대한 경연이라고나 할까.
다정함을 바탕으로 서로의 손을 잡아도 모자랄 판에 혐오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못난이들의 목소리만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래도 못난이들의 목소리를 너무 귀담아듣지는 말자.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천박한 혐오표현들 사이를 거닐기 위해 오늘도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Shake it off를 튼다. 혐오자들은 늘 그 자리에서 돌을 던지겠지만 그러든 말든 내 삶은 계속해서 나아갈테니까.
But I keep cruisin'
Can't stop, won't stop movin'
It's like I got this music in my mind
Sayin' it's gonna be alright
'Cause the players gonna play, play, play, play, play
And the haters gonna hate, hate, hate, hate, hate
Baby, I'm just gonna shake, shake, shake, shake, sh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