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주 종종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한다. 내가 16살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성인이 되기 전이였으므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라졌구나가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29살이 된 지금 아빠를 생각하면, 흐릿하지만 그립다고 생각한다.
가난,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불쌍한 이야기.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반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가난했다라 공감하겠다. 나의 어린 시절도 가난했다. 하하
내 고등학교 다닐 때 일주일에 5만 원씩 용돈 받는 자가 있는 친구가 우리 집 가난해라고 했을 때 깨달았다. 음, 모두가 가난하구나, 카피탈리즘.
임대주택은 보통아파트들 사이에, 눈에 띄게 서있다.
다른 아파트 단지는 주황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데, 우리 임대주택 5개 동은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다.
다른 아파트는 한 칸이 창문 새게로 되어있는데, 임대주택 아파트 한 칸은 또 반으로 나눠져 있고 창문이 두 개로 또 나누어져 있다.
임대주평 14평에는 가족도 살고 혼자 사는 늙은이들, 지적장애를 가진 자식과 홀부모도 산다. 우리는 4 가족이 살았다. 이곳에서는 불행을 거리낌 없이 온대 간데 소문내고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옆집 빚쟁이 아들이 또 지 엄마한테 소리치나 보다 하고 그렇게 넘기는 것이다. 우리 가족도 그곳에 산다.
이런 임대주택에 사는 애들을 학교에서 보면 서로 드문드문한다. 그래봤자 어차피 수업 끝나고 선생님이, 누구랑 누구는 수업 끝나고 나 좀 보자 하면 아 너도 생활수급자구나 하고 알 수 있으니 굳이 미리 친한 척할 필요 없지.
우리 아빠는 신부전증이고 엄마는 조금 슬펐고 나는 언니랑 있었다. 원래 생활수급 보조를 받으면 일하면 안 된다. 수입원이 생기면 생활수급이 줄어드니까. 우리 아빠는 장애인이라, 매일 투석실에서 피를 갈지 않으면 살지를 못하니 장애인인데, 애까지 둘이나 있으니 생활수급자가 되기에 적당했다. 근데 우리 아빠는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
우리 아빠 꿈이 집사고 생활수급도 벗어나는 거였다. 이거 계속 받으면 이 꼴을 못 면한다고. 내 어렸을 때 그림 숙제에서 집을 그리는 숙제가 있었는데, 아빠랑 나는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렸다. 마당 있고 개 뛰어노는 전원주택.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개를 가지는 게 소원이었으니, 나는 그게 이루어질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는데, 아빠 돌아가시고 11년이 지나서야 우리 언니랑 엄마가 내가 프랑스에 도망간 동안 빚내서 인천에 겨우 구한 집이 우리 가족의 첫 자가다. 그것도 2023년.
왜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하느냐. 그건 오늘 저녁 아빠가 생각나서이고, 이 평범하고 가난한 이야기를 언젠가 거창한 이야기로 변모해서 영웅담으로 쓰기 위해 살아가는 나를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누구도 재밌게 대화에서 들어주지 않을 테니 이 기억을 여전히 남기고 싶은 스스로를 위해서다