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최근 몇 년 동안 아빠와의 대화가 늘었다. 근처에 앉아 말문을 트면 기다렸다는 듯 속사포가 쏟아지고는 한다. 거실에는 배경처럼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 두다 보면 1박 2일, 한국 기행, 한국인의 밥상 중 하나와는 꼭 마주친다. 고즈넉한 산사와 울창한 숲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마냥 방심해서는 안 된다. 말 많은 아저씨가 이 순간을 놓칠 리 없고, 질문은 어김없이 날아온다. 딸, 저기 기억나냐? 언제나 똑같은 멘트. 나는 이제 뻔뻔하다. 우리가 저길 갔다고?
벌써 이십 년을 묵은 기억이니 그럴 만 하지 않을까. 방방곡곡을 누비던 아빠 투어의 주종에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다만 어린 나는 어딘가에 간다는 행위만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절이 언제 지어졌는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그래서 이름이 무엇인지 따위의 정보는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 아빠가 구면이라 주장하는 사찰은 언제나 초면. (물론 기억력이 나빠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도 산사에 대한 좋은 감정이 쌓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자식들이 조금 더 크자 아빠 투어는 잠정 휴업에 돌입했다. 당연히 절은 더 멀어졌다. 성인이 되고서는 더 심해졌고. 모두가 그렇듯 나의 관심은 바다 건너를 향했다. 그나마 한 번은 큰 맘먹고 템플 스테이를 예약했는데, 실어다 줄 버스가 고장 나 출발조차 하지 못했다. 시간이야 넉넉했으나 아침부터 이러니 의욕이 꺾였다. 결국은 집으로 돌아왔고 예약금은 부처님께 공양한 셈 쳤다. 아직도 기억난다. 강원도 진부 가는 버스였으니 아마 월정사였을 것이다.
그 뒤로 또 한 세월이 지났다. 더는 밖으로 나돌 수 없는 시국이 되어서야 안으로 눈길이 돌아섰다. 마침, 바다 건너가 더는 궁금하지 않아 의아하던 시점이었다. 다음 휴가지를 고르는 게 숙제처럼 느껴졌다. 이국의 거리를 상상해도 설렘이 일지 않았다. 역마살을 운운하며 쌓은 추억으로 속을 채우던 나에게는 엄청난 변화였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다닐 만큼 다녀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나가지 못하는 걸 두고 자기 합리화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덕분에 나는 발을 뗐다. 한여름 송광사와 늦가을 대흥사로.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와 또 수다를 떨었다. 추천해준 절들 정말 좋았다고, 다음에 갈 곳도 골라달라고. 수다쟁이 아빠는 또 신이 났다. 옆에서 듣던 동생은 그래서 언제 출가할 거냐 농담한다. 마음 같아선 그 언제가 당장인데. 시국이 다시 엄중해진 데다 첫눈 소식까지 들렸으니 당분간은 그른 듯하다. 그래도 대신 올 겨울에는 할 일이 있다. 구면인지 초면인지 모를 곳에서 새로 만든 추억을, 또다시 휘발시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 아쉬움이 사라지기 전에 지난 사진과 기억을 기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