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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법 Sep 20. 2016

참기름에 대한 소고

그리고 몽골 음식에 대하여

가족들이 한국에 가 있다. 전에 혼자 살 때는 식자재 및 조리기구의 부족을 탓하며 거의 밖에서 끼니를 해결했지만, 좋은 기구와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제 혼밥에 익숙해지고 있다. 늘어나라는 통장 잔고는 안 늘어나고 요리 솜씨만 늘어나는 중.


그러다 문득 참기름뿐만 아니라 한국음식의 재료들에 대해 생각이 닿았다. 도대체 왜 저 집기 조차도 힘든 깨를 따서 먹을 생각을 했을까. 단순히 먹는 게 아니라 그걸 짜서 기름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모자라 잎을 따서 먹을 생각까지 했을까. 


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에는 수도 없이 많은 야채들이 사용된다. 몽골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동물들이 뜯어먹을 법한 풀로만 보일 게다. 실제로 '고기는 사람이, 풀은 가축이'라는 몽골말도 있으니까. 깨와 참기름을 무심히 바라보다 대체 왜 한국 사람들은 이런 것까지 먹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까지 다다랐다.


이런 말이 있었다.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다'. 옛날 옛적, 가난한 이들은 먹을 게 없어 보릿고개가 오면 온갖 풀과 나무껍질마저 벗겨 먹어 대변을 볼 때 똥구멍이 찢어졌다는 그 전설. 온갖 걸 이리 하고 저리 해서 먹다 보니, 이건 괜찮네, 저건 먹으면 죽네 라는 경험치가 쌓이고, 그 가난함이 지금의 한국 음식 문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갖추고 있는,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한국 음식 문화 속에는 알고 보면 굉장히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셈이다.


반면 몽골은 정반대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유목문화를 통해 고기는 항상 풍부했다. 누구네 집이 소가 더 많고 양이 더 많을 수 있지만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던 거다. 지금도 내수 소비하고도 남아 수출을 하고 싶어 하는데 구제역, 광우병 등등의 전염병으로 인해 2-3개국에 쇠고기를 수출하고 있는 형편이다. 쇠고기 1kg에 한국돈 6천 원 정도이니, 진정한 육식 민주주의의 땅인 것이다. 사료 먹여 키우는 닭과 돼지고기가 쇠고기보다 더 비싼 상황이다. 돈이 없어도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곳이다. 


조리법도 간단하다. 바다는 없지만 소금광산은 있는 탓에 그저 고기 잡아서 소금 뿌려서 구워 먹거나 삶아 먹어 왔다. 우리처럼 쇠고기를 물에 재워 피를 빼는 수고를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피를 버리는 낭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음식에서 고기 냄새가 심하게 난다. 쇠고기도 그러한데 노린내 가득한 양고기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바다가 없는 덕에 생선은 먹지도 않는다. 새우, 게, 오징어를 보면 아주 징그러운 벌레 보듯 고개를 돌려 버린다. 나름 최고급 호텔이라는 샹그릴라 호텔 1층 뷔페식당에 가도 해산물 음식은 없다. 한국 사람에게는 반쪽짜리 뷔페인 셈이다. 


지금은 몽골 사람들의 식생활이 많이 바뀌고 있다. 한국 음식의 영향으로 나름 반찬을 놓고 식사하는 집도 생겨났다. (몽골 사람들도 반찬을 그냥 '반찬'이라고 부른다.) 웬만하면 고추장이라든가 한국 식자재를 구비해 놓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영국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형편없는 음식으로 소문난 동네이긴 하다. 피시 앤 칩스 말고 뭐가 있냐며. 하지만 몽골 생활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엄청난 고기 냄새와 소금의 짠맛에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영국의 피시 앤 칩스가 그립다. 난 대체 왜 이런 나라에서만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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