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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Aug 28. 2022

술을 마시는 이유

2020. 5. 26. 일기

월요일에 누군가 물었다. 나에게 지난주 있었던 일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토요일에 러닝 후 맥주를 한 잔 한 것이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두 잔이었지만 작은 잔이었으니까 별 차이는 없다. 술을 마신 것이 왜 좋았나요.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나요. 나는 이 질문을 잠깐 생각했다. 무엇이었지. 나는 약간의 행복감이 든다고 했다. 약간의 행복감? 나는 내가 말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적당한 바를 좋아한다. 주황색 백열등이나 네온등,  뒤에 늘어선 술병들,  술병들에 붙어있는 라벨들, 둥근 와인잔, 위태로운 마티니잔, 듬직한  , 새침한  , 피곤한 셰이커, 피곤함을 감추는 바텐더, 구겨지고 손때묻은 메뉴판,  메뉴판을 펼쳐보지도 않고 주문할  있는  기억.  모든 것들이 좋다. 그리고 한손으로 온전히 움켜질  없는 넉넉한 유리잔에, 발음은   있지만 의미는 알지 못하는 이름의 맥주 위로  떨어지는 소음들이 좋다. 괜찮은 음악을 틀어주는 곳이라면 더욱 마음에 든다.   중에 하나는 익숙하고, 하나는 익숙한 곡과 비슷하고, 나머지 한 곡은 귀에 안들어와서 잠깐  생각하기 좋은 비율이면 적당하다.  찔까봐  안대는 과자들을 예쁜 그릇에 담아서 내주는 것도 좋다. 누군가 추상예술을 좋아하거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아닐까.


그리고   뒤에 집에 돌아와, 된장찌개에 밥을 먹으면서 감사해한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감사함이나  비슷한 기분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  덕분에 된장찌개를 끓여준 사람의 사랑과 같이 먹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   없고 언젠가 끝이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실감한다. 서운해지기도 하지만  담담해진다. 그것이 시간이고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것들을 맥주  ,  잔이지만 작은 잔이니까  잔이나 다름없는 맥주에 기대서 느낀다.  없이는 이 모든 것을 느끼기 어렵다.


이것들은 술을 마시는 합리적인 이유일까 아니면 구차한 변명일까. 이유와 변명은 과연 어느 지점에서 갈라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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