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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Jun 10. 2024

프랑스에 8년을 살면서 느낀 점

한국에서 던 지, 프랑스에서 던 지 나는 똑같이 바쁘게 살고 있다. 나는 항상 직업이 두 개였다. 직장이 끝나면 일러스트 외주를 하던 그림을 그린다. 어떤 장소가 되었던 불행히도 다행히도 나는 일이 항상 많다. 나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보다도 배로 바쁘지만 삶의 만족도는 더 크다.  


2014년에 처음 프랑스에 왔다. 19살의 나이로 뭣도 모르고 아트를 공부하겠다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이곳에 왔다. 우리 집이 돈이 많아서 프랑스에 유학을 온건 아니었다. 우리 집은 내가 유학가기 전까지 생활수급자로 나라 작디 작은 14평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다. 나는 그냥 가난한 동네에 사는, 선생님들이 다른 학생들 눈을 피해 조용히 불러내서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 같은 걸 받으며 평범한 학생들 사이에서 조금 격차를 느끼는 그런 삶을 산, 조금 가난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프랑스 학비가 저렴하다길래, 그리고 예술을 돈도 안 내고 배울 수 있다고 하길래 이곳에 왔다. 


이곳에서 5년간 유학을 하면 인생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상한 아트정신만 배워서는 카피탈리즘이고 뭐고를 운운하며 석사를 끝내고 돈이 없어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서 2년 반정도 일하면서 프랑스에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에 돌아왔다. 지금 이곳에서는 일러스트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한국 관련 기업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여전히 대단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평범하게 프랑스에서 계속 살고 있는 이유. 





이 글에서는 내가 얼마나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고 얼마나 성공의 척도를 이루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항상 힘들에 체류증을 연장하고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게 힘들다고 하는 삶을 넘어 이곳의 삶의 만족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아, 나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것이 아니다. 다들 프랑스 하면 파리에 산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브르타뉴에 살고 있다. 8년째 6만 정도 되는 작은 도시에, 주에 한두 번씩 보는 동네 친구들이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유학을 맞히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가장 크게 느꼈던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의 삶은 불행하다였다. 내가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대기업에 다니지 않고 남자친구가 없어서 그렇게 느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오마카세를 가지도 않고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카페를 가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내 삶이 다른 직장인들처럼 반복적이라고 해서 불행하다고 느낀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지금 프랑스 브르타뉴 캥페르에서도 똑같이 대단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일은 배로 많고 유명한 카페조차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데도, 나는 이곳에서 종종 마음에서 넘쳐흐르는 행복을 느낀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종종 오는 이런 과분한 행복을 느껴도 되는 걸까 하는 죄책감이 들정도다. 


내가 매일 행복한 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사소한 행복을 느낀다. 대단히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멋진 장소와 여행을 가고 대단한 풍경을 보는대서 오는 행복이 아니라, 그냥 이 삶을 살아가는데에서 오는 행복을 느낀다. 아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단순히 토요일 아침에 시장에 나가 적당히 야채와 과일을 사는대서 오는 그런 행복감. 


나도 당연히 이곳에서 짜증 나는 일도 있고 이별도 있었고 힘든 일도 매우 많이 있었지만, 이런 단순한 일상의 행복이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이야기하면 조금 편파적으로 느껴질까, '8년을 프랑스에서 살면서 언어가 되니까 당연히 행복하게 느끼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나라게 말하면, 나는 이곳에서 좀 더 인간적인 행복을 느낀다. 커피를 사는데, 크레프를 사는데 주고받는 인사라던지, 주말에 친구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듣는 노래라던지, 해가 뜨는 날이면 괜히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고 싶은 날이라던지, 그런 아주 사소한 행복이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구나 하고 자주 생각한다. 


내가 느낀 한국에서의 삶도 그런 소소한 행복은 당연히 있었다. 내가 워낙 센세티브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을 곤두서는 예민한 사람이라서 더 그런 걸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의 소소한 행복은 행복이라고 여길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런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안주하는 루저다. 그런 걸로 만족하는 건 너의 그릇이 작은 것이고 적어도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300만원 이상은 벌어야 하고 연봉은 5000이 뭐야 요즘은 1억은 벌어야 "정상"=행복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압박. 내 행복이라는 건 내 행복이 아니게 되는 이상한 상항.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행복을 왜 행복이라고 여길 수 없는 걸까.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랑은 요런 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10살쯤인가, 교회 예배가 끝나고 공원에 앉아서 흘러가는 구름을 오랫동안 보았는데, 나는 그게 참 행복하다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옆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파랗고 하얀 하늘이 흘러가는 것을 충분히 느끼는 그 시간이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그건 어른이 된 한국인으로서는 행복이라고 느껴서는 안 되는 걸까. 


한국에서 종종 어른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걸로 만족하면 안 되지, 야 너는 지금 그게 충분하다고 생각하냐." 다행히도 나는 순진하고 남의 이야기를 다 듣는 것처럼 대답하지만, 별로 내 철학에 맞지 않으면 그냥 예예~대답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편이라 크게 내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내가 지금 만족하는 거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뭐가 도대체 나쁘다는 것인가. 


나는 프랑스에 다시 돌아와서, 한국보다 더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삶의 만족에서 더 큰 힘을 얻어 더 넓고 만족스러운 삶을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내가 한국에서 일하며 39kg까지 살이 빠지며 느낀 삶은, 나는 만족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행복을 느끼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틀렸다. 인간의 꿈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대에서 온다. 하나하나 이루어 가는 일상에서 온다. 그 하나하나 이루어 간다는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킬을 얻어가는데서 오는것 같지는 않다. 엑셀실력을 늘려 영어 토픽점수가 올라가는데서 오는게 아니란 소리다. 그 실력이 정말 자신이 원한 지식이이였다면 패스.


 자신의 만족을,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서, 그것을 계속해서 밟히는 환경에서 자라는 꿈은 잡초에 불과하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미래에 아무리 조건이 좋아진다 해도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신은 밣혀버린 잡초에 불과하다. 그런 잡초는 꽃을 꿈꾸지 못할 것이다. 계속 자라나고 깎이는 삶에 불과한 것이다. 


내 유학생활이, 프랑스 생활이 꽃 같았다는 건 아니다. 참 외로웠고, 연약하기도 했다. 다만, 물질적인 것을 떠나서, 나라는 인간이 그리고 내 영혼이 어떤 것에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지, 그리고 내가 나아가는 목표가 결국에는 어떤 삶을 위해서인지에 대해서 이곳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너 진짜 똑똑하다 나는 채널의 '대한민국이 망한 이유'라는 영상을 보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상이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물질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날카롭게 지적하는 영상이었다. 물질주의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한국에서는 더 도드라진다고 느꼈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하다는 나라에 살면서 한국의 물질주의는 뭔가 뒤틀렸다고 느꼈다. 물질이 인간을 뛰어넘은 사회. 인간의 영혼이 진정으로 느끼는 행복을 부정하게 만드는 물질적인 경험과 흥분. 


나는 프랑스 브르타뉴에 살면서, 그런 물질적인 행복이 내 꿈과 목표가 향하는 지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마카세 같이 맛있는 것을 안 먹어도, 대단히 멋진 결혼식장에서 대단한 뷔페를 하객들에게 대접하지 못하더라도, 신도시 작은 아파트에서 자가를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인간으로서 이곳에서 느끼는 행복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한국이 싦어서 프랑스가 좋아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돈이 싫고 캬피탈리즘을 거부하는 히피라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하루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도 프랑스에서 소셜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인플루언서라고 할만한 일을 받으며 더 나은 콜라보레이션을 따내고 더 나은 캐리어를 축적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다만,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데에 목적은 나은 물질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 아니고 더 선한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더욱 친절해질 것을, 더욱 선한 것에 대해 나눌 것을,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에 행복의, 의지의 가치를 물려줄 것을, 내 삶의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주는 삶이기를,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그래,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며 햇볕 드는 정원에 꽃이나 상추 같은 것을 키우며 자라나는 것들을 보며 행복을 느낄 것을, 그리고 나를 만드신 그분이 나에게 주신 삶의 책임을, 사명을 다한 삶을 살아갈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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