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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May 04. 2020

코로나 이후, 변화의 지점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손가락도 움직이기 귀찮을 땐 아이폰 siri에게 오늘 날씨를 묻는다. 검색을 이용해서 정확한 거리와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매일 미세먼지 수치를 검색한다. 시・공간과 상관없이 언제든 접속될 수 있다는 장점은 만남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이 작은 물건에 기대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때는 어땠나? 생각해보면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시대마다의 최신이 있었고, 그것은 변화와 실용의 얼굴로 생활 전반에 녹아들었다. 물론 득과 실이 있지만 변화의 본질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고 긍정하는 편이다. 언젠가는 스마트폰도 시대의 흐름에 묻혀 유물이 될지 몰라도 당장은 이것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미 변화에 잘 적응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변화의 단맛에 가깝지만 미세 먼지 문제는 내게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슬픈 변화였다. 처음에는 하늘이 흐린 줄로만 알았는데 먼지로 뒤덮인 거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일상을 무력하게 한다. 날씨에 민감한 건 둘째치고 비염 때문에 더 걱정이었다. 뉴스에서 원인 규명과 대책, 수치의 기준이 연일 보도되는 사이 미세먼지는 자연스럽게 일상의 키워드가 되었다. 플라스틱 남용이나 쓰레기 문제,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고 이제 인간이 편리하게 살아온 대로 환경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슈가 되고 여전히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생명의 위협은 물론이고 사회・경제적인 여파로 불안과 진통을 앓는 중이다. 나부터도 일하던 학원에서 휴원 결정을 내렸고 두 달을 넘게 쉬다 이제 원생들이 조금씩 등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갑자기 원치 않은 자유시간이 생겨서 좋기도 했지만 잠깐 뿐이었다. 무력한 가운데 나보다 더 고된 시간을 보낼 사람들을 생각하며 일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마음을 다지는 수밖에 없었다. 미세먼지 문제 때와는 달리 이제 마스크 없이는 외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간 후에도 마음 편히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 있을까? 바이러스가 없어진다고 해도 이미 직・간접적인 위험에 덴 사람들은 앞으로도 건강에 관해 일어날 또 다른 불안을 안고 살 것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가 일상을 멈춘 동안 환경이 깨끗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관광객이 사라져 수질이 맑아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운하,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의 맑은 하늘, 도심에 등장한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등한시해 온 환경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성공하고 싶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뭔가를 이루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고 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건강을 잃기 전까지 우리는 언제고 건강을 잃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정작 발전이다 기술이다 목을 매며 이익을 좇다가 전염병이 사람들의 일상을 멈춘 것처럼 이제는 잘 산다는 기준에 대해 건강, 안전, 환경적인 측면을 다시 고려해야 할 시기이다. 어쩌면 삶의 본질적 문제이고 위기로 인해 바꿔야만 하는 변화라면 더욱 우선시되어야 한다.    


이 폭풍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내린 선택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This storm will pass but the choices we make now could change our lives for years to come)

위의 문장은 유발 하라리가 파이낸셜 타임스(FT)에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The world after coronavirus)’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의 부제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선택은 첫째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의 권한' 사이의 문제, 두 번째 '국수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의 문제를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를 모니터링하고 봉쇄령을 내려서 전염병을 막은 사례처럼 어쩔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나 기관의 감시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감시의 역할이 위기 상황에만 그치지 않고 개인의 일상과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앞으로 감시의 기술력은 더 발전할 것이고 범위도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상황에서 그것을 이익의 방편으로 삼아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의 말보다 진실된 말과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선택함으로써 정부의 말과 정책을 판단하고 감시할 수 있는 힘이 시민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전한다.


또한 두 번째 문제처럼 세계적인 전염병이 생겼을 때 국수주의적 고립을 택하기보다 글로벌 연대를 통해 정보를 투명하게 교환하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고 강조한다. 상황이 터지자마자 연대보다는 단절을 택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나, 한국에서 코로나 19 진단 키트를 지원받는다고 해도 성능평가를 거치자는 일본의 입장은 국수주의적 고립을 떠올리게 한다. 앞으로의 변화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그의 기고문을 읽으면서 변화의 흐름에 그냥 몸을 내맡기는 것보다 제대로 된 정보를 식별하고 연대의 마음으로 세상의 문제를 바라보는 일의 중요성을 느꼈다. 오늘도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열어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했다. 미세먼지 보통, 초미세먼지 좋음. 태풍은 서서히 지나가고 있고 5월은 명랑하게 푸르다. 누군가는 봄을 도둑맞은 것 같다고 말하지만 결국 잘 보낸 오늘이 내일을 만들 것이다.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만 전염병의 위험에서 해방되는 날이 온다면 가장 하고 싶은 건 역시 여행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티켓을 끊을 날을 기다리며 여행지를 정하고 계획을 짤 것이다.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준비하는 과정도 모든 여정의 설레는 일부이기도 하니까. 시간이 더 생긴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도록 역사 공부도 해 둘 예정이다. 그리고 언젠가 여행을 가면 이국의 낯선 이와 인사하고 싶다. 가벼운 눈인사로 족하다. 그렇게 변화의 지점에서 우리가 견디고 버틴 시간을 위로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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