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PAULE Oct 15. 2020

여름에서 가을로

파혼 후 세 번의 만남(1)


파혼이 결정되고 얼굴 보고 헤어지자고 애원해서 만났던 그 날 이후 두어 달 간, 그를 세 번 만났다.


첫 번째 만남은 차 명의 이전 때문이었다. 구청에서 신청만 하고 헤어졌어도 됐는데 이 정신나간 인간은 파스타는 왜 먹자는 건지. 파스타 먹을 일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는 그와 나는 결국 점심을 같이 했다. 어차피 밥은 먹어야 하니까. 만나자마자 눈물이 줄줄 났던 헤어지던 날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는 눈도 안 마주치며 위자료 대신 아이패드나 사라고 했다. 익숙하게 내 그릇에 손을 대던 그는 밥을 다 먹고 보러 가자고 했다. 지금 무슨 데이트 하냐는 나의 비난에 그는 웃으며 알겠다고, 다음 달에 있을 내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착잡한 식사를 하고 구청에서 일을 다 처리했다. 나는 여름날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제서야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비로소 마음이 복잡해졌다. 오랜만에 함께 한 두어 시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오랜 연인이자 친구처럼 대하는 그가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이제 더는 못 볼거라는 현실은 나를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그는 잘 가라며 내 손을 잡았다. 손은 왜 잡냐는 쓸데없는 내 질문에 그는 나를 헷갈리게 하면 안된다고 답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갔다가 그에게 연락했다. 나한테 한 대만 맞고 가라고. 그는 내 말에 순순히 잡혀서 돌아왔다.


자주 가던 한강변에 가서 산책이나 하려고 했는데 여름 장마로 진입이 불가능했다. 차를 돌리기가 애매해 잠시 고민하다가 올림픽대로를 타고 영종도로 가버렸다. 해 지는거나 보자고. 차를 타고 가면서 지난 몇 주간의 근황을 나눴다. 너희 부모님도 꿈에서 만나서 그땐 못했던 얘기도 다 했다고 코웃음치며 말했다. 그도 싱긋 웃으며 잘 풀었네, 대답했다. 프로포즈 받았던 호텔 앞을 지나치며 너 참 쓸데없는 일 했다고 추억했다. 지난 가을 내게 같이 살 집을 알아본다고 말하던 길을 지나 좋은 곳에서 저녁도 먹었다. 아무도 없는 영종도 길을 걸었다. 우리 지금 뭐하는 거냐는 나의 물음에 꼭 대답할 필요가 있냐고 답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요한 늦여름 바닷 바람은 시원하고도 꿉꿉했다. 좀 더 차를 타고 다른 섬으로 들어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노천 카페에 들어가서 노을을 바라보다 낮은 의자에 누워 한참 동안 야구를 봤다. 해가 졌지만 별 말은 필요없었다. 그저 너무 늦어지기 전에 일어났다. 한적한 밤 도로를 한참 달려 다시 집 앞에 도착했다. 먼저 입을 여는 건 여전히 나였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야?”


비상등이 하염없이 깜빡였다. 그는 파혼한 마당에 우리가 어떻게 다시 만나냐고,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 없다고 이성적으로 이건 안된다고 말했다.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에게 나를 무책임하게 버린 사람을 다시 만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무례하고 매정했던 그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끝은 정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그를 도저히 그대로 보낼 수 없었다. 안 된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도, 말투도 냉정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내게 이야기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정리라도 좀 더 잘 하게 해달라고.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시동을 끈 차안에 두 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너의 어떤 점을 좋아했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얘기했다. 내 어떤 점이 좋았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얼굴 보고 헤어지던 날 했던 생각이 아직도 유효하냐고 추궁했다. 그 땐 너무 힘들어서 잠시 헷갈렸겠지만 우리는 사랑이었다고, 사랑 아닌 것 아니라고. 우리 만나는 시간동안 서로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지난 7년을 아름답게 마무리 지으려고 발버둥쳤다. 좋은 말, 예쁜 말만 하며 그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빗줄기가 굵어졌다가, 그쳤다를 반복했다. 비참하게 헤어진 주제에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흔들렸다.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셨는데 입을 맞췄다. 생각보다 별로 안 좋지 않냐고 피식 웃다가 울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떡하냐고, 정말 어떡하냐고 목을 껴안고 울었다. 울지 말라는 말이 어쩜 그렇게 소용없을 수가 있던지. 울던 내 머리카락을 넘겨주던 그는 끝까지 나를 잡지 않았다. 내가 없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나를 놓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래도 보고싶으면 연락하겠다고 말했고 그는 다음 날이라도 만나도 될 것처럼 합의했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그는 오늘이 비 오는 밤이라 그런 거라고, 내가 자기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는 아니라고 수 차례 표현해놓고는 앞으로 관계의 지속이 마치 나에게 달린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 반, 내일도 또 볼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 반으로 그의 입술에 짧은 인사를 남기고 헤어졌다. ‘잘 지내’ 따위의 이별의 말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안녕’이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나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 하루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 일 없던 척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겨우 털어놨고 그들은 나를 말렸다. 너를 무책임하게 놔버린 사람이 무슨 면목이 있어서 너를 만나 시간을 보냈냐며 내가 냈어야 할 화를 대신 내주었다. 정신이 들었다. 내가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도 너무 이해되지만 설령 나중에 정말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당장 이렇게는 아니라고 냉철하게 일러주었다. 그래. 결혼을 앞에 두고 예의없이 나와 내 가족에게, 나를 사랑해주는 다른 이들에게 한없이 무례했던 사람이었다.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그러면 안됐다. 혹시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 이렇게 달려가는 건 좋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 해 꾹 참았다. 그를 만나선 안되는 이유를 곱씹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서툴게 글로 썼고, 위로를 받았다. 시간이 약이라니 제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 감사하게도 그에게서 먼저 오는 소식은 없었고, 공통의 지인이 전하는 이야기도 없었다. 나는 더는 연락을 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 역시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결혼 예정일을 무사히 지났고 그의 생일도 그러려니 무던히 보냈더니 손꼽아 고대하던 개강이 다가왔다. 내 생애 가장 길고 힘겨웠던 마지막 여름 방학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결혼 준비를 한 덕분에 헤어졌다는 선배의 명언을 기점으로 미련이 거의 사라졌다. 일상을 공유할 사람을 잃어 외롭기는 했지만 파혼한 사실에 혼자 우는 일도 없었고 그에 대한 내 감정을 무미건조하게 웃으며 얘기할 수도 있게 됐다. 우연히 개인의 위기 대처 및 극복 열 두 단계를 논하는 책을 읽었고 내가 그 정석대로 차근차근 잘 밟아나갔다는 점을 발견했다. 와, 내 멘탈은 참으로 튼튼하다는 자각에 자존감이 높아졌다. 평온한 일상을 지내는 나 자신이 더더욱 대견했다. 더는 블로그에 쓸 말이 없어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유치하지만 내가 프로필 사진을 바꾼 날을 기점으로 그의 프로필에서 내가 찍어준 사진들이 사라진 것을 보며 통쾌했다. 보통의 이별 클리셰를 느끼는 내가 좋았다.


그렇게 개강 한 달을 보내다 보니 8년 만에 그의 축하 없는 내 생일날이었다. 지난 만남에서 생일에 아이패드를 준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웃기게도 실제로 정말 나는 아이패드가 필요했다. 내가 막 샀는데 그가 집으로 보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며칠을 더 기다려보았다. 연락은 없었다. 괘씸한 감정이 대부분이었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아쉬움, 궁금함은 먼지같았다. 뒷말 나오는 게 싫어 구입한 가격들 그대로 십 원 단위로 떨어지게 청구서를 보냈더니, 십 원 단위 그대로 돌려받은 결혼 준비 비용이 떠올라 분노했다. 내가 분명 위자료 대신이라고 말했는데 약속은 지켜야 할 것 아냐. 마침맞게 파혼의 충격에서 한창 허우적대던 나를 만났던 선배가 추석 인사를 보내왔다. 선배에게 물어봤다. ‘나 아이패드 달라고 할까, 말까?’ 선배는 그에게 연락해서 받을 스트레스나 감정 소모보다 아이패드를 얻을 때의 이익이 더 크다면 연락해보라고 했다. 당연히 아이패드의 이익이 더 컸다. 나는 그에게 미련도 없었고 흔들릴 여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이른 듯 소개팅도 들어왔고, 약하게나마 그린라이트를 드러내는 재미있는 사람도 생긴 찰나였다. 그래서 홀로 한가위 보름달을 구경하러 갔다가 그에게 아주 가볍게 연락했다. 생일도 지났는데 언제 줄거냐고. 답장이 없거나, 모르쇠로 굴면 그냥 그러고 말아야지 했다. 그는 아침이 되어서야 내 프로필 사진이 예쁘다는 말과 함께 기종을 골라달라 답했다. 스펙을 알려줬더니 그는 같이 픽업을 가자고 했다. 뭘 쓸데없이 만나서 주겠대, 짜증이 나면서도 혹시 거절하면 아이패드를 안 줄까봐 그러라고 했다. 비오던 여름 밤 이후 두 달 만에 그를 만나게 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사랑의 끝에는 무엇이 남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