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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법 Jul 22. 2016

흡스굴 가족여행 3

2016. 7. 11

몽골에선 그다지 할 게 많지 않다. 앉아서 노닥거리며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말을 탄다거나 물이라도 있을라 치면 물놀이를 하는 것외엔. 그나마 물도 얼음처럼 차가워 몸을 담그기는커녕 발을 담그고 있기 조차도 힘겨웠다. 오죽하면 개도 수영하기를 꺼려할까.


다행히 아이들에게 자연이 놀이터였다. 보트를 타고 점심을 먹은 후, 아이들은 호숫가에서 예쁜 조약돌을 줍고 있거나, 풀밭에서 개미같은 벌레를 잡거나 야생화를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별다른 장난감 없이도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2살씩 차이나는 세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웃기 바빴다. 이럴 땐 아이가 셋이어도 좋구나.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고만 있어도 좋다.

오후에는 그 나머지 활동 중 하나인 말을 타기로 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가이드와 함께 타야 했다. 말 타는 비용은 테를지 보다 월등히 비쌌다. (테를지는 무조건 1인당 1시간에 1 만 투그륵. 여긴 가이드 1시간 15,000  투그륵에 말 한 마리 1 만 투그륵, 합이 25,000 투그륵이었다.)


둘째 아이는 한 번 시도했다가, 아빠랑 같이 타겠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타보지도 못했다. 다행히 오늘은 꼭 말을 타겠다며 점잖게 가이드와 함께 앉았다. 막내는 탈 수 없어서 일단 나와 함께 둘째가 타고, 다음은 큰 애와 와이프가 같이 번갈아 타기로 했다.


아들은 생각보다 잘 탔다. 조금 빨리 달릴라 치면 약간 표정이 굳긴 했지만, 가이드가 한국말로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자 나를 보곤 웃었다. 날을 잘 잡고 왔는지 하늘도 구름도 너무 아름다웠다. 어디를 찍어도 괜찮은 사진이 찍히는 것이 마치 스위스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몽골사람들이 바다라고 부를만하다.


문제는 반환점을 찍고 캠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이드가 날 보더니 애가 잠들었다고 했다. 아직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적으로 보일 나이는 아니겠지. 어디서 누구와 뭘 했느냐가 더 중요할 터. 말타기 전부터 약간 졸린 것 같아 보이긴 했고, 햇볕도 따뜻하게 내리쬐자 가이드 형 품에 안겨 잠들어버린 것이다. 가이드는 웃으며 괜찮다고 아이를 품에 안고 천천히 숙소로 향했다. 막상 도착하자 잠에서 깨버린 아들, 그냥 배시시 웃으며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딸아이와 와이프가 말을 타고 출발했다.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백마를 타고 사라져가는 모습이 '역시 몽골이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말을 잃었다.

아마 하트갈로 가면 짚라인이라든지 다양한 놀거리들이 있는 모양이다. 차탄족 마을에 가서 순록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말 타고 며칠을 트레킹 하는 코스는 무리다. 더 이상 할 건 없었다. 다만 날이 맑아 밤에 다시 한 번 은하수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또 땅바닥에서 야생화를 보고 벌레들을 잡고 돌을 주으며 놀고 저녁을 먹었고, 그렇게 환한 밤은 다시 찾아왔다.

Nature's Door Camp


어느새 쌀쌀해진 날씨, 캠프 직원이 다시 난로를 지펴주고 갔다. 그러나 곧 꺼져버렸고, 난 불을 살리기 위해 종이를 넣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다시 살렸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처음 보고 신기했는지 옆에 앉아 같이 열심히 바람을 불어넣었다.


도시 촌놈들

좁은 게르 안은 곧 훈훈해졌고, 와이프는 게르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밤 11시가 되어도 환할 정도였으나 이미 수없이 많은 별들이 뜨기 시작했다. 다만 은하수를 보기 위해선 더 기다려야 할 터. 아이들은 곤히 잠들었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관대해진 와이프는 수많은 별들에 감탄하며 게르 문을 열고 의자를 놓고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그렇게 12시, 1시가 되자 쏟아질 듯 한 별들과 은하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서 나타났다. 탄성, 또 탄성. 삼각대 하나 덜렁 챙기고 릴리즈도 없고, 35미리 단렌즈 하나만 있는 상태로는 당연히 별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다. 그냥 눈에, 마음에 담고 가야지. 고프로로 야간 타임랩스를 시도했으나, 무슨 에러가 났는지 금세 멈춰 버렸다. 

북두칠성을 찾아보자!


전날 잠도 안 자고 20시간을 운전한 탓에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난로를 꺼뜨리고 새벽 6시에 추워서 일어났었다. 오늘은 불을 잘 살리겠노라 다짐하며 난로 앞에 앉아 열심히 불을 지피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새벽에 추울까 장작불을 살리고 있는 삶. 몽골에서 기대했던 당연한 풍경.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새로운 삶이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구나. 돌아가는 길, 어떻게 운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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